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와 아모데이의 ‘동상이몽’ [김기혁의 테슬라월드]

인공지능(AI) 업계와 우주 산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앤스로픽(Anthropic)과 손을 잡았다는 뉴스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인프라 임대 계약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일론 머스크와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최고경영자(CEO)가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X와 앤스로픽 간 협업의 의미는 우선 머스크의 AI 야심작인 ‘그록(Grok)’의 현재 주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그록은 현재 급성장하는 경쟁 모델들에 비해 크게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때 엑스(옛 트위터)와의 통합과 파격적인 대화 기능으로 주목받았지만 최근 성장세는 눈에 띄게 둔화되는 모습인데요.

데이터 분석업체 앱매직에 따르면 그록의 다운로드 수는 지난 1월 2000만 건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4월에는 830만 건 수준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습니다. 특히 유료 이용자 비율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리서치 업체 레콘 애널리틱스가 미국 AI 사용자와 근로자 26만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으로 그록 유료 이용자 비율은 0.174%로 1년 전(0.173%)과 비교해 거의 같습니다. 반면 6%를 넘은 챗GPT와의 격차는 크게 벌어진 셈이죠. 그록의 선정적인 업데이트는 규제 당국의 조사를 초래하는 등 대외적인 위기도 겪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모데이가 이끄는 앤스로픽은 현재 기업 시장에서 무서운 기세로 확장 중입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 응답자의 48%가 앤스로픽의 클로드를 사용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는 1년 전 21%에서 두 배 이상 급증한 수치입니다. 반면 그록을 계속 사용하겠다는 응답은 7%에 불과했습니다.
아모데이에게 이번 계약은 생존과 직결된 ‘컴퓨팅 보급로’를 확보한 셈입니다. 이번 계약으로 앤스로픽은 300메가와트(MW) 이상의 전력 용량과 22만개 이상의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한 달 안에 활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스페이스X는 콜로서스1을 임대해주더라도 콜로서스2라는 더욱 거대한 AI 인프라가 있습니다. 콜로서스2는 세계 최초의 1기가와트(GW)급 AI 클러스터로 총 180억달러(약 26조 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짓는 과정에서 스페이스X는 AI 인프라 사업자로서 탁월한 구축 능력을 발휘했는데요. 데이터센터 완공에는 통상 2년 이상이 걸리는데 콜로서스는 1년이 채 소요되지 않았습니다. 콜로서스 2는 부지 매입부터 가동까지 10개월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비결에는 전력난을 해결하는 데 가스터빈을 활용한 덕분인데요. 가스터빈은 천연가스를 태워 만든 고압 가스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설비입니다. 콜로서스2 인근에는 이동식 가스터빈 40대 이상이 설치돼 있습니다. 이를 통해 원자력 발전 1기 용량에 맞먹는 1.2GW 규모의 자체 전력망이 구축됐습니다.
양사의 파트너십은 단순히 클로드, 그록 등 AI 모델 연산의 활용도 측면 때문만은 아닙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스페이스X가 구상 중인 ‘우주 데이터센터’의 수익성을 증명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판단으로 분석됩니다.
현재 시장은 우주 데이터센터의 경제성(발사 비용 등)에만 주목하고 있지만 머스크에게 더 중요한 숙제는 “과연 누가 우주에 있는 서버를 돈 내고 쓰겠는가?”라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스페이스X가 전 세계에서 로켓 재활용을 통해 발사 비용을 크게 낮췄지만 우주 데이터센터 자체를 쓰는 잠재 고객을 확보하는 숙제가 있었는데 이를 해결했다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해 먼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완화한 셈입니다. 스타십의 대량 발사로 경제성이 해결된 이후 산업이 개화하려면 결국 돈이 되는 사업 모델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임대 계약은 우주 인프라 공급사로서 스페이스X의 가치를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실제로 앤스로픽에 이어 구글도 스페이스X와 협력을 추진 중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구글은 지구 궤도상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 위해 스페이스X와 로켓 발사 관련 계약을 논의 중입니다. 구글은 스페이스X의 초기 투자자로 현재 지분 6.1%를 보유하고 있으며 돈 해리슨 구글 글로벌파트너십 부문 사장은 스페이스X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지난해 ‘프로젝트 선캐처’라는 우주 데이터센터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종합하자면 일론 머스크와 다리오 아모데이의 이번 협력은 각자의 필요가 절묘하게 맞물린 결과입니다. 아모데이는 클로드의 지배력을 공고히 할 기반을 마련했고 머스크는 우주까지 확장이 가능한 AI 인프라 공급자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습니다.

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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