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 사업재편, 실적으로 답했다···‘승계입지’ 다지는 이규호
계열 통합·비주력 정리·고부가 소재 강화···지분 승계 앞두고 경영능력 입증 과제 부각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이규호 코오롱그룹 부회장이 추진해온 사업 재편 작업이 실적 개선으로 이어져 눈길을 끌고 있다. 그룹 주력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올 1분기 영업이익을 두 배 이상 늘리며 산업자재·화학·패션 부문 전반의 수익성 회복을 확인한 것이다. 그동안 코오롱그룹은 계열사 통합, 비주력 사업 정리, 고부가 소재 사업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며 지배구조 단순화와 포트폴리오 재정비에 속도를 내왔다.
특히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대형 인수합병을 통한 외형 확대보다 계열사 간 중복 기능을 줄이고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덜어내는 방식의 체질 개선에 무게를 둔 점이 특징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실적 개선을 단순한 분기 호조가 아니라 이 부회장 체제에서 추진된 사업 재편의 초기 성과로 해석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코오롱인더 영업익 130% 증가···사업재편 첫 성과 숫자로 확인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코오롱그룹의 사업 재편 성과는 주력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 실적에서 먼저 드러났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2374억원, 영업이익 61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0.5%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영업이익은 129.9% 증가했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797억원으로 303.1% 늘었다. 전 분기와 비교하면 영업이익 증가율은 534.3%에 달한다. 외형 성장은 제한적이었지만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면서 체질 변화가 숫자로 확인된 셈이다.
수익성 개선은 산업자재, 화학, 패션 부문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산업자재 부문에서는 아라미드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판매가 늘며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화학 부문은 정기보수를 마친 석유수지 설비가 다시 가동되면서 이익 회복에 기여했다. 패션 부문도 상품 운용 효율화와 신상품 판매 확대에 힘입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특정 사업 하나의 일회성 개선이라기보다 주요 사업부 전반에서 비용 구조와 판매 효율이 함께 좋아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해부터 OE(Operation Excellence·운영 효율화) 프로젝트와 AX(AI Transformation·인공지능 전환)를 추진해왔다. 생산, 판매, 재고 운용 전반에서 낭비 요인을 줄이고 고부가 제품 판매를 늘리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방어해온 것이다. 아라미드 사업부 역시 AI 가상 환경에서 사전 검증하는 시스템을 통해 생산 효율을 끌어올렸다. 단순한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제조·판매·재고 관리 전반을 데이터 기반으로 바꾸는 작업이 실적 개선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실적을 이규호 부회장 체제의 초기 성과로 해석하는 시각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뒤 대형 인수합병을 통한 외형 확대보다는 계열사 통합, 완전자회사화, 비주력 사업 정리 등 사업 구조를 다시 짜는 작업에 집중해왔다. 코오롱그룹이 그동안 여러 계열사에 흩어져 있던 사업을 묶고 중복된 기능을 줄이며 수익성 낮은 부문을 정리해온 흐름이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실적 개선과 맞물리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이다.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은 코오롱글로벌에서 인적분할돼 출범한 수입차 유통 계열사다. BMW, 아우디, 볼보, 롤스로이스 등 수입차 판매 사업을 맡고 있다. 코오롱은 주식교환을 통해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을 지주사 ㈜코오롱의 완전자회사로 편입했다. 상장 계열사를 지주사 아래로 넣으면서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하고 모빌리티 사업 재편의 여지를 키운 것이다. 이는 단순한 계열 분리가 아니라 그룹 내 사업 축을 다시 정렬하는 작업에 가깝다.
소재 부문에서도 재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코오롱ENP와 합병을 마무리했다. 코오롱ENP는 자동차와 전기전자, 의료 등 산업용 고기능 플라스틱 소재를 생산하는 회사다. 이번 합병으로 코오롱인더스트리는 기존 산업자재와 화학 사업에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역량을 더하게 됐다. 고부가 소재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는 흐름이 한층 뚜렷해진 것이다.
복합소재 사업도 별도 축으로 재편됐다. 코오롱글로텍은 2024년 첨단 복합소재 전문회사 코오롱스페이스웍스를 출범시켰다. 그룹 내 흩어져 있던 차량 경량화 부품, 방탄 특수소재, 수소탱크, 배터리 강화 소재 사업 등을 한데 묶은 것이다. 이는 우주항공, 모빌리티, 방산 분야로 활용 범위를 넓히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기존 사업을 단순히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장성이 높은 고부가 영역으로 사업 축을 이동시키려는 전략이다.
