“레깅스 출근룩, 오운완 인증”…11조 생활체육 소비문화의 ‘역설’ [권준영의 머니볼]
평일 오전 서울의 한 지하철역. 출근길 인파 속 레깅스와 러닝화, 골프웨어 차림의 직장인들은 이제 일상적인 모습이 됐다. 마라톤 출발선을 연상시키는 행렬이지만 이들의 목적지는 운동장이 아니라 일터다. 점심시간 백화점 스포츠 매장은 붐비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인증 게시물로 채워진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웨어는 단순한 기능성 의류의 영역을 넘어섰다. 일상복과 출근복의 경계를 허문 ‘애슬레저 문화’의 이면에는 개인의 소비력과 자기관리 수준을 드러내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MARC에 따르면 한국 애슬레저 시장 규모는 2025년 기준 81억3200만달러(약 11조원)로 추산된다. 2034년에는 134억달러(약 18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애슬레저는 운동(Athletic)과 레저(Leisure)를 합친 용어로, 레깅스·러닝웨어·요가복·골프웨어처럼 운동복과 일상복의 경계를 허문 소비 트렌드를 뜻한다. 전 세계 시장 규모 역시 올해 약 4300억달러(약 600조원)에 달할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스포츠웨어 소비 증가가 실제 신체 활동 증가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2025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생활체육 참여율은 62.9%로 전년 대비 2.2%포인트(p) 상승했다. 주 2회 이상 참여율도 52.2%로 2.7%포인트 늘었다.
그러나 운동의 내용은 달라지고 있다. 국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운동은 걷기(40.5%)였고, 보디빌딩(17.5%), 등산(17.1%), 요가·필라테스·태보(9.3%), 수영(7.9%), 러닝(7.7%), 축구·풋살(7.4%) 순이었다. 농구·야구 등 팀 스포츠는 상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특히 러닝 참여율은 1년 전 4.8%에서 7.7%로 급증했다. 최근 운동 문화가 헬스·러닝·필라테스·홈트레이닝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러닝은 대표적인 ‘인증형 운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마라톤 완주 메달과 러닝앱 기록 캡처, 러닝화 인증 게시물 등이 SNS를 채우면서 운동 역시 함께 경쟁하는 활동보다 혼자 기록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생활체육 참여 확대와 함께 관련 소비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문체부 조사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월평균 체육활동 경비는 6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1만6000원 증가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러닝이다. 러닝은 비교적 저비용 운동으로 꼽히지만, 실제 시장은 고가 러닝화와 스포츠워치, 기능성 의류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프리미엄 러닝화 가격은 20만~40만원대까지 올라갔고, GPS 기반 기록 앱과 마라톤 참가 문화 역시 하나의 소비 시장으로 연결되고 있다.

레깅스 역시 단순한 기능성 의류를 넘어 자기관리 이미지를 드러내는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 운동복이 ‘얼마나 뛰었는가’를 보여주는 장비였다면, 지금의 레깅스는 ‘얼마나 관리된 사람처럼 보이는가’를 드러내는 상징에 가까워졌다. 특히 2030세대 사이에서는 이런 흐름이 더 뚜렷하다. 집값·취업·결혼 등 구조적 제약 속에서 몸만큼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이 운동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애슬레저 브랜드인 ‘룰루레몬’(Lululemon)은 요가복 브랜드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전 세계 자기관리 라이프스타일 시장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2024년 매출은 약 106억달러(약 15조원)에 달한다. 프리미엄 레깅스는 10만~20만원대를 넘어섰고, 일부 골프웨어 세트는 수십만원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패션 유행이 아니라 ‘운동의 이미지화’ 현상으로 해석한다. 실제 건강보다 ‘운동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흐름이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운동 문화는 점점 ‘개인화’되고 있다. 문체부 조사에서도 생활체육 비참여 이유로 ‘시간 부족’이 58.4%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운동은 늘었지만, 운동이 소비되는 방식은 달라졌다. 함께 뛰고 부딪히던 운동장은 점점 비어가는 반면, 기록 인증과 자기관리 이미지를 둘러싼 시장은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11조원 규모로 불어난 애슬레저 시장은 역설적으로 오늘날 한국 생활체육의 또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운동은 일상 깊숙이 들어왔지만, 정작 스포츠는 ‘함께 뛰는 활동’보다 ‘관리된 이미지를 소비하는 문화’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권준영 기자 kjykj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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