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 그런 ‘죽음’은 없습니다 [황정은·허태임 교환일기]

황정은 2026. 5. 1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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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저지르는 학살들을 온 세계가 정성껏 모르는 척을 하다가 모두의 발등으로 옮겨붙은 불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킹스턴 온타리오 호수의 얼음 위에 있는 사람들. ⓒAP Photo

2026년 2월23일 월요일

설을 잘 보내셨나요?

어제 춘양에 바람이 사납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는데 파주에도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이웃집 지붕에 솟은 환풍기들이 지금도 맹렬하게 돌고 있어요. 소설을 쓰려고 다락방으로 올라왔다가 바람 소리만 듣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밤 11시쯤 잠들었다가 새벽 2시에 일어나 아침 7시까지 원고를 쓰고 오전 10시에 다시 잠자리에 들어 부족한 잠을 보충한 뒤 오후 2시에 일어납니다. 저녁 7시엔 달리러 나가고 10시엔 잘 준비를 해요. 긴 소설 한 편을 마치기 위한 생활입니다. 뭘 해야 한다거나 뭘 하기 싫다거나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이며 충동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하고, 말하자면 그런 생각은 그저 스쳐가도록 두고, 그냥 일어나고 필요한 만큼 먹고 다섯 시간 동안 앉아 소설을 쓰고 이튿날 쓰기를 대기하며 나머지 시간을 보냅니다.

다시 말해 요즘 제 생활은 새벽 2시와 아침 7시 사이에 있습니다. 그 다섯 시간 동안의 집중과 평정을 위해 나머지 시간이 회전하고 있어요. 이럴 때 저는 무언가를 쓰고자 하는 작가로서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다기보다는 그 이야기가 스스로의 필요로 불러낸 통로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통로인 몸을 잘 보살펴야 끝까지 쓸 수 있기 때문에 운동과 수면을 가급적 거르지 않습니다. 평정을 유지하려고 웬만해서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다른 원고 약속도 하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이 흐름으로 돌아왔어요. 이렇게 두 달을 보냈고 앞으로 또 몇 달이 흘러갈 테지요. 소설 한 편을 다 쓰는 동안 다시 오지 않을 계절이 지나갑니다. 단편은 한 계절, 장편은 그보다 더 많은 계절. 제가 자주 연도와 날짜를 착각하는 이유는 이런 마감 단위로 시간을 느껴왔기 때문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문득 고개를 들면 다른 계절에 와 있어요. 여우에게 홀려 어디 굴에라도 다녀온 것처럼 지난 계절의 기억이 비어 있곤 합니다.

2026년 2월27일 금요일

잘 지내시나요?

오늘은 저녁을 늦게 먹는 바람에 달리러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동거인과 산책을 다녀왔어요. 혼자 달리던 길을 오랜만에 둘이서 걸었습니다. 호수와 연결된 작은 물줄기에서 큰기러기 무리를 보았어요. 오리보다 목이 길다며 동거인이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밤눈이 어두운 저는 사진으로 찍어 확대해 보고서야 자세히 볼 수 있었어요. 머리가 검다는 것 말고도 늠름하고 기세가 있어서 오리로 헷갈리지는 않지요. 오리들은 사람을 곁눈으로 보며 슬금슬금 피하지만 기러기는, 그중에 보초 역할을 하는 기러기는 사람을 향해 서서 경계합니다. 오늘 본 기러기들은 진흙을 뒤지면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습니다. 작년에 그 자리에서 본 개체들보다 규모가 작은 무리에 몸집이 작았어요. 아직 어린 기러기들이 거기 따로 모인 것 같았습니다. 물닭들도 근처에 있을 텐데 저는 요즘 밤에만 호수로 나가기 때문에 그 까만 새들을 좀처럼 보지 못합니다.

인류 마지막 축제에 참석한 마음

물닭을 저는 이 공원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해 질 녘에 달리다가 전에 보지 못한 검고 통통한 새들이 호숫가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지요. 어딘지 닭이랑 닮았네, 하고 생각했다가 물 근처에 사니 물닭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마저 달리고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정말 물닭이라서 저 새에 이름 붙인 사람에게 크게 공감했습니다.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는 게 어쩌면 거기서 거기, 이렇게 말입니다.

텃새이자 겨울 철새인 물닭이 먹이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며칠 동안엔 얼어붙은 호수를 촬영한 짧은 동영상들을 반복해 보았습니다. 캐나다, 러시아, 그리고 그보다 더 북쪽, 북극권에 가까워 눈으로 덮인 호수들, 영구동토층에 고인 거대한 호수를 보여주는 영상들입니다. 호수 밑바닥에서 수면을 향해 올라온 기포들이 얼음에 갇혀 있습니다. 이제 막 끊어진 목걸이에서 흘러내리는 수정 같은 기포들도 있고, 제멋대로 구운 팬케이크나 넓은 버섯갓처럼 납작하게 퍼진 기포들도 있습니다.

