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기를 거부하는 콤비가 《빽 투 더 퓨처》를 만났을 때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2026. 5. 1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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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더너스가 꽂혔다…77자 제목의 괴짜 영화 《너바나 더 밴드》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 제목만 무려 77자다. 《너바나 더 밴드 : 전설적 밴드 '너바나'와는 별 관련 없는 '너바나 더 밴드'의 콤비 맷과 제이. 어느 날 공연을 위해 타임머신을 만드는 황당한 작전을 세우고 처음 만났던 17년 전으로 돌》. 문장이 온전히 끝마쳐지지도 않은 시놉시스까지 제목의 일부로 욱여넣는 방식은 개봉작 홍보에 좀처럼 시도되지 않지만, 귀엽고 커다란 농담 같은 이 영화의 분위기와는 퍽 잘 어울린다. 문상훈이 프런트맨으로 있는 코미디 크루 빠더너스(BDNS)가 수입·배급사 그린나래미디어와 손잡고 직접 수입한 영화라는 점을 떠올릴 때 오히려 유쾌함을 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음악 팬들을 실망시켰다면 미안하지만 커트 코베인의 전설적 밴드 '너바나(Nirvana)'는 '너바나 더 밴드'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애초에 스펠링부터 다르다. 맷 존슨과 제이 맥캐럴이 꾸린 밴드는 팀명에 N 하나를 교묘하게 더 붙인 'Nirvanna'. 커버 밴드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애초에 이들은 팀으로서 음반을 발표하거나 음악 공연을 한 적이 없다. 이들이 무대에 설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공연장 '리볼리' 역시 명성만 이용당하는(?) 중이다. 맷과 제이는 음반을 내거나 팬덤을 확보하는 등의 현실적 단계들을 준비하는 대신, 그저 매일 리볼리에서 공연할 수 있는 온갖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를 도모한다. 그리고 실제로는 공연장에 전화조차 건 적이 없으며 무수한 계획은 언제나 성공 근처에도 못 간다는 것이 이들 코미디의 뼈대다.

영화 《너바나 더 밴드》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성공할 리 없는 계획만 세우는 이들

캐나다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인 맷 존슨과 작곡가 제이 맥캐럴의 프로젝트 '너바나 더 밴드'는 2007년 웹시리즈에서 출발해 캐나다의 TV 채널인 'Viceland'에서 정식 시트콤 시리즈로 잠시 방영된 바 있다. 이후 론칭 1년 반 만에 채널이 사라진 것은 맷과 제이의 코미디를 위한 거대한 운명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들은 절대 성공할 리 없는 작전 수행, 제이가 피아노를 치고 맷이 즉흥적으로 가사를 얹는 일부 상황들, 카메라맨 재러드 라브와 함께 카메라를 들고 게릴라로 나선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리액션 등을 영상에 담는다. 맷과 제이는 실제 인물인 동시에 이 모큐멘터리 세계관 안에서 그들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연기하는 중이다.

망상에 가까운 계획을 끝도 없이 세우는 맷과 묵묵히 따라가며 늘 함께인 제이의 여정은 《너바나 더 밴드》를 통해 영화로까지 확장됐다. 애초에 영화 제작이 목표는 아니었지만 캐나다 텔레비전 영화 제작 기관(Telefilm Canada)이 시리즈에 투자하지 않는 관계로 영화여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맷 존슨이 스마트폰 회사 블랙베리의 성공과 몰락을 다룬 전기 코미디 영화 《블랙베리》로 업계에서 주목받는 연출가가 된 것 역시 중요한 배경이다. 오랜 세월 실존이자 가상의 인물 맷과 제이로 살아온 콤비는 여전히 '너바나 더 밴드'를 연기하고 있지만, 기존 시리즈를 보지 않은 관객이라도 이 세계관에 들어오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애초에 이들의 에피소드가 전혀 연속성이 없는 데다 도달하지 못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콤비의 코미디라는 확실한 재미가 핵심이어서다.

영화는 맷이 리볼리 클럽 공연을 위해 필요한 명성을 얻을 또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리면서 시작된다. 초고층 건물의 외부 난간에서 안전장치에 의지해 걷는 익스트림 체험 시설인 '엣지 워크'로 유명한 캐나다 토론토 CN타워에서 로저스 센터 경기장으로 낙하산을 멘 채 뛰어내리자는 기상천외한 계획이다. 이 아이디어는 당연히 실패하는데, 이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릴 때 기상 문제로 경기장의 돔 천장이 닫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치지도 않은 채 이어진 다음 계획은? '미래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홍보하기 위해 《빽 투 더 퓨처》(1987)의 브라운 박사처럼 차량을 개조해 타임머신을 만드는 일이다.

