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영화로 칸 레드카펫 밟았다… 10년 만에 돌아온 연상호의 새로운 좀비 [2026 칸영화제]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6. 5. 1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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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칸영화제] 연상호 ‘군체’
프랑스 칸영화제는 세계 영화의 가장 뜨거운 현장이자 지금 이 순간 세계인이 열광하는 시네마의 준거점입니다. 제79회 칸영화제 현지에서 칸영화제 진출작과 관련한 소식을 밀도 있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올해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오른 연상호 감독의 영화 ‘군체’의 한 장면. 배우 전지현이 주연 권세정 역을 맡았다. 전지현은 ‘킹덤’ 시리즈의 아신에 이어 좀비들과 대적한다. [쇼박스]
수많은 영화팬들이 좀비물에 왜 그토록 오랫동안 열광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좀비는 이전과는 차별화된 괴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영화에서 악인 내지 빌런은 대개 외부에서 등장해 내부로 진입한 뒤 일상의 풍경을 망쳐버리는 자들이었지만 좀비는 외부로부터 출현하는 게 아니다. 좀비는 감염되는 순간 나와 우리 스스로가 ‘타자화’되는 특이한 위상의 괴물이다.

친근했던 내 지인이, 피를 나눈 내 가족이, 심지어 유일무이한 나 자신이 아주 빠른 시간 내에 괴물이 되기에 갈등의 요소가 태생부터 다르다. 하지만 이제 좀비물은 어딘지 모르게 진부해 보인다. ‘물리면 나도 괴물이 된다’는 산식이 단순한 데다, 제목은 달라도 동어반복적인 영화가 적지 않아서였다. 시간이나 공간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좀비 자체의 특성은 대동소이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 앞에 서면 ‘또 좀비물인가’라며 예단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심드렁하거나 편안한 마음으로 객석에 앉았다간,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방심하고 있다가 감독에게 온몸이 물어뜯긴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좀비 영화도 그는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 ‘좀비 영화이지만 좀비 영화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불가피해져서다.

‘군체’가 상영된 칸영화제 뤼미에르 극장 모습. 영화 상영 직전 기립박수가 터진 가운데 연상호 감독, 배우 전지현·구교환·지창욱·신현빈·김신록이 박수에 화답하고 있다. [김유태 기자]
올해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진출한 연상호 감독의 ‘군체’가 베일을 벗었다. 16일(현지시각) 새벽 1시부터 시작된 ‘군체’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칸영화제 주행사장인 팔레 드 페스티벌(축제의 궁전) 뤼미에르 극장에서 살펴봤다. 줄거리는 이렇다. 생물학자 서영철(구교환)은 자신을 배반한 회사 상사에게 앙갚음하기 위해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이 바이러스가 같은 건물의 모두를 감염시킨다. 건물은 봉쇄되고 물리지 않은 사람들은 고립된다. 정부는 확산을 막기 위해 건물 내부에 구조대를 투입할 계획이 없다. 권세정(전지현), 최현석(지창욱) 등 내부 생존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이번 좀비 역시 ‘물리면 감염되고, 감염된 자가 다시 문다’는 점에선 이전 좀비와 같다. 그런데 이번 좀비들은 ‘감각과 지능’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좀비다. 악인이 되기 전의 서영철은 ‘유기물 칩을 통한 정보 공유 기술’을 개발해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언어나 데이터로 표현하지 않고도 함께 공유하는 ‘집단 지성’의 세상을 꿈꿨다. 그러다 보니 그가 만들어낸 좀비들도 개체가 아니라 (이 영화의 제목처럼) 군체로 움직인다. 예를 들어 이런 것. 건물 전체에 퍼진 좀비 가운데 한 명이 뭔가를 보거나 들으면 이 좀비가 습득한 시청각 정보가 다른 좀비에게 동시에 공유된다. 또 한 좀비가 가진 지적 능력 역시 집단화되어 다른 좀비에게 실시간으로 이식된다. 더 흥미로운 점은 좀비들이 인간 생존자의 행동과 습성을 모방하면서 지속적으로 진화한다는 점이다. 칸영화제가 좀비 영화로 이미 유명한 연상호 감독의 신작을 올해 칸에 초청한 결정적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영화 ‘군체’의 한 장면. 배우 구교환은 메인 빌런인 서영철 역을 맡았다. 그가 만든 세상의 좀비들은 감각과 지능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그저 물어뜯기만 하는 이전의 다른 영화 속 좀비와는 차원이 다르다. [쇼박스]
그러므로 이들은 그저 죽자 살자 달려들어 사람의 목부터 물어뜯는 기존 좀비 영화 속 진부한 좀비의 수준을 넘어서는 신(新) 개체들, 즉 군체다. 연상호 감독은 극중 인물들을 자꾸만 딜레마적인 상황 속으로 몰고 가고, 그들의 선택 속에 관객들까지 가둬버린다. 영화를 보다 보면 건물 안에 갇힌 건 극중 생존자들뿐만이 아니라 관객 자신이란 느낌마저 든다. 또 ‘군체’로 움직이는 좀비와 달리, 여전히 이기심을 발동하는 ‘개체’로서의 인간을 대비시킨다. 좀비들은 목표물을 향해 함께 돌진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생존에 따라 이해타산을 따진 뒤에 각자 행동한다는 점에서 다르게 묘사된다.