호수 심층부와 수면을 잇는 기포들 간격으로 아찔한 깊이를 짐작게 하는 그 빙판 위를 스케이트나 방한화를 신고 조심조심 나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발아래 어딘가에서 팽, 팽, 하고 얼음이 갈라집니다. 채찍을 휘두르는 것 같은 굉음이 호수를 담은 골짜기를 울리지만 적어도 빙면을 내려다보고 있는 시선에는 굉음의 원인인 균열이 포착되지 않습니다. 깊은 얼음에 갇힌 아름다운 기포들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카메라의 시선으로 저는 그것을 봅니다.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얼음을 들여다보는 내 얼굴을 향해 점진하는 기포들을 가만히 보는 일은 매번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일이자 깊은 공포를 깨닫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기포들이 영구동토층에서 올라온 메탄이기 때문입니다. 얼음을 깬 자리에 불꽃을 갖다 대면 불이 솟구칩니다. 지구를 뜨겁게 만들고 있는 이산화탄소보다도 몇 배나 더 빠른 속도로 열화를 가속시킬 수 있는 물질. 그것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닌 자연이지만 메탄이 대기로 풀려나와 초래할 모든 일은 틀림없는 인위(人爲)입니다. 인간의 과한 활동이 아니었다면 아직 동토에 붙들려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조만간 얼음이 마저 녹으면 저 기포들 하나하나가 지구 대기에 닿을 것입니다. 더 많이 닿을수록 더 빠르게 더 많이. 우리의 북극 항로가 이렇게 열린다는 걸 말하는 이가 요즘은 좀처럼 없습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해빙기가 길어지면서 얼음이 녹아 길이 열리고 배가 드나들고 더 많은 얼음이 녹고 길이 더 넓게 열리는 일은 분명 여러 도시를,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살리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그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마음도 제게는 있습니다. 그러나 슬픔도 있어요. 인류가 마지막으로 여는 축제에 참석한 것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볼 때가 잦습니다.

일상의 많은 일들은 이렇게 제 생각과 마음을 가닥가닥으로 갈라내곤 합니다. 한 사람 안에서마저 분열은 일상이고 생활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이런 질문을 쥐고 산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근처의 삶을 삼켜버리는 소용돌이들이 팽팽 돌아가는 태풍 속에서, 다 같이 가라앉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삶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지금 내 곁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매일 얼마나 애쓰며 사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합니다. 내 삶과 연결된 다른 삶의 약함을 의식하면서 어떻게든 인간애를 단념하지 않으면서 살고 싶어요. 좀 구차하고 종종 비겁하지만 그래도 단념하지 않는 한 점이 있는 삶. 그런 걸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수선하게 쓰기는 했지만 저는 다만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더 자주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취업을 해서, 월급을 받아서, 장사가 잘돼서, 좋은 사람을 만나서, 좋은 대화를 나눠서, 맛있는 것을 먹어서, 아이가 문득 커서, 날이 선선해서, 따뜻해서, 눈이나 비가 내려서, 봄이 와서, 꽃이 피고, 나무 그늘 아래를 걸을 수 있어서,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어서, 쉴 수 있고, 슬픔도 돌아볼 수 있어서, 자주자주 평안하다면 좋겠습니다.

2026년 3월3일 화요일

선생님, 파주에 비가 내립니다. 원고를 쓰려고 다락으로 올라왔다가 선생님에게 보낼 편지를 열었어요.

미국과 이스라엘은 지난 주말에 또 학살을 시작했습니다. 토요일(2월28일)에 이란을 향한 폭격으로 학교에 머물고 있던 아이들이 죽었어요. 오늘까지만 100명 넘는 어린이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저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pps_kr) 계정을 통해 학교 폭격 소식을 처음 접했습니다. 완파된 학교 앞마당에 모인 학부모들, 보호자들이 울부짖는 광경이었습니다. ‘최소 36명’을 알리면서 시작된 소식에 실시간으로 사망자 수가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한 손엔 잔해에서 찾아낸 아이의 오른팔을, 다른 손엔 아이가 사용하던 책을 쥔 남성이 두 팔을 흔들며 울고 있었습니다.

주말이 지나고 제법 긴 분량으로 이 ‘작전’을 다룬 기사의 주어는 온통 ‘미국’과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 기사 어디에도 학교에 모여 있다가 폭격으로 죽은 아이들, 그리고 한날한시에 고통스럽게 아이를 잃은 100세대 넘는 가족에 관한 말은 없었습니다. ‘삼대를 멸하다’라는 자막을 단 이미지 아래에서 이 ‘정확’한 ‘작전’으로 ‘멸’한 독재자 하메네이, 그의 직계인 딸과 손녀, 그리고 그의 사위, 오직 그 넷의 죽음만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요즘 제가 재미있게 듣곤 했던 유튜브 방송에서 아나운서 출신의 진행자가 ‘전쟁’ 소식을 전달한 뒤 당혹스럽다는 기색으로 ‘대한민국의 주식’을 말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2026년 3월9일 월요일

선생님, 어떻게 지내시나요?

