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의전에서 예배로의 인도로, 입당송의 비밀 [최주훈 목사의 예배 이야기]

최주훈 2026. 5. 1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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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묻지 않는 예배 첫 순서, 입당송
최주훈 목사의 예배 이야기

 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예배 속 여러 순서들. 알고 보면 작은 것 하나하나마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2000년간 그리스도교 역사를 구성해 온 많은 신앙인들이 어떤 논쟁과 고민을 거치며 각 요소마다 어떤 신학적 의미를 담았는지를 최주훈 목사가 설명합니다. 매월 세 번째 토요일 연재합니다.
*이 글은 출간 예정인 <아무도 안 물어보는 예배 이야기>(가제) 내용을 바탕으로 합니다. - 편집자 주

주보에서 예배 순서를 펼쳐 보라. 맨 첫 줄에 무엇이 적혀 있는가. '입당송', '입례송', '입당찬송', 혹은 그냥 '찬송'. 대부분의 교인에게 이 순서는 "이제 예배가 시작되니 일어서서 노래하라"는 신호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늦게 도착한 사람은 이 시간에 슬쩍 자리를 찾아 앉고, 일찍 온 사람은 아직 채 정리되지 않은 한 주의 잡념 속에서 입을 달싹거린다. 예배의 첫 순서가 이렇게 허술하게 통과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순서가 무엇인지, 왜 여기에 놓여 있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으니까.

입당송의 라틴어 이름 'Introitus'는 '들어감'이라는 뜻이다. 누가 들어가는가. 집례자가 아니다. 성가대가 아니다. 회중 전체가 세상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순서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초대교회에는 입당송도, 입당 순행도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세기에서 3세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은 개인 가정이나 은밀한 장소에서 모였다. 로마제국의 박해 아래 지하묘지(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던 이들에게 '행렬'이란 상상할 수 없는 사치였다. 집례자가 회중 사이에 이미 앉아 있었고, 제단까지의 거리란 기껏해야 몇 걸음이었다. 예배는 말씀의 낭독과 떡을 뗌으로 곧장 시작되었다.
ChatGPT AI로 생성

황제 의전이 교회 안으로

모든 것이 바뀐 것은 4세기,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인 종교가 되면서부터다.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 교회는 말 그대로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제국이 교회에 선물한 것은 관용만이 아니었다. 건물이었다. 로마의 공공 건축물인 대리석 바실리카가 예배 장소로 전용되면서, 예배 공간의 규모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웅장해졌다. 길게 뻗은 회중석(nave), 그 끝에 자리한 후진(apse)과 성찬대까지, 집례자가 입구에서 제단까지 걸어가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된 것이다. 가정교회의 친밀한 거리는 바실리카의 장대한 거리로 바뀌었고, 이 물리적 간극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라는 전혀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다.

교회가 이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 매우 시사적이다. 제국의 공인 종교가 되자 교회는 황제 의전을 그대로 가져왔다. 왕이신 하나님을 모신다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느냐는 일종의 신심이기도 하다. 로마 황제가 원로원이나 공공 행사장에 입장할 때 향을 피우고, 촛불을 들고, 찬가를 부르며 행렬하는 의식이 있었다. 4세기 후반의 교회는 이 제국적 의전을 집례자의 입당 행렬에 그대로 이식했다. 분향, 촛불 행렬, 그리고 그 행렬 동안 불리는 시편, 이것이 입당송의 기원이다. 순전히 신학적 필요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건축 공간의 변화와 정치적 권위의 차용이 만들어낸 혼종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기독교 예배사에서 가장 널리 퍼진 순서 가운데 하나가 사실은 황제의 퍼레이드에서 왔다는 사실을 아는 교인은 많지 않다.

시편이 채운 빈자리

그렇다고 해서 입당송이 세속적 차용에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형식은 제국에서 빌려왔지만, 교회는 그 안에 자신만의 신학적 내용을 채워 넣었다. 행렬 중에 불린 것은 황제 찬가가 아니라 시편이었다. 그리고 이 시편은 무작위로 선택하지 않았다. 그날의 말씀, 그날의 절기, 그 주일이 담고 있는 신학적 주제에 맞춰 특정 시편 구절이 배정되었다. 대림절이면 기다림의 시편이, 사순절이면 회개의 시편이, 부활절이면 승리의 시편이 예배의 문을 열었다. 이로써 입당송은 처음부터 '분위기를 만드는 음악'이 아니라 그날 예배의 문을 여는 열쇠였다.

이 점은 예배 순서 전체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다. 입당송 바로 다음에 무엇이 오는지를 보라. 루터교회에서는 '죄의 고백과 용서'가, 장로교회에서는 '신앙고백'이나 '대표기도'가 놓인다. 교단에 따라 형식은 다르지만, 공통된 논리가 있다. 예배의 두 번째 순서는 회중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행위라는 것이다. 죄를 고백하든, 신앙을 고백하든, 기도를 올려드리든, 그 행위가 실존적 무게를 가지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경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입당송이 예배의 맨 앞에 놓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회중을 말씀 앞으로 데려가 그다음 순서를 위해 준비시키는 것, 이것이 입당송의 본래 기능이다.

