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이자 25만원, 주식은 이틀만에 20만원" 예금 깨고 빚투 뛰어든 60대 주린이들 [은퇴자 X의 설계]


[파이낸셜뉴스] "1년 전에 넣어둔 1000만원 정기예금 만기됐습니다. 이자는 세금 떼고 25만원 정도네요. 생각보다 적은 이자에 짜증이 확 났습니다. 이 돈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주식을 샀는데 이틀 만에 수익률 2%, 20만원을 벌었네요. 아직 주린이인데 앞으로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거 같습니다. 선배님들의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최근 한 유명 투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작성자의 아이디 옆에는 '62세'라는 숫자가 선명했다. 평생 예금과 적금 중심으로 자산을 굴리던 은퇴 세대가 처음으로 주식시장에 들어온 순간이다.
반응은 뜨거웠다. '지금 시작하셔도 안 늦었습니다', '형님, 지금은 시장이 다 먹여주는 장입니다',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공부해보세요. 수익률의 차원이 다릅니다' 등. 추천 일색이다. 레버리지 ETF 추천까지 등장했다.
코스피 지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6000선과 7000선을 잇따라 돌파하면서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지수 7000선을 돌파한 지 영업일수로 7일만에 8000선도 넘어서며 '1만피'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한동안 은행 창구에서 우대금리를 따지던 사람들이 이제는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을 켜고 엔비디아 실적 발표와 레버리지 ETF 괴리율을 토론한다. 식당은 물론 길거리에서도 주가 상승을 확인하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 노원구의 박경철 씨(61·가명)는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예금파였다. 30년간 제조업체에서 일하며 받은 퇴직금과 개인연금으로 매달 250만~300만원 현금흐름을 만드는 것이 그의 은퇴 설계 전부였다.
박 씨는 "친구 모임이건 친척 모임이건 어디 가면 전부 주식 얘기뿐이다. 누구는 삼성전자로 50%, SK하이닉스로 60% 수익을 냈다고 하더라"면서 "내가 10년 이상 부어서 받는 이자가 저 사람 하루 변동 폭도 안 된다는 사실에 잠이 안 왔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반도체 주식을 매입한 박씨는 10% 이상 수익을 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겁이 난다. 이게 맞나 의구심도 든다. 목표를 작게 갖고 현금화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준비 없이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올해 73세의 전혜숙씨(가명)는 최근 사위 최정호씨(53·가명)에게 주식으로 수익을 냈다고 자랑했다. 3000원대 A종목을 사서 30만원을 번 것이다. 사위가 실적이 탄탄한 B종목(주당 30만원대)을 권하자 "너무 비싸다"며 거절했다.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주가순자산비율(PBR) 같은 기업가치 지표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주가가 낮으면 싼 주식, 높으면 비싼 주식이었다.
최씨는 "주변 분들과 대화하면서 투자를 시작하신 것 같다"면서 "여러 조언을 드려도 친구들 얘기를 더 따르신다"고 말했다. 분석보다 분위기가 먼저인 투자다. 수익이 날 때는 문제가 없다. 시장이 흔들릴 때 이 차이가 드러난다.
문제는 그 열기가 '여유 자금' 내에서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국내 10대 증권사의 60대 이상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올해 4월 기준 총 10조4376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 약 4조7000억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1년 만에 2.2배가 폭증한 수치다.
특히 70대 이상의 증가세는 경이적이다. 같은 기간 잔고가 140% 넘게 늘어나며 전 연령대 중 가장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신용거래융자는 말 그대로 '빚내서 하는 투자'다.
증권사에서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 더 많은 주식을 사는 방식이다. 주가가 오를 때는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레버리지' 효과를 내지만, 반대로 시장이 하락할 경우 손실도 확대된다. 무엇보다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증권사가 강제로 주식을 팔아치우는 '반대매매'가 실행된다. 손실이 커질 경우 원금 훼손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최근에는 은퇴 세대의 신용거래 규모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시장이 흔들릴 때다. 시장이 좋다면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시장이 꺾인다면 손실폭은 감당할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금융감독원이 코스피지수가 급락한 3월1~9일 국내 두개 대형 증권사 개인투자자 계좌 460만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신용융자를 이용한 투자자의 평균 손실률은 -19.0%에 달했다. 이는 같은기간 자기 자본으로만 투자한 사람 손실률 8.2%의 두배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이 기간동안 코스피 지수는 15.9% 하락한 바 있다.

주목할 점은 연령대별 통계다. 60대 이상 손실률은 19.8%로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은 최근 급등장에서 뒤늦게 시장에 진입한 고령층 투자자들이 변동성 확대 과정에서 더 크게 흔들렸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에 대해 한 은퇴전문가는 '투자 시간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젊은 세대는 손실이 나도 근로 소득으로 메울 시간이 있지만 은퇴자는 손실이 나면 바로 생에 영향을 받게 된다"면서 "조급함이 판단력을 흐리고 결국 무리한 신용 투자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3월에 그 구조가 그대로 드러났다. 버텼으면 됐는데, 빚이 버티지 못하게 했다.
지난 3월 3일 기준 국내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32조804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음 날인 3월 4일, 코스피는 하루 만에 12.06%(698포인트)나 폭락했다. 1980년 코스피 출범 이래 역대 최대 낙폭이었다. 3일과 4일 이틀 합산 낙폭은 약 20%에 달했다.
통상 반대매매는 급락 이후 2거래일 뒤에 실행된다. 3월 5일과 6일, 반대매매 금액은 직전 대비 245% 폭증했다. 신용거래를 중단한 증권사도 나왔다. 한국투자증권은 3월 4일부터, NH투자증권은 5일부터 신용거래융자 신규 매수를 일시 중단했다.
손실을 확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버티지 못하고 강제로 털려 나간 순간이다.
그 이후가 문제다. 코스피는 저점 대비 약 1190포인트(23.6%) 급반등하며 이후 7000선을 돌파하고 지난 12일 8000선을 목전에 두기도 했다.
예금만으로 노후를 버티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금리 3%대, 물가 2%대 환경에서 예금은 자산 가치를 지키기에도 빠듯하다. 다만 그 투자가 빌린 돈으로, 이미 많이 오른 시장에서, 처음 써보는 레버리지 상품으로 이루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예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 "그렇다고 은퇴자들의 빚투, 신용투자도 문제다. 크지 않은 수익을 위험하게 노리다 잘못되면 노후 전체가 위험해 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김진웅 연구위원은 "투자의 기본은 여유자금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은퇴 후 3~5년치 생활비는 안전자산으로 관리하고 남은 자금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주식시장이 급등하고 있어 조급함이 들 수 있겠지만 충분한 투자기간을 설정하면 생각보다 기회는 자주 온다"면서 "급하게 투자하기 보다 일정 수준 조정을 받았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하는 것이 더 좋다"고 덧붙였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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