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재미없어서 왔어요" 상하이 출신 약사의 서울 박사과정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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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지금 서울에는 전 세계에서 온 2030 외국인 여성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다. 단순한 어학연수나 잠깐의 체류가 아니다. 연구실에서 논문을 쓰고, 기업에서 보고서를 낸다. K-드라마와 K-팝이 심어준 막연한 호기심을 훌쩍 넘어, 이들이 서울을 삶의 무대로 선택한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우먼센스가 국적도, 언어도, 사연도 제각각인 네 명을 직접 만났다. 세 번째는 중국 상하이 출신, 연세대 박사과정 강우기(29)다.

"재미없어서 왔어요"
본명은 姜旭(강욱). 서울대 석사 때 한국 친구들이 "너무 남자 이름 같다" 해서 그때부터 강우기로 불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쪽이 더 익숙하다.
강우기는 두 번 포기했다. 처음은 대학 입시 때 의대에 갈 성적이 됐지만 상하이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부모님의 반대에 결국 상하이 해양대학 제약학과를 택하면서다. 두 번째는 졸업 후 얻은 병원 약사 자리다. 안정적이고 수입도 괜찮은 데다 '결혼 상대로 만나기 좋은 직업'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런데 2년 만에 가운을 벗었다. "맨날 똑같은 일만 했어요. 어떤 도전도 없었어요."
포기 다음엔 결심이 찾아왔다. 이번엔 부모님이 또 반대할 걸 알았기에 서울대 합격증이 나오고 나서야 통보식으로 얘기했다. 목적지로 한국을 고른 건 어릴 때부터 드라마와 아이돌을 좋아해서 익숙한 언어가 한국어였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연세대 의대 박사과정에서 신약 개발의 비임상·임상 데이터를 분석해 적정 용량과 임상시험 디자인을 도출하는 약동학 모델링 연구를 하고 있다. 이제는 5년 전 걱정했던 낯선 나라에서의 생활은 '흘러간 이야기'가 됐고,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여러 선택지 중 한국을 택한 이유가 뭔가요?
언어 때문이에요. 어릴 때부터 드라마랑 아이돌을 좋아해서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거든요. 일본어는 몰랐고요. 미국이나 유럽보다 가까우니까 부모님 설득도 쉬울 것 같았어요. 외동딸이라 멀리 보내기 싫어하실 것 같았어요. 반대할 걸 알고 학교 지원은 혼자 준비했어요.
한국어는 어떻게 배웠어요?
학원은 한 번도 안 다녔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DVD를 사서 봤거든요. 길거리에서 한 장에 2천 원이면 살 수 있었는데, <대장금> <쾌걸춘향> <별에서 온 그대>… 진짜 많이 샀어요. 소녀시대 가사를 노트에 그대로 받아 쓰기도 했고요. 어느 날 갑자기 '아, 이렇게 읽는 거구나' 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지금 실력은 한국 와서 생활하고 논문 계획서나, 이메일을 쓰면서 늘었어요.
그렇게 한국 콘텐츠를 좋아했으면, 한국에 와서도 드라마를 많이 보겠네요.
정반대예요(웃음). 한국 와서 거의 안 보게 됐어요. 아이돌도 그렇고요. 추천받으면 밥 먹을 때 틀어놓는 수준이에요. 이상하죠, 드라마 때문에 한국 왔는데(웃음).

지금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 건가요?
신약 개발 쪽이에요. 쉽게 말하면, 새로운 약을 사람에게 처음 쓸 때 '얼마나 줘야 효과가 있고 안전한가'를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작업이에요. 비임상·임상 데이터를 가지고 모델링을 하는데, 이게 실제 임상시험 디자인에 직접 반영돼요. 약사 일이 지루했던 이유가 매일 똑같은 루틴 때문이었거든요. 이건 데이터가 들어올 때마다 문제가 다르고, 계속 새로운 약을 다루니 흥미로워요. 서울대에서 석박통합으로 시작했는데, 식약처에 제출하는 서류 작업이 외국인한테는 너무 벅찬 부분이 있어서 석사만 마치고 연세대로 옮겨 방향을 약간 변경해 박사과정을 하고 있어요.
졸업하면 어디서 일하고 싶어요?
제약회사 신약 개발팀이 1순위예요. 모델링 전공이면 갈 수 있는 자리가 국내뿐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에도 있거든요. 선배 중에 실제로 그쪽으로 취직한 분들도 있어서요. 논문이 학술지에 억셉트돼야 졸업이라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부터 1년 내에 졸업하는 게 목표예요. 취직이 되면 한국에 더 있고 싶고, 안 되면 중국이나 다른 나라를 알아봐야죠.