루터가 바꾼 것, 루터가 지킨 것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이 순서를 어떻게 다루었을까. 흥미롭게도 그는 입당송을 폐지하지 않았다. 1523년 <예배 순서에 관하여>(Formula Missae)에서 루터는 라틴어 입당송을 그대로 유지했고, 1526년 <독일어 예배>(Deutsche Messe)에서는 이를 독일어 찬송가로 대체했지만, 기능 자체는 보존했다. 루터에게 중요했던 것은 형식이 아니라 원리였다. 예배의 첫 순간에 회중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아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말씀이 그날의 복음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루터가 성가대만 부르던 입당송 자리에 회중 찬송을 놓은 것은 '노래를 바꾼 것'이 아니라, 회중이 수동적 관객에서 능동적 참여자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종교개혁의 핵심 원리를 첫 순서부터 관철시킨 것이다. 동시에 이 전환은 4세기의 역설을 바로잡는 것이기도 했다. 성직자의 장엄한 행렬을 바라보는 구경꾼이 아니라, 말씀으로 소집된 공동체로서 스스로 노래하고 기도하며 예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입당의 주어가 집례자에서 회중으로 바뀐 것이다.

형식만 도착한 찬송

이 역사를 알고 나면 오늘 한국교회의 예배 모습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인다. 한국 개신교 예배는 19세기 말 미국 장로교·감리교 선교사들을 통해 도입되었다. 이들이 가져온 예배 순서에도 예배의 시작에 해당하는 찬송 순서가 있었지만, 교회력에 따라 시편을 배정하는 입당송의 전통은 이미 상당 부분 약화된 상태였다. 한국에 도착한 것은 형식이었지, 그 형식에 깃들어 있던 1500년의 신학적 논리가 아니었다. 초기 선교사들 대부분이 선교 열정에 비해 신학 역량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이다.

이후 한국교회 특유의 역동적 찬양 문화가 이 자리를 채우면서, 변화는 가속화되었다. 예배의 첫 순간이 '그날의 말씀으로 회중을 소집하는 행위'에서 '감정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시간'으로 전환된 것이다. 많은 교회에서 예배 시작 시간에 흐르는 것은 경쾌한 CCM,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 혹은 대형 스크린에 비치는 자연 풍경 영상이다. 카페에서 배경 음악이 하는 일과 교회 입당송이 하는 일이 구별되지 않는다면, 예배는 이미 첫 걸음부터 길을 잃은 것이다.

이 전환이 초래하는 피해는 입당송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그다음에 오는 순서를 떠올려 보라. 입당송 이후의 순서는 회중이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시간이다. 그날의 말씀이 회중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세워 놓아야 비로소 그 고백이, 그 기도가, 그 신앙의 선언이 형식이 아닌 실존이 된다. 그런데 입당의 시간이 신학적 준비 없이 감정적 워밍업으로 대체되면, 곧이어 따라오는 모든 순서는 맥락을 잃는다. 왜 고백해야 하는지, 무엇 앞에 선 것인지에 대한 감각 없이, 그 시간은 습관적으로 통과되는 절차가 되어 버린다. 예배의 첫 단추가 어긋나면 그 뒤의 모든 단추도 함께 어긋난다.

교회의 시간에서 감정 곡선으로

더 넓게 보면 이 문제는 교회가 시간을 어떻게 세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교회력에 따라 입당송을 선택하는 전통에서는 입당송 자체가 교회가 매주일 '세상의 어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를 선포하는 셈이었다. 세상이 분기별 실적과 선거 주기로 시간을 재는 동안, 교회는 대림-성탄-현현-사순-부활-성령강림의 리듬으로 한 해를 살아간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입당송은 그 선언의 첫 마디였다. 그런데 이런 교회 고유의 시간과 리듬에 낯선 한국의 주류 교회 예배에서 이 기능은 애초에 작동할 여지가 없다. 매주일의 예배는 역사적 서사 없이, 그날그날의 선곡에 의존하는 파편적 시작을 반복한다.

여기서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 입당송이 신학적 기능을 잃어버린 것은 단순한 무관심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선택의 결과다. 예배를 기획하는 이들이 "어떤 시편이 오늘 복음서와 연결되며 회중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가"를 묻는 대신 "어떤 노래가 회중의 감정을 끌어올리는가"를 묻는다. 그렇게 예배가 시작되는 순간, 입당송은 소비자 경험 설계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예배의 시작을 기획하는 기준이 교회라는 세계의 고유 시간에서 감정 곡선으로 이동한 것이다. 4세기 교회가 황제의 의전을 빌려왔을 때, 그들은 적어도 그 안에 시편의 말씀을 채워 넣었다. 21세기 교회는 그 말씀마저 비워 내고 그 자리에 무엇을 채워 넣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1700년이라는 거리

결국 입당송의 회복은 단순히 예배 순서 하나를 복원하는 문제가 아니다. 예배가 '소비되는 경험'인가 아니면 '참여하는 사건'인가, 교회는 '감정을 관리하는 공간'인가 아니면 '말씀으로 소집된 공동체'인가를 묻는 것이다. 입당송은 그 물음이 시작되는 지점이자, 예배 전체의 방향을 결정짓는 첫 걸음이다.

다음에 예배당에 들어설 때 한 번 주의를 기울여 보라. 예배의 첫 소리가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떠올려 보라. 당신이 지금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 강단까지의 거리, 그 거리를 처음 만들어낸 것은 4세기 로마 바실리카였고, 그 거리를 노래로 채운 것은 황제의 행렬을 본뜬 교회의 결단이었다. 1700년이 지난 지금, 그 거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문제는 그 거리를 무엇으로 채우느냐다. 일상에서 교회 문을 열고, 말씀과 성찬이 선포되는 그 자리까지. 우리는 무엇으로 채우면 걸어가는가. 이것이 입당송이 건네는 물음이다.

최주훈 / 중앙루터교회, <뉴스앤조이> 이사장

최주훈 newsnjoy@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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