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빛 위로 달이 흐른다”

장종회 2026. 5. 1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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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수묵 류재춘 ‘Moon & Waves’ 전시회
서울 아톨로지서 14일 개막…6월3일까지
수묵화·미디어아트 작품 20여 점 선보여

[한국금융신문 장종회 기자] 먹빛을 머금은 보름달이 한지 위를 흐른다. 태양처럼 이글거리지는 않지만 분명 뜨거운 무언가를 품은 달이다. 달 테두리를 두른 붉은 기운은 보는 이의 가슴 안쪽으로 조용히 번져 나간다.

K-수묵의 대표 주자 류재춘 작가의 개인전 《Moon & Waves : 달과 수묵》전이 지난 14일 서울 강남 아톨로지(ARTOLOGY)에서 개막했다. 오는 6월 3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는 달과 파도를 주제로 한 수묵화 20여 점과 미디어아트 작품이 함께 걸렸다.
류재춘 작가가 14일 서울 아톨로지에서 개막한 전시회에서 자신의 대표작품 가운데 하나인 월하, 더문 등을 소개하고 있다.

자연풍광 넘는 내면의 파장


류재춘 작가의 화폭에 달이 처음 나타난 것은 2015년이었다. 2주 동안 보랏빛 하늘 아래 달이 떠 있는 꿈을 계속 꾸게 되자 류 작가는 그 이미지를 그대로 한지 위에 옮겼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연작 〈월하(月河)〉다. 그 뒤로 지금까지 달은 류 작가 작업의 가장 강렬하고 지속적인 언어로 자리잡았다. 류 작가의 달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테두리를 두른 붉은 띠이다. 그래서 혹자는 류 작가 작품 속의 달을 '해를 품은 달'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번 전시 타이틀 《Moon & Waves》은 '빛가람'을 의미한다. '빛이 흐른다'는 뜻이다. 달이 조수를 당기고 파도를 만들듯이 화면 위에서 달빛과 먹의 물결이 서로 스며드는 장면을 담아낸다는 게 작가의 의도다. 정(靜)과 동(動), 빛과 물질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관람자는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닌 내면의 파장을 체험하게 된다.

대형 신작과 미디어아트 작품도 선뵈


이번 전시에는 달빛에 잠긴 산수화, 거대한 파도와 폭포를 담은 대형 신작도 포함됐다. 먹의 번짐과 스밈, 농담(濃淡)의 극단적 변화를 구현한 작품들이 나란히 걸려 있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류재춘 작 '더문(The Moon)'

전시장 벽면에 걸린 류 작가의 간판 작품 〈The Moon〉은 한지와 먹, 색과 빛이 중첩되면서 달빛이 화면 전면을 가득 채우는 형태로 되어 있다. 류 작가는 이 달을 ‘소원을 품은 달’이라고 부른다. 개인의 소망을 넘어 전쟁과 갈등이 사라지고 인류가 서로를 이해하며 공존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류 작가는 개막전에서 이 작품에 대해 “한 폭의 그림을 넘어 세계평화를 향한 기도이자 긍정의 에너지, 행복한 미래를 향해 전하고 싶은 축복의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류 작가의 또다른 대표작인 〈월하(月河)〉도 이번 전시에 포함됐다. 이 작품은 지난 2021년 수묵화로는 처음 NFT로 발행돼 업비트에서 약 10초 만에 200점이 완판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전통 수묵이 디지털 기술과 접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상징적 사례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작품이다.

류 작가는 NFT 발행을 계기로 한지의 물성이 빛에 따라 변화하는 원리를 LED 특허로 출원하기도 했다. TV 패널의 작동 원리와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해 전광판, 미디어 파사드로 확장한다는 발상이다. 그는 그가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 대우교수로 재직하며 LED·미디어아트·AI와 수묵의 접점을 다양하게 탐색하는 작업을 시도 중이다. 한발 더 나가 로봇과 협업하는 작업도 구상에 들어간 상태다.

근원적 생명의 에너지 표현


류 작가의 또다른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자연의 초상-묵산과 폭포〉도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묵산은 하늘과 땅을 잇는 정신성을 상징하고, 폭포는 막힘없이 뻗어나가는 작가 내면의 에너지를 표상한다. 이 작품은 강약이 분명한 붓질과 속도감 있는 먹의 흐름을 통해 자연의 근원적 생명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류재춘 작 '묵산(Majestic Mountain Green)'

전시장인 아톨로지 1층 레스토랑 벽면에는 류 작가의 수묵화 미디어아트로 채워졌다. 식사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달빛과 먹물이 화면 위를 흘러가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마주할 수 있다.

류 작가는 14일 열린 전시회 개막 행사에서 "오랜 시간 한지와 먹, 빛과 색, 수묵의 정신을 붙들고 걸어온 여정이 오늘 이 공간에서 하나의 달빛으로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는 단순한 개인전 인사말을 넘어 30년 이상 이어온 자신의 화업 방향을 재확인하는 선언이 담겼다.

달은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어둠을 비추는 존재다. 소리 없이 세상을 감싸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닿는다. 류재춘의 달은 먹물이 한지에 스며들듯이 조용히 보는 이의 안쪽으로 번져 들어오는 달이다. 이번 전시를 찾는 이들은 그런 달을 마주하며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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