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당금' 논란 뒤 남은 질문…반도체 초과세수, 어디에 쓸 것인가[국회기자24시]

조용석 2026. 5. 1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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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당금’ 표현 논란에 해외투자자 우려까지 확산
반도체 호황에 역대급 초과세수 활용 고민 공감
‘고용 유연안정성’ 등 해묵은 숙제 풀 적기일 수도
세수 풍년 시기 합리적 재정준칙 만들 기회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이번 주(5월 3주차) 정계 그리고 증시를 가장 뒤흔들었던 단어는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언급한 ‘국민배당금’이었습니다.

기업 횡재세 부과로 의심받기 쉬운 ‘배당금’이라는 용어와 7000자가 넘는 긴 글의 핵심을 맨 아래쪽에 배치한 김 실장의 글은 큰 오해를 낳았습니다. 블룸버그 보도로 이어지면서 해외투자자 우려가 커졌고 주식시장에도 타격을 줬습니다. 청와대는 “초과 세수를 국민에게 배당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뜻이었는데 AI 기업의 초과이익을 재분배하자는 주장으로 읽힌 건 중대한 오해”라며 즉각 공식 항의 서한까지 보냈습니다.

지난 8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 =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여러 논란과는 달리 김 실장의 질문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AI 인프라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위치가 구조적 호황을 만들고 그것이 역대급 초과세수로 이어진다면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당 고민해야 할 설계의 문제”라는 지적은 크게 공감합니다.

증권가 숫자부터 보면 규모가 실감납니다. KB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합산 영업이익이 지난해 91조원에서 올해 630조원으로 7배 가까이 폭증하고 내년에는 906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코스피 전체 영업이익도 올해 919조원으로 전년 대비 3배 증가하고 내년에는 1240조원으로 1000조원을 넘어선다는 분석입니다.

2025년 법인세수는 85조원 수준이었습니다. 통상 가장 높은 최고 법인세율이 적용되는 대기업의 경우 27.5%(지방소득세 포함)가 적용됩니다. 2025년 영업이익이 91조원이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6년 630조원을 번다면 거칠게 추산해도 법인세수는 수 배 이상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김용범 실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법인세에 고소득 반도체 인력의 소득세, 무역흑자 확대에 따른 연쇄 효과까지 감안하면 역대급 초과 세수가 쌓일 수 있다”고 언급한 이유입니다.

(자료 =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주요내용)
이 대통령이 최근 확장재정을 강조한 것도 다가올 예산 발표를 앞두고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작년 8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도 재정수입 전망치는 705조원, 재정지출은 764조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을 짤 때만 해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합산 영업이익이 630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은 없었습니다. 지금 증권가 숫자를 제대로 반영하면 수입은 수십조원 더 늘어납니다. 일각에서는 크게 늘어난 수입을 반영해 내년도 지출 규모가 800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이미 분배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급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성명을 내고 “반도체 호황은 FTA 체결 과정에서 농어민들의 희생과 인내가 축적된 결과”라며 “피해를 감내한 농어촌에 일정 부분 이익을 환원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지역구, 노조, 시민단체 할 것 없이 이런 요구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겁니다. 아마 지역에서 수많은 사업 예산 요구도 줄을 이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월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식에서 양대 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과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가 노동절 기념식을 개최한 것은 사상 처음이며, 양대 노총이 노동절 행사를 함께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사진 = 연합뉴스)
그렇다면 한동안 역대급 수입이 예상되는 시점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급히 떠오르는 중요한 숙제는 고용 유연안정성 모델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월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기업 입장에서는 정규직으로 뽑아놓으면 유연하게 상황에 대응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규직으로 아예 뽑지 않는 것”이라며 “노동계가 고용 유연성을 일부 양보하는 대신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갖추고 그 비용은 고용 유연화로 혜택을 보는 기업이 부담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고용 유연성 확보를 위한 사회안전망 확보 즉 실업급여와 직업교육 강화 등은 막대한 돈이 드는 과제입니다. 친노동 성향의 민주당에서도 이 같은 제안이 나온 바 있습니다. 2019년 홍영표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덴마크식 유연안정성 모델을 제안했지만 재원 부족으로 흐지부지됐습니다. 반도체 호황기에 재원이 생긴 지금이 유연안정성 모델을 실제로 설계할 수 있는 사실상 첫 번째 기회입니다. 성공한다면 이재명 정부의 노동 개혁 최대 성과가 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평소에는 재원 부족으로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과제들이 많습니다. 국가전략산업의 전폭적인 지원,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지역 인프라 투자, 저출생 대응을 위한 돌봄·주거 확충 등이 대표적입니다. 모두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지금까지는 재정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뒤로 밀렸던 과제들입니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 시절 추진하다 실패했던 재정준칙 법제화도 오히려 지금이 더 적기일 수 있습니다. 당시엔 ‘긴축’에만 방점이 찍혀 무조건적 통제에 가까웠습니다. 세수 호황기에 만드는 재정준칙은 조금 더 건설적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언급한 확장재정 필요성에 반대하는 쪽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좋은 카드가 될 수 있습니다.

IMF는 최근 “한국의 재정 확장은 매우 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대통령도 이를 SNS에 공유하며 긴축론자들을 향해 “꼭 봐야 할 기사”라고 직격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 IMF는 우리의 부채 증가속도에 방점을 찍고 우려했습니다. 당시에도 국가부채 자체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지만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증가속도를 경고했습니다. 이번 평가에서 그 대목이 부각되지 않은 듯합니다.

고령화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진행 중입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얼마나 계속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동안은 예상치 못한 큰돈이 들어올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초과세수를 단순히 현금성 지출 강화 혹은 일회성 예산으로 쓰기에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오는 8월말 발표될 2027년도 예산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요.

조용석 (chojur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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