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X파일] 가스보일러 물렀거라, 히트펌프 나가신다

황규락 기자 2026. 5. 1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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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펌프, 외부서 열 빼앗아 실내 덥히는 신기술
정부, 난방 전기화 사업 추진 속도 내면서 주목
삼성·LG 이어 경동나비엔도 가정용 공략 나서
영국 가정집에 설치된 경동나비엔의 히트펌프/경동나비엔

가스보일러 중심이던 국내 난방 시장이 ‘히트펌프 격전지’로 재편되고 있다. 정부가 난방 전기화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뿐 아니라 중소·중견업체들도 가정용 히트펌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상업용 중심이던 시장이 가정용으로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모양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경동나비엔은 가정용 히트펌프 보일러를 다음 달 국내 출시할 예정이다. 기존에 영국 리버풀·글래스고 등에서 판매해온 제품을 국내로 들여오는 것이다. 히트펌프 보일러는 공기 중 열을 흡수해 작동하는 구조다. 경동나비엔 측은 “겨울이 긴 지역에서 실제 판매하며 성능을 실증한 제품”이라며 “히트펌프 기술의 본질은 결국 물을 정확한 온도로 높여 분배하는 것인 만큼 관련 기술을 축적한 보일러 기업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했다. 경동나비엔은 기존 가스보일러 시장에서 쌓아온 사후관리 네트워크와 보일러 수배관 제어 기술 등 노하우를 살려 히트펌프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외부 공기 분자 움직임에서 열 뽑아내

대부분의 난방 기계는 가스를 태우고 전기를 흘려보내 열을 생산한다. 하지만 히트펌프는 마치 물펌프처럼, 외부 공기 중 열을 실내로 퍼 나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겨울철 찬 공기에서 열을 뽑아낼 수 있는 이유는 공기 분자 움직임 자체가 곧 ‘열’이기 때문이다. 분자 움직임이 멈추는 영하 273도의 ‘절대 영도’ 이하가 아닌 이상, 그 안에서는 공기 분자가 움직이며 열을 발산하고 있다. 이 공기가 영하 30~40도의 차가운 냉매를 만나면 외부 공기는 ‘따뜻한 열원’이 된다. 액체 상태 냉매는 외부 공기를 만나 증발되고, 기체가 된 냉매를 압축기로 짜내 온도를 높여 물을 덥힌다. 열을 빼앗긴 냉매는 다시 액체로 바뀌고, 고온의 물은 배관을 타고 바닥을 데우거나 온수로 사용된다.

히트펌프의 가장 큰 장점은 ‘효율’이다. 이전에 흔히 가정에서 봐온 가스보일러는 가스를 태워 열을 만드는 구조다. 100을 넣으면 80~90 정도 열이 생긴다. 반면 히트펌프는 열을 전달하는 방식이라 다르다. 전기 100을 넣으면 400~500의 열을 끌어올 수 있다. 화석연료를 태우지 않아 이산화탄소를 직접 배출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가격이다. 제품과 설치비를 합치면 가구당 1000만~1200만원 안팎으로, 많게는 가스보일러의 10배가 넘는다. 히트펌프는 실외기와 축열탱크, 수배관 공사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바깥 날씨가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지면 빨아들일 외부 공기의 열 자체가 줄어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해외에선 히트펌프 급성장.. 올해 1000억달러 시장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히트펌프는 글로벌 난방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글로벌 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되고 효율 높은 난방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이미 신축 건물의 화석연료 보일러를 단계적으로 금지 중이며, 영국·독일·프랑스 등은 신축 주택 히트펌프 의무 설치를 도입했거나 검토 중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유·천연가스 가격이 출렁이면서 ‘난방은 가스 보일러’라는 공식도 흔들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포춘비즈니스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히트펌프 시장은 올해 1001억8000만달러에서 2034년 2119억3000만달러로 두 배 이상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가전 빅2는 이미 국내 시장에 진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EHS 히트펌프 보일러’를 출시했다. 영하 15도에서도 70도 고온수를 공급할 수 있다. 삼성물산과 협력해 고층 아파트용 솔루션도 연구 중이다. LG전자도 이달 7일 실외기와 본체를 하나로 합친 일체형 모델을 출시했다. 별도 배관 공사 없이 기존 온수 배관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귀뚜라미그룹도 가정용 진입을 준비 중이다. 현재 스마트팜·체육 시설 등 상업용 히트펌프를 판매하고 있으며, 가정용 라인업도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보조금 받으면 300만원대로 가격 떨어져

정부도 보조금을 통해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 144억원을 투입해 히트펌프 설치 비용의 최대 70%를 보조한다. 1200만원짜리 설비가 300만~400만원대로 떨어지는 것이다. 2035년까지 350만대 보급, 온실가스 518만톤 감축이 목표다. 1차 타깃은 도시가스가 안 들어오는 제주·전남·경남 등의 단독주택이다. 등유 보일러를 쓰던 가구가 히트펌프로 갈아타면 연간 약 50만원의 난방비를 아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선뜻 구매하기 어려운 가격으로 보이지만, 에어컨도 처음 나왔을 때 직장인 연봉보다 비쌌던 만큼 대량 보급이 본격화되면 가격은 빠르게 내려갈 것”이라며 “당분간 신축 주택과 지방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히트펌프 비중이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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