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겨눈 범죄 '순찰 강화'만으론 못 막는다… 강남역 10주기, 남은 숙제들

최은서 2026. 5. 1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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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폭력 관련법 개선
피해 통합 지원 체계, 보호 대책도 강화
"치안 위주 대책, 오히려 여성 위축시켜"
"피해자 중심 대응, 여성 권리 보장 시급"
강남역 살인 사건 10주기를 앞둔 6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설치한 질문판에 시민들이 자신의 생각을 포스트잇에 적어 공유하고 있다. 박지연 인턴기자

2016년 5월 발생한 강남역 사건은 여성혐오에 대한 시민의식을 일깨웠을 뿐 아니라 법·제도적으로도 분명한 변화를 가져왔다. 여성 정책 전문가들은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시행될 수 있었고 안전 대책이 보완됐다"고 평했다.

하지만 이들은 "여성이 살기 편안한 사회가 됐다고 보진 않는다"며 치안 대책 위주의 단편적인 대응이 반복된 데 우려를 표했다. 이어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법·제도 일부를 손보는 식으로는 역부족"이라며 "피해자 관점에서 여성혐오를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남역 사건
2016년 5월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인근 한 주점 건물 화장실에서 34세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 범인 김모씨는 "평소 여자들에게 무시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후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어온 공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고 여성 혐오 문제가 공론화됐다.

행동 나선 여성들, 10년간 사회 바꿨다

강남역 사건 직후, 여성계에선 이 사건이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에서 기인한 범죄라는 데 방점을 두고 대책을 논하려고 했다. 하지만 관련 법을 만드는 데까지 쉽게 진전하지 못했다. 오정진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혐오 표현 규제와 혐오 범죄에 대한 가중처벌이 대책으로 검토되긴 했다"면서도 "(범행 동기가 혐오인지) 식별이 곤란하고 표현의 자유와 충돌한다는 문제가 제기돼 더 추진되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초기 대책은 공중 화장실 치안 강화 위주로 추진됐다. 위급 상황 시 누를 수 있는 비상벨을 칸마다 설치하거나 경찰 순찰을 강화하는 식이었다. 2018년 불법촬영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부터는 불법촬영 탐지기도 설치됐다.

또 강남역 사건이 핵심적인 계기가 돼 2018년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이듬해 시행됐다. 법은 성폭력, 스토킹, 교제폭력 등 기존법률에서 사각지대에 있던 젠더 폭력을 포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시했다. 김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존에도 다양한 여성폭력이 제각각 다뤄져 통합적인 법이 필요하단 얘기가 있었지만 구체화되진 못했었다"며 "강남역 사건 이후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고 설명했다.

서울 소재 여자대학교를 중심으로 결성된 '여성혐오폭력 규탄 공동행동'이 2024년 9월 21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딥페이크 성착취 엄벌 촉구 시위: 만든놈 판놈 본놈 모조리 처벌하라' 집회를 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강남역 사건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여성혐오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시민들이 나서게 됐다는 점이다.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여성들이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여성폭력 현실을 집단적으로 경험하고 직접 힘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2018년 '미투' 운동 및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 혜화역 시위 △2019년 텔레그램 N번방을 파헤친 추적단 불꽃 △2024년 딥페이크 성범죄 엄정 수사를 촉구한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등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10년간 법·제도 개선이 적지 않게 이뤄졌다. 2021년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됐고 2023년에는 개정을 거쳐 스토킹 범죄의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됐다. 2024년엔 디지털 성범죄물 촬영·유포·소지·시청이 모두 처벌되도록 성폭력특별법이 개정됐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 통합 지원 체계가 만들어졌고, 긴급응급조치 등 스토킹 피해자를 위한 보호 장치도 거듭 강화됐다.


"치안 강화 치중, 여성 불안 커지는 역효과"

7일 고교생 흉기 살인사건이 발생한 광주 광산구 월계동 현장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애도 메시지가 적힌 노란 리본과 인형이 매달려 있다. 광주=연합뉴스

그러나 법·제도가 매번 사후 대응 위주로 단편적으로 손질돼 개선이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 교수는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법·제도 일부를 개정하는 건 사실 가장 쉬운 땜질"이라며 "마치 범죄가 발생한 사회 구조적 원인을 더 분석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이후 논의를 마비시키는 효과를 일으킨다"고 비판했다. 박지아 서울여성회 성평등교육센터장도 "사건 하나가 벌어지면 단기적인 집중 단속에 행정력이 동원되고, 기존 대책에 내용 몇 개를 덧붙인 게 종합대책으로 나온다"며 "이런 식이면 계속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응이 매번 단편적으로만 이뤄지는 핵심적인 이유는 여성폭력 범죄가 반복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여성혐오라는 사실을 국가가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센터장은 "이번 정부도 아직까지 여성폭력 문제에 대해 국가가 총괄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이나 메시지를 내놓은 적이 없다"고 했다.

특히 범죄 치안 확보에만 치중한 해결 방식은 오히려 여성혐오라는 사태의 본질을 흐리기 쉽다. 최근 벌어진 광주 고교생 살인 사건을 두고 여성계에선 "강남역 사건이 재현됐다"고 비판했지만 정부는 이번에도 순찰 강화·방범시설 보강 등의 대책만을 내놓고 있다. 오 교수는 "안전 보강에만 골몰하다 보면 여성은 자유로운 시민이 아니라 국가가 보호할 대상에 머물게 된다"고 했다. 김희영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역시 "안전만 강조될수록 여성의 불안과 두려움은 오히려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고 우려했다.


"피해자 관점 이해 필요, 여성혐오 근절해야"

그래픽=박종범 기자

여성이 살기 편안한 사회를 위해 시급한 건 피해자를 위축시키는 치안 강화가 아니라 피해자 관점의 이해다. 김 부연구위원은 "예컨대 교제폭력은 성별 위계에 따라 피해자가 쉽게 헤어짐을 요구할 수 없는 권력 구조가 있음에도 피해자에게 '왜 안 헤어져?'라고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어 "사회가 피해자 관점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수"라고 조언했다.

피해자 관점을 바탕으로 한 국가 차원의 총괄적 대응도 필요하다. 박 센터장은 "아직도 피해자가 수사·입법·지원 기관을 찾아다니며 권리 회복을 호소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국가가 사회구조적 성차별과 여성혐오 해결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사후 대처보다는 여성혐오를 근절·예방할 수 있도록 사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이어졌다. 오 교수는 "우리 사회가 혐오에 대처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이 담겨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여성이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주체성을 회복할 각종 법 제정도 남은 과제다. 김 대표는 "피해자 보호는 비교적 발전하고 있지만, 비동의 강간죄나 낙태죄 대체 입법 등 여성의 권리를 대변할 제도는 여전히 논의가 미진하다"며 "관련 논의가 적극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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