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보험’은 사라졌지만…일상 불안이 만든 미니보험 시대
PC는 휴대폰, 애완견은 펫으로...화제성보다 수요가 ‘관건’
![[사진=게티이미지뱅크]](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6/552795-r1dG8V7/20260516102009702gjwm.jpg)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지난 2001년 월 500원짜리 PC보험은 컴퓨터 도난·파손 시 새 제품 구입 비용을 보장하며 보험시장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후 애완견보험, 왕따보험, 식중독보험, 조기유학생보험, 연인보험, 날씨보험, 팬티보험까지 이른바 '이색보험'이 잇따라 등장했다. 생명·화재·자동차보험처럼 큰 위험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보험이 개인의 일상 속 작은 불안까지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25년이 지난 지금, 이들 상품의 운명은 갈렸다. 일부는 생활밀착형 보험으로 형태를 바꿔 자리 잡았지만, 대부분은 단발성 마케팅 상품에 그친 채 시장에서 사라졌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보험업계는 모바일 채널을 기반으로 휴대폰·반려동물·레저·날씨 등 일상 속 위험을 세분화한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 과거 이색보험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실험에 가까웠다면, 최근 미니보험은 짧은 기간과 낮은 보험료를 앞세워 필요한 위험만 골라 보장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웃음거리였던 위험, 생활 속 보험이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휴대폰보험이다. 보험업계에서는 현재 휴대폰보험 시장 규모가 연간 1조원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고가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수리비 부담이 커지면서 파손·분실·도난 보장이 생활형 보험으로 자리 잡은 영향이다.
실제 한 디지털 손해보험사의 경우 2024년 3월 대비 2026년 3월 기준 휴대폰보험 누적 가입자가 114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동물을 대하는 인식 변화도 상품의 체질을 바꿨다. 과거 애완견보험은 반려견이 죽거나 분실됐을 때 위로금을 지급하고, 다쳤을 때 치료비를 보상하는 구조였다. 지금은 '애완견'이라는 표현보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보편화됐고, 상품도 펫보험으로 바뀌었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동물병원 진료비 부담은 소비자가 체감하는 현실적인 위험이 됐다. 국내 13개 보험사의 지난해 말 기준 펫보험 보유계약 건수는 25만1822건으로 전년 대비 55.3% 늘었다. 신규 계약도 12만9714건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10만건을 넘어섰다.
날씨보험도 성격이 달라졌다. 2001년 당시에는 공연이나 체육대회, 야외 행사가 비 때문에 취소됐을 때 손실을 보전하는 이벤트성 상품에 가까웠다. 최근에는 폭우·폭염·한파 등 기상 조건이 소상공인 매출과 산업 현장에 영향을 주면서 기후 리스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다.
손해보험업계에서는 강수량, 최고기온, 최저기온 등 기상현상이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지수형 날씨보험도 등장했다. 과거 날씨보험이 행사 하루의 변수를 보장했다면, 최근에는 기후 변화에 따른 영업 손실과 생계 위험까지 다루는 상품으로 바뀌고 있다.
식중독보험이나 왕따보험, 조기유학생보험은 이름 그대로 남지는 않았지만 다른 상품 안으로 흡수됐다. 식중독은 어린이보험이나 여행자보험의 보장 항목으로, 학교폭력 피해는 자녀보험과 정신건강 관련 보장으로 나뉘어 다뤄지고 있다. 조기유학생보험도 해외장기체류보험이나 여행자보험 확장형 상품으로 이어졌다.
호기심 끌었지만, 지갑은 열지 못했다
반대로 연인보험이나 결혼보험, 팬티보험은 시장에서 사라졌다. 연인보험은 연인의 사망·입원, 생일 선물비, 커플링 비용 등을 보장하는 방식이었다. 결혼보험은 결혼 취소나 신혼여행 중 상해를 보상했다. 팬티보험은 한 속옷업체가 홍보 차원에서 가입한 상품으로, 특정 신체 부위 손상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이들 상품은 당시 소비자의 호기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보험이 오래 유지되려면 단순한 화제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위험이 반복적으로 존재하고, 발생했을 때 손실이 소비자에게 부담이 되며, 이를 대비하기 위해 보험료를 계속 낼 만큼의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
휴대폰 수리비나 반려동물 병원비, 기상 악화에 따른 영업 손실은 소비자가 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실질적인 위험이다. 반면 팬티보험이나 연인보험은 매달 보험료를 내며 대비해야 할 위험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같은 '이색보험'으로 출발했지만, 생활 속 필요와 연결됐는지가 생존 여부를 가른 셈이다.
최근 미니보험과 플랫폼 보험도 이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과거 이색보험이 일상 속 사소한 영역도 보험 상품이 될 수 있는지 타진한 실험이었다면, 현재의 미니보험은 이를 모바일 채널에서 짧은 기간, 낮은 보험료, 특정 위험 중심으로 구현한 형태다.
전문가들 또한 상품의 생존 여부는 결국 소비자의 지속적인 필요성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명예교수는 "보험 상품이 유지되려면 소비자가 그 위험을 자신의 생활 속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며 "PC보험이 휴대폰보험으로, 애완견보험이 펫보험으로 이어진 것은 수리비나 진료비처럼 실제 비용 부담을 체감하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면 연인보험이나 팬티보험은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소비자가 계속 보험료를 내며 대비해야 할 위험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결국 생활 속에서 얼마나 필요성을 느끼느냐가 상품의 지속성을 가른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도 "보험은 화제성만으로 유지되기 어렵다"며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이를 나눌 수 있는 가입자 집단이 있어야 상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