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6주년]"우리는 광주에 빚졌다"
30도 안팎 더위에도 추모 발길
대구·대전 등 전국서 오월 찾아
묘비 앞 국화 놓고 고개 숙여
"민주열사 희생 잊지 않겠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광주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이틀 앞둔 16일 오후 1시께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한낮 기온이 30도 안팎까지 치솟은 초여름 더위 속에서도 묘역에는 참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묘지 입구에는 '민주주의의 봄을 잊지 않겠습니다', '오월의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추모 리본 수십 개가 바람에 흔들렸다. 묘역 곳곳에서는 시민들이 묘비 앞에 국화를 내려놓고 한참 동안 고개를 숙였다.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묘역을 천천히 걷는 가족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5·18을 앞둔 추모의 발걸음은 광주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날 묘역에는 경북과 대구, 대전, 전북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참배객들이 줄을 이었다. 이들은 저마다의 기억과 부채감을 안고 오월 영령 앞에 섰다.
경북 안동에서 온 차명숙(65·여)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차씨는 5·18 당시 금남로 거리에서 가두방송을 하며 시민들에게 항쟁의 진실과 현장 상황을 알렸던 인물이다. 당시 만 19세였던 그는 46년이 지난 이날도 다시 광주를 찾았다.
차씨는 "그때 희생된 학생들과 어린 동생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무겁다"며 "그래도 젊은 참배객들이 많이 오는 모습을 보면 오월 정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온 참배객들의 추모도 이어졌다.
김균식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장은 이날 '5·18 마지막 수배자'로 알려진 고 윤한봉 열사의 묘역을 찾아 술잔을 올렸다. 함께 온 일행 사이에서는 "잘 지냈는겨", "나도 곧 따라갈 테니 편히 계시라"는 농담 섞인 인사가 오갔지만, 이내 표정은 무거워졌다.
김 지부장은 "광주를 다른 지역에서 바라봤던 사람들은 일종의 부채감을 안고 살아왔다"며 "특히 최근 민주주의 위기를 겪으면서 5·18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1980년 5월의 항쟁은 끝난 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느낀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매년 광주를 찾고 있다"고 했다.
충청권에서 온 참배객도 오월 앞에 섰다.
대전에서 온 유창동(64)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5·18을 처음 접했고, 그 경험이 이후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줬다"며 "우리 세대에게 민주주의를 가장 강렬하게 각인시킨 사건은 5·18이었다"고 말했다.
유씨는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 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외국인 유학생에게도 묘역은 낯선 역사 공간에 그치지 않았다.

앞서 이날 낮 12시께 북구 망월동 옛 묘역인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는 민주노총의 합동 참배가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묘역을 돌았다.
망월동 옛 묘역은 1997년 국립5·18민주묘지가 조성되기 전까지 5·18 희생자들이 안장됐던 공간이다. 이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전국 각지의 열사들도 이곳에 함께 잠들었다. 영화 '1987'의 모티브가 된 고 이한열 열사와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인물인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유해 일부도 이곳에 안치돼 있다.
/임지섭 기자 ljs@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