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매각’이 보여주는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의 몰락
캐시카우 배민 팔아 유동성 타개 나선 DH
우버·네이버·알리바바 실사…몸값 8조 거론
공격적 M&A의 독배…창업주 불명예 퇴진
![[사진=딜리버리히어로(DH)]](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6/Edaily/20260516093317122ehqk.png)
[이데일리 마켓in 허지은 기자] 7년 전 한국 배달 플랫폼 장악에 나선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가 휘청이고 있다. 공격적 M&A(인수합병)로 전세계 배달 시장을 삼키려던 플랫폼 공룡은 이제 유동성 위기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캐시카우 배달의민족을 매물로 내놓는 처지가 됐다. 한때 승승장구하던 글로벌 1위 플랫폼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소식은 그들의 화려했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딜리버리히어로는 매각 주관사로 JP모건을 선정하고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 매각에 나섰다. 현재 우버, 네이버, 알리바바 등이 인수 후보군(숏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본격적인 예비 실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희망가는 약 8조원 규모로 거론된다.
조(兆) 단위 대어 등장에 국내 대형 로펌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매각 측인 딜리버리히어로의 법률 자문은 2019년 배민 인수 당시 호흡을 맞췄던 법무법인 태평양이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김앤장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광장·세종 등 대형 로펌들이 주요 원매자들과 손잡고 법률 실사와 기업결합 심사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韓서 뺀 돈으로 적자 메우던 DH
2011년 설립 후 2017년 프랑크푸르트 증시에 상장한 딜리버리히어로는 그동안 공격적 M&A의 대명사로 불렸다. 2014년 우루과이 기반의 남미 배달 플랫폼 페디도스야(PedidosYa), 2016년 싱가포르 기반의 푸드판다(FoodPanda)를 잇달아 삼켰다. 스페인 기반의 글로보(Glovo)와는 국가별 사업권을 맞교환하며 몸집을 불렸고, 2019년엔 우아한형제들을 40억달러(약 4조8000억원)에 인수하며 한국 시장의 패권을 쥐었다.
한국은 딜리버리히어로에게 단순한 시장 그 이상이었다. 지난 2022년 기준 딜리버리히어로 전체 매출의 약 25%가 한국에서 발생했다. 특히 유럽과 미주 사업부가 적자의 늪에서 허덕일 때, 배민은 홀로 10%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딜리버리히어로 실적을 지탱하는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실제 딜리버리히어로는 배민을 통해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으로 매년 수천억원의 현금을 확보해왔다. 딜리버리히어로는 지난 2023년 우아한형제들 영업이익의 약 80%에 달하는 4127억원을 배당으로 챙겼다. 이후 과다 배당 문제가 불거지자 2024년엔 4900억원 상당의 자사주를 취득한 후 소각했고, 지난해에도 약 5372억원을 자사주 소각 방식으로 사실상 배당해갔다. 업계에서는 딜리버리히어로가 인수 금액의 절반 이상을 이미 배당 등으로 회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이 된 공격적 M&A…배민 내놓은 속내
하지만 무리한 사세 확장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딜리버리히어로가 수조원을 들여 인수한 플랫폼 기업들이 고금리 시대로 접어들자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미주의 페디도스야와 유럽의 글로보 등은 인프라 투자 비용에 비해 현저히 낮은 객단가와 극심한 라이더 확보 경쟁으로 인해 수년째 수천억원대 영업적자 늪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인구 밀도가 높고 배달 문화가 정착된 한국과 달리, 미주와 유럽은 넓은 땅과 높은 인건비 구조 탓에 외형 매출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적자가 심화되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한계를 드러냈다.
기초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터진 사법 리스크는 결정타였다. 지난해 6월 딜리버리히어로는 유럽연합(EU)으로부터 약 3억2900만유로(약 5000억원)이라는 기록적인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글로보와 국가별 사업권 M&A 과정에서 경쟁사 간 시장 분할, 민감 정보 공유, 라이더 채용 제한 등 등 불공정 담합 행위를 저질렀다는 혐의다.
과거 저금리 시절 발행했던 전환사채(CB) 등 대규모 채무의 만기까지 도래하자 딜리버리히어로는 최악의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주가 폭락이 장기화되며 시가총액은 팬데믹 전성기 대비 80% 이상 하락했다. 2대 주주인 행동주의 펀드 아스펙스(Aspex) 등의 압박에 공동 창업주인 니클라스 외스트베리 최고경영자(CEO)는 내년 3월 불명예 퇴진을 앞두고 있다.
재무 구조 개선 압박에 몰린 딜리버리히어로는 대대적인 자산 재조정을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아시아 시장의 알짜 자산이었던 푸드판다 대만 영업권을 싱가포르 그랩(Grab)에 6억 달러에 급매했고, 배민 매각 역시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당장 돌아오는 빚을 갚기 위해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1등 자산마저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 셈이다.
IB업계 관계자는 “DH의 위기는 막대한 유동성 힘으로 덩치만 키운 플랫폼 기업이 내실 경영과 규제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을 때 맞이하게 되는 전형적인 잔혹사”라며 “배민 인수를 검토 중인 주요 원매자들의 현금 창출력은 우수한 편이지만, 8조원이라는 높은 몸값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지은 (hurj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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