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뚫은 유조선, 나고야로…석유 항만도시의 친환경 역설 [황덕현의 기후 한 편]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2026. 5. 1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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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촌 안 짓는 亞게임…크루즈 활용, 연료·대기오염은 '부메랑'
화석연료 공급망 탈피 위해 '탄소중립 항만' 계획도

[편집자주] 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다. 이제 모두의 '조별 과제'가 된 이 문제는 때로 막막하고 자주 어렵다. 우리는 각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문화 속 기후·환경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일본 나고야 이세만 연안의 나고야항·요카이치·구와나 모습. 원유를 싣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대형 유조선은 이 일대로 입항할 전망이다. 2026.5.7 ⓒ 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나고야=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5월 초 찾은 나고야는 벌써 축제 준비로 치장돼 있었다. 9~10월 열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현수막이 걸렸고, 불꽃 모양 공식 캐릭터 '호노혼'(Honohon)도 눈에 띄었다. 나고야는 도쿄와 히로시마에 이어 일본에서 세 번째로 아시안게임을 여는 도시가 된다.

일본 대회 조직위원회는 이번 대회를 위해 선수촌을 새로 짓지 않기로 했다. 비용 부담 등의 이유가 있지만 대회와 기후·환경의 '지속가능성'도 저변에 깔렸다.

일부 선수 숙소는 배로 대체할 계획이다. 나고야항 긴조부두에 크루즈선 '코스타 세레나'를 대고, 4000명이 생활할 전망이다. 대회가 태풍철 끝 무렵 열리는 만큼 쓰나미나 태풍 때 크루즈선에서 대피하는 계획도 준비 중이다.

실제 상황에서 여러 진통이나 잡음이 나올 수 있음에도, 새 선수촌을 짓지 않는 것은 하나의 실험이자 도전이다. 다만 그렇다고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곧바로 '친환경 대회'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크루즈선 활용은 새 건물 건설에 따른 배출과 폐기물을 줄일 여지는 있지만 크루즈선의 연료 사용과 항만 대기오염, 전력 소비 문제를 남기기 때문이다. 새로 짓지 않는 것이 친환경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의 배출을 옮겨놓은 것인지는 따져볼 문제다.

이 질문은 나고야항으로 향하는 한 유조선 때문에 더 복잡해졌다. 일본 정유사 이데미쓰코산 계열이 운항하는 초대형 유조선 '이데미쓰 마루'(Idemitsu Maru)호는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 200만배럴을 싣고 지난달 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해협 통항이 차질을 빚은 뒤 일본 관련 원유 유조선이 해협을 통과한 첫 사례로 전해졌다. 국제해사기구(IMO) 등에 따르면 이 배는 5월 23~25일 나고야항을 향하고 있다.

일본 나고야 대표적 명소인 주부전력 미라이타워 앞에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홍보 중인 공식 캐릭터 '호노혼'(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 뉴스1

일본 입장에서는 에너지 안보의 한 장면이고, 나고야 입장에서는 '축제 도시'와 '석유 항만'이라는 두 얼굴이 동시에 드러나는 장면이다.

사실 나고야는 그동안 석유·화학 도시로 기능해 왔다. 나고야항은 자동차 수출항으로 잘 알려졌지만, 동시에 LNG와 원유, 석탄, 철광석 같은 자원을 들여오는 산업 항만이다. 나고야항 관리조합은 2024년 나고야항의 총 화물 처리량이 1억 5671만톤으로 일본 항만 중 최대였다고 밝혔다. 2022년 통계에서도 주요 수입 품목으로 LNG, 원유, 철광석, 석탄을 꼽았다.

나고야항의 현재는 그래서 양면적이다. 한쪽에서는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기존 시설과 크루즈선을 활용하는 '덜 짓는 대회'를 준비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중동산 원유를 실은 초대형 유조선이 항만과 정유시설을 향한다.

탄소중립을 말하는 도시가 여전히 화석연료 공급망 위에 서 있는 셈이다.

나고야항도 이 모순을 모르지는 않는다. 나고야항 관리조합은 2023년 '탄소중립 항만' 형성 계획을 마련했고, 2050년 탄소중립 항만 실현을 목표로 제시했다. 2024년에는 항만 탈탄소화 추진 계획도 세웠다. 2024년에는 항만 탈탄소화 추진 계획도 마련했다. 작업선에 육상전력을 공급하고, 컨테이너 터미널 하역 장비용 수소 공급체계를 검토하며, 친환경 선박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이처럼 나고야는 탄소중립 달성의 도전과 한계의 모순을 압축한 도시처럼 보였다.

기후위기 시대의 도시가 마주한 질문도 여기에 있다. 축제를 친환경으로 포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 건물을 덜 짓는 선택이 항만의 연료 사용과 물류, 전력 소비까지 바꾸지 못한다면 전환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전쟁 뒤 첫 일본 관련 원유 유조선이 향하는 항만도시에서 열릴 아시안게임은 그래서 더 복합적인 질문을 남긴다. 친환경 대회라는 평가를 받을지, 화석연료 기반 항만도시의 지속가능성 홍보에 그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황덕현 경제부 기후환경전문기자 2025.10.13 ⓒ 뉴스1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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