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6주년]금남로서 다시 열린 오월의 광장

박건우 기자 2026. 5. 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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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제 앞두고 시민난장 ‘활기’
주먹밥 나누며 대동정신 되새겨
학생·외국인 체험 부스도 눈길
치유·연대 등 목소리 함께 담아
5·18민주화운동 46주기를 이틀 앞둔 16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시민 난장 행사에서 오월어머니집 회원들이 주먹밥을 만들고 있다. /박건우 기자

5·18민주화운동 46주기를 이틀 앞둔 16일 광주 동구 금남로는 다시 '오월의 광장'으로 열렸다.

전야제를 앞두고 거리 곳곳에는 시민난장 부스가 줄지어 들어섰고, 이른 아침부터 시민과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금남로를 채운 것은 단순한 축제 분위기만이 아니었다. 주먹밥을 나누며 1980년 5월의 대동정신을 되새기는 손길이 있었고, 청소년과 외국인 유학생들은 체험을 통해 오월의 의미를 배웠다. 한편에서는 국가폭력 피해자의 치유를 알리는 부스와 지역사회 현안을 향한 시민들의 목소리도 함께 자리했다.

◇주먹밥으로 되살린 '그날의 마음'

이날 금남로 천막 아래에서는 오월어머니들의 손길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김을 자르고, 밥을 쥐고, 참기름을 바르는 동작이 반복될 때마다 고소한 냄새가 거리로 퍼졌다.

쟁반 위에 주먹밥이 하나둘 놓이자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줄을 맞췄다. 봉사자들은 "천천히 오세요"라고 말을 건네며 따뜻한 주먹밥을 시민들에게 건넸다. 주먹밥을 받아 든 아이들은 한입 베어 물고 "맛있다"며 웃었고, 일부 시민들은 손에 쥔 주먹밥을 한동안 바라보며 그 의미를 되새겼다.

투박한 모양의 주먹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이 서로를 살피고 나누며 버텼던 대동정신의 상징이었다. 금남로 한복판에 다시 차려진 주먹밥은 오월을 기억하는 가장 소박한 방식이자, 가장 오래된 연대의 언어였다.

현장에서는 생수와 간식도 함께 나눠졌다. 자원봉사자들은 시민들을 맞으며 "그날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참여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춘희 오월어머니집 관장(66)은 "1980년 5월의 주먹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시민들의 돌봄과 나눔이 모여 만들어진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며 "그 정신을 오늘도 시민들에게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 46주기를 이틀 앞둔 16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시민 난장 행사 안중근 목판화 부스를 찾은 외국인 유학생 모습. /박건우 기자

◇안중근 정신 체험…외국인도 함께한 오월

금남로 또 다른 부스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알리는 체험 행사가 눈길을 끌었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전남광주지부가 마련한 공간에서는 목판화 작업을 기반으로 한 실크스크린 체험이 진행됐다.

시민들은 안중근 의사의 얼굴이 새겨진 작품을 직접 찍어보며 독립과 민주, 인권의 의미를 되새겼다. 부스 앞에는 오전부터 줄이 이어졌고, 완성된 작품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시민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보였다.

서일권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전남광주지부 사무처장은 "작가의 목판화 작품을 바탕으로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떠 시민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며 "외국인부터 10대,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부스를 찾았다. 오전 10시부터 줄이 이어질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외국인 유학생들의 참여도 눈에 띄었다. 광주외국인유학생서포터즈로 활동 중인 웬티민담(22), 파울린(26), 카야(25), 소피아(24)씨 등은 직접 실크스크린 체험에 참여하며 행사 분위기를 함께했다.

이들은 "함께 유학 생활을 하는 친구들과 민주화운동에 관심이 있어 참여하게 됐다"며 "여러 부스를 돌아보면서 5·18의 역사와 상징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 46주기를 이틀 앞둔 16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시민 난장 행사 부스 리더스 서밋 부스에 참여한 시민들 모습. /박건우 기자

◇고등학생들이 만든 '기억의 굿즈'

청소년들이 직접 꾸린 체험 부스도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문성고등학교 동아리 '리더스 서밋'은 5·18민주화운동 46주년을 맞아 오월의 가치를 담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학생들은 5월을 상징하는 꽃과 민주·인권·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슈링클스 아트,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의미를 담은 매듭 팔찌 만들기 등을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체험에 참여한 김지민(31)씨는 "5·18을 이렇게 아름다운 굿즈로 만들어 기릴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며 "무겁게만 느껴질 수 있는 역사를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해주는 방식인 것 같다"고 말했다.

동아리 임원인 김성태(18)군은 "리더스 서밋은 민주, 인권, 평화 같은 사회적 가치를 탐구하는 학생들이 모여 만든 동아리"라며 "5·18처럼 의미 있는 행사에는 봉사활동이나 부스 운영으로 참여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도 5·18을 기리고 더 많은 시민들과 그 의미를 나누기 위해 부스를 꾸렸다"며 "학생들도 오월을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 46주기를 이틀 앞둔 16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시민 난장 행사 부스 광주 여성민우회 '차별과 혐오 물어가는 범내려온다'에 참여한 시민들 모습.

◇목소리 내는 공간 된 금남로

금남로 한편에서는 5·18을 기리는 행사와 함께 또 다른 사회적 목소리도 이어졌다.

여성민우회 소속으로 활동 중인 대학생 강민서(21)씨는 최근 발생한 '광주 여고생 살해 사건'을 추모하며 시민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타지 출신으로 광주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강씨는 이날 5·18 행사장 인근에서 사건의 의미를 환기했다.

강씨는 "이번 사건이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규정되면서 그 이면에 있는 여성 대상 범죄의 본질이 희석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대학이나 지역사회에서 관련 문제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공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어디에서 목소리를 내야 할지 고민하던 중 금남로가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대안적 광장이라고 생각했다"며 "5·18이 시민들이 함께 목소리를 냈던 역사인 만큼, 지금의 문제를 말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5·18민주화운동 46주기를 이틀 앞둔 16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시민 난장 행사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에 쓰여 있는 메모. /박건우 기자

◇"국가폭력 피해, 혼자 아파하지 않도록"

국가폭력 피해자의 치유를 알리는 부스도 시민들과 만났다.

금남로 한편에 마련된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부스에는 '힘내세요',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형형색색의 메모지가 빼곡히 걸렸다. 시민들이 남긴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는 부스 주변을 채웠고, 간단한 체험과 센터 안내를 받으려는 발길도 이어졌다.

김정주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사회적치유팀장은 "현장에서 직접 상담을 진행하기는 어렵지만, 센터를 알리기 위한 홍보 차원에서 참여했다"며 "국가폭력 피해를 입고도 센터를 몰라 도움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그는 "치유센터는 피해자들의 고충을 듣고 애로사항을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며 "부스를 찾은 분들 가운데 직접 사연을 털어놓는 경우도 있어 연락처를 받아 이후 센터 방문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주에서는 이날을 시작으로 5·18 46주년을 기념하는 시민 참여 행사가 이어졌다. 전남대와 금남로 등 주요 사적지를 잇는 5·18㎞ 코스의 '런(Run) 5·18' 마라톤이 오후 3시부터 진행된다. 1980년 '민족민주화성회 행진'을 재현하는 민주평화대행진과 '민주의 밤' 행사도 잇따라 열린다.
/박건우 기자 pgw@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