영화 《너바나 더 밴드》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허술해 보이는 제작 방식, 그 안의 정교한 유머와 감동

'드로리안'처럼 캠핑카를 개조한 타임머신, 영화 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은 인상적 스코어를 변주해 배경 음악으로 슬쩍 활용한 장면, 전기 케이블의 길이가 충분치 않은 탓에 발생하는 긴박감의 순간까지 《너바나 더 밴드》는 《빽 투 더 퓨처》를 충실하게 경유하며 느슨한 형제 영화가 되기를 자처한다. 그 가운데 해당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맷과 제이의 상황에 즉흥적으로 끼어든 사람들의 반응과 리액션이 적극적으로 쓰이며 이 영화만의 차별화가 생겨난다. 우연히 발생한 재미를 포착하고 극에 활용하는 데 익숙한 맷과 제이의 유연한 연기와 기동성 높은 제작 방식이 주효했다.

이걸 어떻게 해냈나 싶은 황당무계한 전개들은 제작 규모를 무리하게 키우는 대신 오직 아이디어들로 채워넣은 것이 여럿이다. 허술하게 만든 타임머신이 기적적으로 작동하는 바람에 콤비가 2008년으로 돌아간 상황은 당시 개봉 영화들과 전자제품의 광고 간판, 유행하던 스타일의 옷을 입은 보조연기자들로 해결했다. 맷과 제이가 (그때도 리볼리 공연을 위한 홍보 방법을 한결같이 고민하던!) 과거의 자신들을 만나는 장면도 컴퓨터그래픽이 아니라 그즈음 찍어둔 영상을 활용한 것이다. 화질이 갑자기 바뀌는 문제는 2008년의 사람들에게 수상하게 보이지 않게 구형 카메라로 바꿔 들었다는 대사로 눙치며 넘어간다. 몇 년 전 캐나다 뮤지션 드레이크의 경호원이 총기 사망한 사건을 접한 두 사람이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경찰 기자회견 상황을 찍어둔 소스 촬영도 이번 영화에 알뜰하게, 하지만 더없이 적확한 장면으로 썼다.

황당한 타임머신 모큐멘터리가 전부인가 싶던 《너바나 더 밴드》의 진짜 얼굴은 후반부에 찾아온다. 이들의 시간여행은 영화가 가슴 찡한 우정의 이야기로 나아가기 위한 단초이기도 하다. 맷이 '미래에서 온 사람들' 작전을 신나게 설명할 때 비 맞은 생쥐 꼴로 집에 들어온 제이가 보는 것은 두 사람의 세월이 담긴 사진 액자들과 여기저기 구겨진 채 굴러다니는 각종 연체 통지서, 치우지 않은 쓰레기들과 빨래 더미다. 한 명이 여전히 철없는 피터팬이고 싶어 하지만 다른 한 명은 현실을 보기 시작했을 때, 나아가 함께해온 시간 전체를 부정하고 되돌리고 싶다고까지 생각할 때 둘 사이에는 균열이 발생한다. 애초에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제이의 심경 변화는 예상치 못한 클라이맥스를 향해 간다.

큰 목표와 야심 없이 오직 재미만을 위해 달려온 시간들은 그저 의미 없는 일탈이었을까? 어른의 세계에 편입하기를 끝없이 유예하며 자기 만족감만을 키우는 철없는 짓에 불과한 걸까? 맷과 제이가 장난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모큐멘터리를 찍던 과거에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세계로 확장돼 극장에 걸릴 날을 상상하지 못했듯, 현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주체는 지금의 내가 아닐지 모른다.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단정하지 않은 채로 꿈을 믿고 하루하루를 살기. 곁에 있는 존재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며. 《너바나 더 밴드》가 영화를 본 이들의 손에 꼭 쥐여주는 시간여행의 비밀이다. 누구나 걸작이라고 인정하는 종류의 작품은 아니겠지만, 허술해 보이는 외관 안에 정교하게 심어둔 유머와 감동이 탁월한 이 영화는 분명 작고 예쁜 수공예품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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