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구교환 같은 지질한 인간을 주인공으로?"...'모자무싸'를 포기한 당신에게

정석희 칼럼니스트 2026. 5. 1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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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봐야할 ‘모자무싸’, 서사의 어딘가에 있는 ‘나’를 찾는 재미란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요즘 영화고 드라마고 다 왜 그러냐. 다 그게 그거야. 기계에 넣고 돌린 것처럼." JTBC 토일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에서 영화판 거물이라는 노강식(성동일)이 푸념을 한다. 맞는 말이다. 요즘 AI에게 주문했나 싶은 드라마가 어디 한둘인가. 노강식은 죄다 재미없다지만 그래도 다행히 해마다 몇 편은 수작이 나온다. 지난 제6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인정을 받은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과 tvN <미지의 서울>처럼. 그리고 그에 필적할 작품이 나왔으니 바로 최근 화제인 <모자무싸>다.

총 12부작 중 8화까지 방송됐는데 종영까지 단 2주라니 벌써 아쉽다. 사실 이 드라마는 본방도 좋지만 '다시보기'를 권하고 싶다. 놓치기 아까운 대사, 찰나의 표정, 정교한 감정 교류 장면이 워낙 많아서 되감기를 해가며 복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황동만'(구교환)의 진상 짓이 꼴 보기 싫어 도저히 못 보겠다며 첫 주에 하차한 분들이 꽤 있다고 들었다. 박해영 작가와 차영훈 감독에 대한 믿음 하나로 버텨온 분들도 있을 테고. 요즘 OTT에서 선호하는 주인공 스타일이 있지 않은가. 그런 흐름에서 볼 때 구교환 배우와 '황동만'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운 건 엄청난 용기이자 도전이다.

박해영 작가의 전작 tvN <나의 아저씨>, JTBC <나의 해방일지>에 이어 내가 아닌 '모두'를 앞세운 드라마가 나온 셈인데, 그래서인지 내 속을 들킨 것 같은 공감 가는 대사들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온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 "어떻게 황동만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지 진짜 이해가 안 된다"라며 비아냥거리는 직장 동료에게 변은아(고윤정)가 일갈한다.

"그냥 싫다고 하면 되는 걸 왜 자꾸 이해 안 된다고 하느냐. 왜 착한 척을 하느냐. 말을 정직하고 좀 분명하게 했으면 좋겠다."

그 말, 마치 변은아가 나에게 하는 소리 같았다. 방송 평론 일을 하며 '이해 안 된다'는 말을 어림잡아 백 번 이상은 했지 싶다. '개념 없고 게으르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사람을 왜 자꾸 내 앞에 꺼내 놓는 것이냐, 정말 싫어 죽겠다', 이러고 싶지만 실제로는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되네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하지 않나.

5회에서 변은아가 전남친 마재영(김종훈)의 연락을 받은 뒤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어. 아주 지랄 맞은 오빠"라고 혼잣말을 한다. 그러자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황동만이 마대영을 찾아가 한바탕 발광을 해댄다. 나 역시 입 밖으로 꺼내본 적은 없으나 가끔 생각했다. 나를 위해 미친 듯 날뛰어 줄 오빠, 혹은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의 하유미 같은 기 센 언니, 그런 피붙이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이런 식으로 점점 빠져들게 되는데 속 시원한 대사들, 특히 영화사 대표 고혜진(강말금)의 말빨은 가히 명불허전이다. 예전에 김수현 작가 드라마를 보면 말 못 하다 죽은 귀신이 들렸나 싶을 정도로 모든 캐릭터들이 말을 잘 하지 않나. 이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어쩜 그렇게 맞는 소리들만 하는지. 여기에 연기력이 착 붙어주니 금상첨화다.

게다가 반전이 도처에 있다. 황동만의 형 황진만(박해준)이 진짜 시인이었다는 사실이 그중 하나다. 딸 영실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던 중에 기막힌 시상이 떠올랐고 그렇게 나온 시가 평단으로부터 역작이라는 평을 들었단다. 황진만이 왜 자꾸 죽고자 하는지 어슴푸레 짐작이 간다. 수시로 빛나는 시구를 떠올리는 자신이 혐오스러워서가 아닐까. 그런데 팬이라는 사람이 딸을 잃은 고통으로 시가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아름답네요"라고 한다. 시를 쓴다지만 공감 능력은 바닥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먼저 변은아의 엄마가 알고 보니 배우 오정희(배종옥)라는 사실이다. 설마 그건 너무 진부한데? 했는데 진짜였다. 심지어 오정희의 친딸과 의붓딸이 PD와 배우로 만나서 친해지는,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전개가 이어지지 뭔가. 이게 얼마나 흔한 설정이냐 하면 현재 SBS 월화드라마 <오늘도 매진했습니다>의 주인공 담예진(채원빈)도 배우인 엄마 송명화(우희진)에게 버림을 받았다. 변은아도 담예진도 엄마에게 부정당한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있는데 변은아는 수시로 코피를 쏟고 담예진은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러나 <모자무싸>의 경우 대사와 캐릭터가 살아 있으니까 진부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또 하나 아쉬운 건 박해영 작가가 유독 엄마, 할머니, 즉 나이 지긋한 여성을 납작하게 그리는 점이다. <나의 아저씨>의 삼형제 어머니 변요순(고두심)은 '열이 뻗쳐 욕 한 바가지 퍼붓다가도 삼시 세끼 따뜻한 밥은 해 먹이는 엄마'로 소개된다. 밥에 목을 매는 건 <나의 해방일지>의 어머니 곽혜숙(이경성)도 마찬가지였다. 변변한 서사 없이 끼니마다 밥상을 차리고 공장일을 돕고 농사일까지 하다가 급기야 허망하게 죽지 않았나.

<모자무싸>에서 변은아의 의붓할머니 가수자(연운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빠가 죽은 뒤 버려질까 봐 두려워하는 아이를 지극 정성으로 먹이고 입혀 길렀다고 한다. 따뜻하다. 감동적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꿈도, 도락도, 친구도, 취미조차 없다. 박해영 작가에게 나이 든 여성은 주인공들 밥 해 먹이는 존재에 불과한 걸까? 현실의 반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이 1980년대인가?

그럼에도 <모자무싸>는 꼭 봐야 할 드라마다. 앞으로 여기저기서 토론의 장이 펼쳐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 군상 드라마인 이 이야기 어딘가에는 '내'가 있으니 찾아보시길 권한다.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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