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 쏟아붓고 中신하국 자처…‘21세기 대군부인’, 반쪽짜리 사과문과 씁쓸한 퇴장[스경연예연구소]

강주일 기자 2026. 5. 1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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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32세기 대군부인’ 캡처

16일 종영하는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을 둘러싼 역사왜곡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제작진은 11회 방송분에 등장한 즉위식 논란(구류면류관 착용 및 천세 산호)에 대해 부랴부랴 사과문을 냈지만, 시청자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해당 장면 외에도 극 전반에 걸쳐 중국식 문화 차용과 기본적인 궁중 예법조차 지키지 않은 고증 오류가 수두룩하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국 전통 외면한 ‘중국식 다도법’ 연출

MBC ‘21세기 대군부인’ 캡처

누리꾼들의 역사왜곡 지적은 드라마 초반부터 이어져왔다. 1회에서 대군의 신분인 이안대군이 철릭에 달고 나온 흉배는 상상의 동물인 ‘백택’ 모양이었다. 실제 조선 역사에서 흥선대원군 등 대군의 예우를 받는 이들은 ‘기린’ 흉배를 달았다. 당시 누리꾼들은 “복식 고증이 낙제점”이라는 댓글을 달았지만, 당시는 판타지 드라마 특성상 역사왜곡 논란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후 11회 방송분 중 성희주(아이유 분)가 대비(공승연 분)와 독대하며 차를 마시는 장면에서는 심각한 문화적 오류가 발생했다. 한국의 전통 다도는 소반 위에 물 식힘 그릇인 숙우를 두고 마실 물만 다관에 따라내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극 중에서는 다관 밑에 물받이를 두고 그 위로 찻물을 붓는 명백한 ‘중국식 다도법’이 연출됐다. 동북공정 등 타국의 문화 침탈 시도가 예민한 시기에, 한국 왕실을 다루는 드라마가 자발적으로 중국식 문화를 차용한 것은 가벼운 실수로 넘길 수 없는 대목이었다.

MBC ‘21세기 대군부인’

■제후국을 자처한 호칭강등, 실수인가 의도인가

누리꾼들은 이 드라마가 의도적으로 대한민국 국격을 깎아내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한민국 궁궐에 불을 세 번이나 지르는 억지 설정을 넣고, 한복 입기를 거부하는 여주인공을 ‘쿨’하게 묘사하며, 대한민국 왕실에서 중국 브랜드 만년필을 쓰고 있다는 등의 예를 들어 이 드라마가 동북공정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다고 했다.

결정적 고증오류는 바로 극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호칭 강등’이다.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국격을 ‘황제국’으로 격상시켰다. 만약 21세기 현재까지 왕실이 존속하는 입헌군주제 대한민국이라면, 당연히 제후국(조선)의 예법이 아닌 자주독립국인 황제국(대한제국)의 호칭과 예법을 계승하는 것이 상식이다.

네이버 블로그 캡처

그러나 ‘21세기 대군부인’은 마치 중국 황제의 통치를 받는 신하국으로 시계를 되돌린 듯, 철저하게 제후국의 호칭만을 골라서 사용하는 촌극을 벌였다.

극 중 이안(변우석 분)의 작위인 ‘대군’부터가 어불성설이다. 자주독립국인 황제국에서 황제의 형제나 아들은 ‘친왕(親王)’으로 봉해진다. ‘대군’은 제후국 왕의 적자에게만 쓰이는 호칭이다. 그러므로 사실 이 드라마 제목 그 자체이자 주인공 성희주(아이유 분)의 정체성이 가장 큰 역사왜곡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이안과 혼인한 성희주는 ‘대군부인(부부인)’이 아니라 ‘친왕비(親王妃)’로 불렸어야 마땅하다. 대비(공승연 분) 역시 황제국의 ‘황태후’로 불렸어야 한다.

MBC ‘21세기 대군부인’ 속 한 장면.

여기에 공식 홈페이지 연표에 기록된 왕실 인물의 죽음을 뜻하는 ‘훙서’라는 단어, 11회 이안대군의 즉위식에서 ‘만세’ 대신 울려 퍼진 ‘천세’ 산호까지 더해지면 이는 단순한 무지를 넘어선다. ‘만세’는 황제를 향한 예우이고, ‘천세’는 제후국의 왕에게 하는 산호다.

■ 단어 하나에 담긴 국격, 무지인가 의도인가

제작진은 16일 11회 즉위식 논란에 대해서만 “조선의 예법 변화를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며 반쪽짜리 해명을 내놓았다. 제작진은 300억 원의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대작임에도, 주인공이 마침내 왕이 되는 중대한 장면에서 전문가의 자문 한 번 거치지 않은 것을 인증하며,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격을 스스로 깎아내렸다.

MBC ‘21세기 대군부인’

제작진의 얄팍한 역사 인식은, 글로벌 스타로 추앙받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들의 커리어에 생채기를 남겼다. 또 글로벌 OTT를 통해 전 세계로 송출되는 한국 콘텐츠 역사에 뼈아픈 오점을 남겼다.

드라마는 허구의 예술이지만, 그 허구가 역사적 실재와 국가의 근간을 다룰 때는 마땅히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 제작진은 대체 역사물이라는 장르적 방패 뒤에 숨어,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냈다. 이것이 ‘21세기 대군부인’ 제작진의 안일함이 어느 때보다 매섭게 질타받는 이유다.

화려한 캐스팅과 화제성에만 매몰돼 역사적 고증이라는 기본조차 지키지 못한 ‘21세기 대군부인’의 씁쓸한 퇴장은, 향후 대체 역사물을 표방하는 모든 제작진이 뼈저리게 새겨야 할 반면교사가 됐다.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마지못해 털어낸 듯한 사과문 한 장으로, 이미 훼손된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자존심이 회복될 리 만무하다.

강주일 기자 joo102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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