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벌레, 누가 누구의 침입자인가

2026. 5. 1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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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는 만화가 일상인 세상입니다.

지상이 인간의 것이라면 땅은 원래 벌레와 쥐의 공간이었다.

다리가 많아 징그럽기만 했던 돈벌레도 계속 보다 보니 어딘가 헐렁하고 귀여운 매력이 있다.

벌레로 시작한 이야기는 끝내 인간을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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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깡의 어쩌면, 인생 만화]
절자 만화 '지층거주자: 반지하로부터의 수기'
편집자주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는 만화가 일상인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사이로 책장을 끼워가며 읽는 만화책만의 매력을 잃을 수 없지요. 웹툰 '술꾼도시처녀들', 오리지널 출판만화 '거짓말들'의 만화가 미깡이 한국일보를 통해 감동과 위로를 전하는 만화책을 소개합니다.
'지층거주자: 반지하로부터의 수기'의 한 장면. 세종마루 제공

벌레가 무섭다. 정확히 말하면 바퀴벌레, 돈벌레, 집게벌레, 지네, 거미, 꼽등이…(이하 생략). 어릴 때 살던 구옥에서는 심심찮게 그들과 마주쳤다. 자주 본다고 익숙해지는 건 아니어서, 볼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내 몸이 훨씬 큰데 누가 누구를 무서워하나? 담담해지자!' 싶지만, 막상 벌레를 보면 늘 놀라고 만다. 이번 생은 벌레와 불화하기로 정해져 있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일이 있었다. 공원 잔디밭에 앉아 있는데 내 몸 위로 커다란 벌레 한 마리가 툭 떨어진 것이다. 평소의 나라면 기겁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놀라지 않은 나 자신에게 오히려 놀라 가만히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여기가 공원이고, 잔디밭이고, 나무 아래였기 때문이었다. 벌레가 있는 게 당연한 장소. 있을 곳에 있는 존재는 무섭지 않다.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데 있는 존재가 낯설고 기이하고 무서운 것이다. 같은 벌레가 집 어딘가에 나타났다면 여지없이 비명을 질렀겠지. '네가 있을 곳에 있다면야' 하면서 벌레와의 거리를 조금 좁혔다고 생각했다.

있을 곳에 있으면 된다니. 이 말이 참 오만했다는 걸 깨닫게 해준 만화가 있다. 절자 작가의 '지층거주자: 반지하로부터의 수기'다. 이 작품은 "주거화된 참호"인 지층에 살게 된 화자가 바퀴벌레와 처음 마주치면서 시작된다. 분명 주민등록등본에는 화자 한 명만 기록되어 있는데, 집에는 이미 미등록 거주민이 살고 있었다. 주거 침입! 공포에 사로잡힌 화자는 그들을 처치하는 일을 정당방위쯤으로 여기려 한다. 그러나 곧 다시 생각해본다. 지층은 땅에 가장 가까운 곳. 지상이 인간의 것이라면 땅은 원래 벌레와 쥐의 공간이었다. 어쩌면 주거침입을 한 쪽은 자신인지도 모른다.

지층거주자: 반지하로부터의 수기·절자 지음·세종마루 발행·144쪽·1만5,000원

화자는 그들을 침입자가 아니라 동거자로 재명명하고 그들에 대해 알아간다. 오랫동안 도시전설 같은 루머 속에서 관념적 몸집만 키워온 바퀴벌레를 조사하고, 초파리의 부지런한 삶에서 교훈을 얻는다. 다리가 많아 징그럽기만 했던 돈벌레도 계속 보다 보니 어딘가 헐렁하고 귀여운 매력이 있다.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몰라 위협적이었던 꼽등이 역시, 사실은 전투력이 0에 수렴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벌레 관찰 에세이 같지만, 작품은 점점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살아있는 벌레를 때려잡고, 살충제를 뿌릴 때 느낀 불편함에서 시작된 질문이다. 어떤 생명은 죽여도 되고, 어떤 생명은 안 되는가. 그 기준은 대체 어떻게 정해지는가. 벌레로 시작한 이야기는 끝내 인간을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한 공간을 함께 쓰며 연결되어 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이유만으로 타자를 쉽게 혐오하고 내쫓아도 되는 것일까. 살해해도 되는 것일까.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차분하지만 집요하게 사유하게 만드는 아주 멋진 작품이다.

미깡 만화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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