‘군체’는 이야기의 힘이 세고 장르적 재미도 넘쳐난다. 그러나 그것만이 이 영화가 말하려 했던 바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인공지능(AI) 시대의 공포적인 우화로도 읽히는 지점이 있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어느덧 기계가 인간의 감각과 지능을 ‘먹어 치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군체로서 기능하는 AI의 집단 지능은 개체로서의 인간을 넘어서며, 인간이 집단 지능에 굴복하는 순간 인간은 인간이 아닌, 비(非)인간이 된다. 인간의 형체를 한 섬뜩한 생명체가 인간의 감각과 지능을 빨아들이고 인간보다 더 효율적으로 행동할 때의 공포가 이 영화의 지층 속에 내장돼 있다. 영화관 안이 아니라 영화관 밖에서 ‘나’까지도 기계에게 침투되고 복제당할 수 있다는 현실적이고 실재적인 공포심 말이다. 연 감독은 인간을 재료화하는 집단 지능의 공포를, 피와 오물을 뒤집어쓴 좀비들로 만들어 우리 앞에 펼쳐 보인 듯하다. 그것은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공포와 상응한다. ‘에일리언’ 시리즈가 외계 괴생명체를 말하면서도 실은 그 내부에서 후기 자본주의의 공포심을 비판했듯이, ‘군체’는 집단 지능을 가진 좀비라는 공포로 이 시대와 호흡하려 한다. 나아가 이 영화는 또 ‘소통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주제 삼는데 소통하지 않는 순간 마주하는 괴물이 이름이 바로 ‘인간’임을 폭로하기도 한다.

영화 ‘군체’ 포스터. [쇼박스]
16일(현지시간) 칸영화제 레드카펫에 오른 배우 김신록·신현빈·구교환·지창욱·전지현, 그리고 ‘군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왼쪽부터). [AP·연합뉴스]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지점이 하나도 없다. 배우 전지현의 연기는 과잉이 없는 절제, 그러면서도 긴장과 비극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전지현의 기존 좀비물 출연작인 ‘킹덤’ 시리즈의 아신이 비극 속에서 특별한 능력을 거둔 영웅이었던 반면, 그가 연기한 이번 권세정 역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좀비들의 역린을 제거해버리는 ‘평범한 인간 영웅’의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배우 구교환은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보여준 지질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광인으로 등장한다. 그가 좀비떼를 진두지휘하며 거리를 활보하는 후반부 신은 흡사 ‘다크 나이트’의 조커(히스 레저),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베인(톰 하디)를 연상시킨다. 그는 세계를 폐허로 만들겠다는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마치 계획했던 무대를 걷는 듯한 광대의 걸음걸이를 보여준다. 이 들뜸과 가벼움이 ‘군체’의 공포를 되려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이날 ‘군체’ 상영을 앞두고 레드카펫에서는 이색적인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연상호 감독과 배우들이 칸 레드카펫 계단에 오르려 하자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인 박찬욱 감독이 마중을 나와 환대했다. 한국 영화인 최초의 칸 심사위원장이 한국 영화 칸 진출작 구성원들과 칸 레드카펫 위에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한국 영화의 결정적인 한 순간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16일(현지시간) 칸영화제 레드카펫에 오른 ‘군체’ 출연진들과 연상호 감독(오른쪽 두 번째). [로이터·연합뉴스]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찬욱 감독이 ‘군체’ 제작진과 배우진을 마중 나온 모습. 박 감독이 연 감독 및 배우들과 인사를 나누는 이색적인 모습이 연출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칸영화제 ‘군체’ 상영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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