연구 말고 개인 시간엔 뭘 해요?
'강우기'라는 유튜브를 하고 있어서 영상 찍고 편집해요. 크로스핏 운동 영상과, 카페 찾아다니는 일상 브이로그, 두 종류예요. 유튜브에 올리는데 어차피 편집한 거 아까워서, 중국판 인스타그램인 샤오홍슈에도 같이 올려요. 중국에선 유튜브를 못 쓰니까 거기 팔로워들은 완전히 다른 층이에요. 주말에 카페 자주 오는 것도 그 연장선이에요. 새로운 카페를 소개하며 찍기도 하고, 영상 편집을 할 때도 환경을 바꿔야 기분도 달라지거든요.
중국과 비교해서 한국 생활의 장단점이 있다면요?
가장 큰 장점은 인터넷 자유예요. 중국에서는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쓰려면 VPN이 필요해요. 저는 고등학생 때 덕질 때문에 소셜미디어를 못 쓰면 답답해서 돈 내고 썼는데, 사실 불법이거든요. 여기선 그냥 쓸 수 있다는 게 처음엔 신기했어요. 단점은 물가예요. 상하이에서 수박 한 통이 2000원 정도인데 여기는 2만 원이잖아요.
중식도 그래요. 한국에서 토마토 계란볶음이 1만 원이 넘는데, 중국에서는 사먹는 사람도 없고 만약 사먹는다 해도 1500원 수준이거든요. 그리고 맛이 달라요. 고향 맛을 못 찾겠어요. 최근 한국에서 인기 있는 하이디라오는 중국에서는 김밥천국 느낌이에요. 중국 현지에서는 자주 가는 곳은 아니에요. 한국에서는 비싸기까지 하고요. 그나마 딤딤섬이라는 체인점이 맞는 편이라 가끔 갔었는데, 생각해보니 안 간 지 3년은 된 것 같아요(웃음). 결국 중국 음식이 그리우면 집에서 직접 만들게 되더라고요.
온라인에서 반중 정서가 화제가 될 때 어떤 기분인가요?
솔직히 신경 안 써요. 중국에도 반한 감정 있는 사람 있고, 나라마다 다 그런 사람 있잖아요. 나를 직접 공격하지 않으면 신경 안 씁니다. 오히려 처음 한국 왔을 때 걱정이 많았어요. 중국인이라 안 받아주면 어떡하지, 편견 있으면 어떡하지. 근데 5년 동안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게 없었어요. 그게 오히려 감동이었어요.

중국에는 자주 가나요?
요즘엔 많이 줄었어요. 예전엔 1년에 두 번은 갔는데, 무비자 이후로 중국행 비행기표가 비싸지면서 작년엔 한 번밖에 못 갔어요. 올 설에는 아예 안 갔고요. 사실 할머니가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나서, 그때부터 더 안 가게 된 것 같아요. 부모님이랑은 영상통화로 충분히 소통하고 있고, 가면 친구 만나는 게 전부라서요. 귀찮으면 그냥 안 가요.
한국에 와서 의외로 달라진 게 있나요?
혼자 잘 다니게 됐어요. 중국에서는 쉬는 날 항상 친구들이랑 같이 다녔거든요. 카페도, 밥도요. 여기 오니까 그럴 수가 없잖아요. 처음엔 혼자 카페 오는 것도 어색했는데 이제는 편해요. 운동도 그렇고요. 원래 전혀 안 했는데 연애하다 헤어지고 나서 친구가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며 크로스핏을 추천해줬어요. 하다 보니 진짜 괜찮더라고요. 지금은 크로스핏 체육관에 하루에 두 번 가요.
한국에 오고 싶은 외국인에게 한마디 한다면?
정말 한국어가 중요합니다. 한국어부터 먼저 배우세요. 저는 어느 정도 한국어를 할 수 있어서 뽑혔는데, 이후에 한국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 연구자가 들어왔을 때 교수님이 많이 힘들어하셨거든요. 나중에 그 교수님이 이제 외국인은 안 뽑겠다고 하실 정도였어요. 한국어는 어렵지만 접근하기는 쉬운 언어예요. 학원 안 가도 드라마 보고 노래 들으면 어느 순간 알게 돼요.
한국이 외국인에게 더 나은 나라가 되려면 뭐가 바뀌면 좋겠어요?
딱히… 더 바라는 게 없이 지금도 괜찮아요.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요. 너무 잘 살고 있어서요.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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