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고공행진에도 개미들 돈 못 버는 이유 있었다
장기 투자 강조해도 불신 여전…“시장 신뢰 회복이 먼저”
(시사저널=최동훈 시사저널e 기자)
국내 투자자들이 최근 극심한 변동장 속에서 수익 창출의 타이밍을 놓칠까 두려워하는 이른바 'FOMO(Fear Of Missing Out)' 상태에 빠져 주식을 단기간에 자주 사고파는 단타 매매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증시 활성화와 가계 자산 형성을 위해 장기 투자를 유도하고 있지만, 개미투자자들의 손바뀜은 오히려 갈수록 빨라지는 추세다.

주식 10개 중 4개 꼴로 한 달 새 손바뀜
한국거래소 데이터 마켓 플레이스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단타 열풍의 실태가 명확히 드러난다. 국내 전체 주식의 손바뀜 정도를 보여주는 거래회전율은 올해 들어 급등했다. 상장주식과 시가총액 거래회전율(장 마감 기준)은 각각 1월2일 1.08%, 0.69% 수준이었으나 5월12일에는 2.19%, 1.27%로 상승했다. 이 중 상장주식 거래회전율을 월 단위로 환산해 보면 1월 31.29%에서 4월 43.28%로 11.99%p나 뛰었다.
상장주식 거래회전율은 거래된 주식 수를 전체 발행 주식 수로 나눈 비율이다. 즉, 주인이 바뀐 주식 물량이 1월2일에 비해 5월12일에는 2배나 늘어났다는 의미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지난 4월 한 달 동안에만 국내에 유통된 주식 10개 중 4개의 주인이 바뀐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해외 주요 증시와 비교해 봐도 이례적으로 특이한 수준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국내 증시의 하루 평균 거래회전율을 분석한 결과 코스피는 1.48%, 코스닥은 2.56%로 집계됐다. 이는 미국 S&P500(0.22%)이나 일본 닛케이(0.37%)에 비해 압도적으로 손바뀜이 잦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한미래전략연구소 역시 지난달 발간한 '한국 주식시장 구조 전환을 위한 조건' 보고서를 통해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코스피 종목 평균 보유 기간이 9일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투자자들이 장기 보유를 포기하고 단타에 몰두하는 핵심 배경에는 극심한 시황 변동성이 자리하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종가 기준으로 2월25일 처음 6000을 돌파한 데 이어 2개월여 만인 5월6일 7000을 돌파하며 상승세를 탔지만, 이란 전쟁 여파로 한때 5000선까지 급락하는 등 엄청난 기복을 보였다.
코스피200 옵션 가격을 기준으로 향후 30일간의 예측 변동성을 보여주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도 1월2일 30.60에서 5월12일 70.14까지 치솟았다. 보통 이 지수가 20p대면 안정적, 30p 이상이면 변동성이 크다고 해석하는데, 4개월 사이 투자자들이 체감하는 변동 폭 규모가 2배 넘게 확대된 셈이다.
이렇다 보니 잦은 조정 국면을 겪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장기 투자보다는 단기 매매로 치고 빠지는 전략이 하나의 생존 공식처럼 굳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투자자 A씨는 "지금은 시장이 좋아 이런저런 매매 방법이 통하지만 시장이 꺾이면 단타의 위력을 알 수 있다던 한 투자자의 말에 공감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단기간에 고수익을 노릴 수 있는 금융상품의 인기도 이를 증명한다. 조사 기간 동안 펀드 1좌당 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은 상장지수펀드(ETF) 상위 14개가 모두 코스피나 특정 산업군을 기초자산으로 둔 레버리지 ETF였다. 또한 거래 대금이 가장 많은 ETF 상위 5개 중 3개 역시 주가 흐름을 순·역방향으로 배수 추종하는 레버리지 및 인버스 상품이었다. 급등락하는 장세에서 큰 손실 위험에도 투자자들의 돈이 단타형 상품에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단타 추세에 대해 정부와 관계기관들은 수익률과 증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경계하고 나섰다. 황선오 금감원 자본시장·회계 부문 부원장은 "단기 매매는 시장 변동성을 확대할 뿐 아니라 누적된 거래 비용 때문에 투자 수익률이 잠식될 수 있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근본적인 자본시장 활성화와 경제 부양을 위해 주식 장기 보유에 대한 인센티브 도입을 적극 검토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4월9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국민경제자문회의 제1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장기 보유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데 경영권을 행사하는 지배주주들에게 이익이 몰릴 가능성이 크다"며 "소액주주들만 대상으로 하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단기 상품의 딜레마
한국은행 조사국 거시분석팀도 5월7일 배포한 자료 '우리나라 주식 자산효과에 대한 평가'에서 "중장기적으로는 주식시장이 가계 전반의 자산 형성 기반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안정적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켜 주식 자본이득의 부동산 쏠림을 막고 가계의 주식 장기 보유 유인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다소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장기 투자를 장려하면서도 국내 투자자들의 시선이 미국 등 해외 증시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단기 투자상품의 규제를 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4월28일 단일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두는 레버리지·인버스 유형의 ETF와 상장지수증권(ETN) 상장을 허용하며 관련 제도를 손봤다.
국채시장에서도 비슷한 고육지책이 나왔다. 정부는 2024년 6월 최소 5년 만기로 도입했던 개인용 국채가 일반 투자자들에게 외면받자, 지난달 단기 투자 성향을 고려해 3년물을 최초로 도입했다. 이 상품은 가산금리나 분리과세 혜택이 없는데도 최고 1.42대 1(복리채 기준)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흥행했다. 개인용 국채를 독점 유통하는 미래에셋증권은 보도자료를 통해 "(개인용 국채가) 3년물 이표채·복리채로 신규 출시되는 등 투자 매력이 한층 높아져 국민들의 안정적인 자산 형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전문가들은 개미들이 단타의 늪에 빠져든 일차적인 원인은 극심한 장세 변동성이지만, 그 이면에는 깊게 깃든 '증시 불신'이 있다고 진단한다. 일부 기업이 총수 일가에만 이익이 몰리도록 경영하거나 악의적인 공매도, 작전 세력 등으로 인해 일반 투자자가 피해를 보는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장기 투자는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정의정 전국투자자협의회 대표는 "과거 국내 기업들은 주주들을 상생 대상이 아니라 (자금 조달 등의)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증시에 대한 불신감이 커지고 단타가 성행했던 것"이라며 "상법 개정 등을 통해 그런 폐단이 사라지고 장기 투자할 시스템이 조금씩 마련되고 있는데 시장이 안정적으로 상승하고 손실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이 다듬어지면 장기 투자를 더욱 촉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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