레저 부문에서도 사업 포트폴리오가 넓어지고 있다. 코오롱글로벌은 지난해 말 MOD와 코오롱LSI를 흡수합병하며 레저·호텔 운영 역량을 더했다. MOD는 골프장과 콘도 사업을, 코오롱LSI는 호텔과 식음 서비스 사업을 맡아왔다. 코오롱글로벌은 기존 건설·상사 중심 사업에 리조트, 골프장, 호텔 운영 사업을 붙이며 수익원 다변화에 나섰다. 건설 경기 변동에 따른 실적 부담을 줄이고 안정적인 운영 수익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비주력 사업 정리도 병행되고 있다. 코오롱글로텍은 생활소재사업부 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해당 사업부는 인조잔디 등을 생산하는 부문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도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정리하고 확보한 재원을 아라미드, 수소 소재 등 고부가 영역에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그룹 전반의 재편 방향이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키울 것은 키우는' 선택과 집중에 맞춰져 있는 셈이다.
◇지분 승계 앞둔 이규호···입지 좌우할 변수는 '경영 성과'
이 같은 사업 재편은 이규호 부회장의 승계 구도와도 맞물려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코오롱인더스트리와 코오롱글로벌 주식을 장내 매수하며 처음으로 상장 계열사 지분을 확보했다. 취득 규모는 약 2억원 수준이다. 코오롱 측은 이를 책임경영 차원의 주식 매입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룹 승계의 핵심인 지주사 ㈜코오롱 지분은 아직 보유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에게는 향후 지분 승계 이전에 경영 능력을 실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현재 코오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지주사 ㈜코오롱이 있다. ㈜코오롱은 주요 계열사를 거느리며 그룹 전체 사업 방향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이웅열 명예회장이 보유한 지분이 향후 승계의 핵심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 부회장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섰지만 지주사 지분을 아직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경영 성과를 통해 시장과 내부 이해관계자에게 존재감을 보여주는 일이 중요하다. 단순히 오너가 4세라는 이유만으로 승계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 만큼, 사업 재편의 성과가 향후 승계 입지와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제도 적지 않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실적 개선이 일회성 요인에 그치지 않고 연간 흐름으로 이어질지 확인해야 한다. 산업자재와 화학 부문은 글로벌 경기, 원재료 가격, 수요 변동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패션 부문 역시 소비 심리와 재고 관리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크다. 레저와 모빌리티 사업은 경기 민감도가 높고, 건설·상사 부문은 시장 환경에 따라 수익성이 흔들릴 수 있다. 사업 재편의 방향이 맞더라도 각 사업의 체질 개선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코오롱그룹이 집중하고 있는 아라미드, 수소 소재, 복합소재,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등은 성장성이 높은 대신 기술 투자와 시장 개척이 필요한 영역이다. 단기간에 대규모 수익을 내기보다 설비 투자, 연구개발, 고객사 확보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성과를 쌓아야 한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기존 사업의 수익성을 방어하면서도 미래 소재 사업의 성장 기반을 동시에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형 구조조정과는 다른 난도 높은 경영 과제다.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의 완전자회사화 역시 향후 성과가 중요하다. 수입차 유통 시장은 브랜드별 판매 경쟁이 치열하고 전기차 전환과 소비 둔화에 따른 변수도 크다. 지주사 아래로 편입해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한 만큼, 실제 수익성 개선과 사업 확장으로 이어져야 재편의 의미가 커진다. 레저 사업도 마찬가지다. 호텔, 골프장, 콘도 운영 사업은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기대할 수 있지만 경기와 소비 여건에 민감하다. 건설·상사 중심이던 코오롱글로벌의 수익원을 다변화하는 효과가 실제로 나타나는지가 관건이다.
이 부회장에게는 그룹 안팎의 시선도 부담이다. 코오롱은 아직 본격적인 지분 승계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 재편과 실적 개선은 이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보여줄 가장 직접적인 지표가 된다.
업계 관계자는 "코오롱의 재편은 수익성 낮은 사업은 덜어내고 성장성이 높은 소재, 모빌리티, 레저 축에 자원을 다시 배분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며 "주력 계열사의 실적 개선 흐름이 이어진다면 이규호 부회장이 지분 승계에 앞서 경영 능력을 입중하는 데도 긍정적인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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