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거의 독특한 풍경 - 대만과 우리에게만 있는 선거 유니폼 [청계천 옆 사진관]
출근길 지하철역 입구에 지역 정치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인사를 합니다. 6.3 지방선거에서 선택을 받고자 하는 분들입니다. 아직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아니라서 후보자와 비서 정도만 명함을 뿌리고 손팻말을 들고 있는 정도입니다. 공식 선거 운동이 가능한 다음 주 21일부터는 자원봉사자들을 비롯해 운동원들의 숫자가 함께 늘어날 겁니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후보자와 운동원들은 같은 유니폼을 맞춰 입고 거리에 나설 것 같습니다.

이번 주 목동야구장에서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를 취재하면서 선거용 유니폼이 야구팀의 유니폼과 많이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라운드에서 선수와 코치를 구별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배가 나온 사람이 코치입니다. 같은 유니폼을 입어도 몸이 답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유세장은 다릅니다. 후보와 운동원, 가족과 사무국 직원이 같은 점퍼를 입고 시장을 함께 걷습니다. 비슷한 연령대, 비슷한 체형, 같은 옷. 사진을 찍어두고 나중에 들여다보면 누가 후보였는지 한참 살펴봐야 할 때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후보가 유니폼을 입는 원래 이유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실제 효과는 다릅니다. 눈에 띄는 것은 후보가 아니라 팀입니다. 같은 색 점퍼를 입은 무리가 시장 골목을 채울 때, 카메라에 잡히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규모입니다. 후보를 부각시키기보다 후보를 팀 속에 녹여 버립니다. 그게 목적이라면 성공입니다.
● 점퍼는 언제부터 한국 선거판에 들어왔나
지금의 우리에겐 이제 익숙해진 파란색과 빨간색, 주황과 노란색 유니폼은 사실 예전부터 있었던 선거 용품은 아닙니다. 20년이 조금 넘은 최신 유행일 뿐입니다.
선거판에 점퍼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2년 대통령 선거 때 당시 국민당이 만든 오리털 파카입니다. 유권자들에게 나눠주려다 선관위에 불법으로 적발되어 언론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지금처럼 정치인들이 입는 것이 아니라 당의 로고를 박아넣은 선물이었으니, 현재의 유니폼과는 다른 의미였습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때만 해도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점퍼는 일반 점퍼였습니다. 다만 그때 처음으로 지지자들을 “노란 저금통”으로 결집시켰습니다. 색깔이 정치적 정체성을 확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였습니다.

그러다 2004년 1월 24일,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 확대간부회의를 마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공천이 확정된 김한길 후보에게 노란 점퍼를 입혀주면서 정치권에 유니폼 형식의 옷이 처음 등장합니다(위 사진).
보수당이 점퍼를 입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8년이 지난 2012년으로 추적됩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광고계에서 유명했던 조동원씨를 홍보기획 본부장으로 영입해 당의 로고를 바꾸고 슬로건을 짜는 역할을 맡깁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다”라는 말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그는 보수 정당의 컬러를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꾸는 파격을 밀어붙입니다. 얼떨결에 진보 정당이 파란색을 차지하게 됩니다. 2012년 3월 15일 새누리당 비대위회의에서 비대위원들과 공천위원장이 빨간색 점퍼를 입은 그날 이후(아래 사진), 한국 정치인들은 선거 때가 되면 각 당의 상징색이 들어간 유니폼을 입는 문화가 정착됩니다.

저는 7년 전 이 코너에서 한국 정치인의 점퍼에 대해 한 번 쓴 적이 있습니다. 그때 글의 마지막에 이런 예측을 적었습니다. “한때는 참신해보였던 선거기법이지만 정치인 유니폼에 대한 시선이 계속 고울 것 같지는 않다.” 예측은 틀렸습니다. 점퍼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음 주에 또 거리에 등장할 것입니다.
● 다른 나라 선거 사진을 살펴봤더니
7년이 지났는데 왜 이 풍경이 사라지지 않는지, 한국 안에서만 보면 답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나라들을 살펴봤습니다. 후보자가 유니폼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일본에서 후보는 보통 정장 차림에 어깨띠를 두릅니다. 운동원들은 단체 유니폼을 입지만 후보 본인은 잘 입지 않습니다. 위계가 옷에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 후보가 자원봉사자와 같은 옷을 입는 경우를 사진에서 거의 못 봤습니다. 다만 대만이 한국과 많이 비슷합니다. 후보와 운동원, 가족이 같은 디자인의 조끼를 입고 시장을 돕니다. 다만 대만은 그 옷을 부르는 이름이 다릅니다. “전투복(戰袍)”이라 부릅니다. 우리의 국회격인 대만 입법원에서 정파 간 충돌이 있을 때, 같은 편을 구별하기 쉽게 입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만 선거 모습 [AP/뉴시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6/donga/20260516130206652qhgu.jpg)
명칭의 결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대만은 그 옷을 전투복이라 부르고, 한국은 그저 선거 점퍼라 부릅니다. 대만에서 같은 옷은 “우리 팀의 규모와 결속력”을 과시하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한국은 결이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의 선거 점퍼는 세 과시보다는 위계를 지우는 쪽에 무게가 실립니다. “나는 당신들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의 시각화입니다.
왜 한국과 대만일까. 두 사회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둘 다 군부 권위주의 정권을 거리에서 무너뜨린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1987년의 한국, 1986년부터 90년대 초까지의 대만. 그 거리의 기억이 정치 문화에 깊이 박혔습니다. 정치인이 시민에게 “나는 당신들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를 매일 증명해야 하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점퍼는 그 증명의 가장 손쉬운 시각적 장치일지도 모릅니다.
● 점퍼 안에 있는 것을 찾아내는 유권자의 안목
그런데 점퍼만이 아닙니다. 또 하나 유심히 보실 것이 있습니다. 신발입니다. 정치인들이 이제 구두를 안 신고 운동화를 신는 것도 유행입니다. 열심히 뛰자는 의미겠지요. 머리 색깔도 그렇습니다. 한국 정치인 중에 흰머리가 그대로 보이는 분이 거의 없습니다. 이른바 3김 시대때부터 그래왔습니다. 60대도, 70대도 검게 염색하고 거리에 나섭니다. 흰머리가 없으니 젊은 후보와 경륜있는 후보의 차이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미지가 평준화되면 그다음 변수는 아마 조직력 일 겁니다. 그렇다면 경험 있는 후보가 유리한 구조가 됩니다. SNS 선거 운동이 변수일 수 있지만, 그것도 이제는 모두가 하는 일입니다.
후보들은 외모를 평준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같은 점퍼, 같은 운동화, 같은 머리색. 이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구별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입니다. 점퍼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일. 그게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의 준비물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숙제입니다. 백년사진이었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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