오늘도 저는 새벽에 일어나 원고를 썼습니다.

우리 세기에 전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 군사시설이 있는 걸프만 인접국들을 향한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 쿠웨이트,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에 폭탄이 떨어졌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정유 시설을 폭격했고 이스라엘은 이 틈에 다시 레바논을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레바논 남부에서 베이루트까지 피란한 사람들이 머물고 있던 호텔이 이번 공습으로 무너졌고, 테헤란엔 검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어제 저는 테헤란 시내의 고양이들이 기름 비에 젖은 채 어느 집 현관에 겁을 먹고 모여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았습니다.

4월16일(현지 시각), 공습을 받은 이란 테헤란 미나브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 꽃이 놓여 있다. ⓒAFP PHOTO

미국의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둘러싸고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는 사진도 보았습니다. 한 손은 책상 앞에 앉은 트럼프를 향해 뻗고 나머지 손은 허공을 향해 들어 올린 채 기도를 올리고 있는 20명 남짓한 백인들을 보면서 저는 그들이 왜 자신들 신의 얼굴을 의심하지 않는지, 궁금했습니다. 만약 어떤 신이 168명 아이들을 폭사로 죽게 만들고 그 아이들이 속한 공동체를 슬픔과 고통과 분노와 증오로 낱낱이 찢어놓은 파괴를 정당하며 합당한 ‘전쟁’이라고 응답한다면, 더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치며 세상을 망칠 전쟁을 정의롭고 마땅하다고 축복한다면, 그게 대체 어떤 신이겠습니까. 저들의 세계관에서 그게 가능한 영적 존재를 저는 아무래도 단 하나 알고 있는데, 그를 향한 기도를 올리는 저들이 과연 그를 모를지.

‘죽음’이 무언가 생각할 수 없게 하는 세상

며칠 전엔 친구를 만나서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왜 공격하는가, 이스라엘이 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대답하다가 제 입에서 나온 ‘죽음’이라는 말에 혼자 격분해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전날에 너무 끔찍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가자에 쏟아진 폭격으로 다친 사람과 그를 부축해 임시 병동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었습니다. 신체가 훼손되고도 어떻게든 걷는 사람과 그를 어떻게든 부축해 모든 게 부족한 병원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곁사람의 고통.

이런 고통이 있는 세상에서 ‘죽음’이라는 말로는 무엇도 말할 수 없고 무엇도 상상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말을 더 이을 수 없었습니다.

2년 전 선생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가 언급한 거실, 폭음과 충격파에 커튼이 휘날리고 아이들이 울며 달아나던 그 거실은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가자는 잔해로 덮인 평지가 되었고 그 아이들의 생사를 저는 모릅니다.

어쩌면 그 아이들일 수도 있고 다른 아이들일 수도 있는 수많은 아이들이 여전히 가자에서 얼어서, 굶어서, 훼손되어서 죽어갑니다. 우리 뉴스는 그런 소식을 좀처럼 다루지 않습니다. 우리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이제 우리 언론과 시민들은 주가 폭락과 유가 상승을 걱정합니다. 저도 걱정합니다. 기름값이 오르면 생산과 유통비용이 늘어날 테고, 혹은 생산이나 유통 자체가 중단될 테고, 물가가 오르고, 자영업자들은 다시 위기에 몰릴 것이고, 모든 이의 생활비가 상승할 텐데 일자리는 줄거나 사라질 테고, 겨울엔 난방비가 폭등할 테고.

어쩌면 ‘죽음’이 더는 무언가를 생각하게 할 수 없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나 봅니다.

고통이 문득 끊기고 조용히 이어지는 소멸. 우리가 얼른 떠올리곤 하는 ‘죽음’이란 대개 그런 것이겠지요.

팔레스타인에 그런 ‘죽음’은 없습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저지르는 학살들을 온 세계가 정성껏 모르는 척을 하다가 모두의 발등으로 옮겨붙은 불입니다.

2026년 3월20일 금요일

오늘 도착한 선생님의 답신을 받고 소란한 마음이 좀 가라앉았습니다. “필요한 것만” 남기는 인간과는 달리 “쓸모없어 보이는 유전자라도 식물은 일단 품고” 산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웬일인지 어떤 사람들의 얼굴과 어떤 나무의 줄기를 동시에 생각했습니다. 그간에 제가 만난, 상처로 손상된 적 있는 사람과 식물들을 말입니다.

우리가 동시에, 그리고 조금 다르게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 제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선생님과 글을 주고받으며 생각을 나눌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오늘도 저는 새벽에 일어나 원고를 썼어요.

늦지 않게 다시 답신하겠습니다.

파주에서, 정은

황정은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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