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공동응원 '황당 요청'에 '3억 원' 혈세까지...축구는 뒷전 된 수원FC의 새 역사, "정치와 분리되길" AFC 우려 그대로

고성환 2026. 5. 16. 07:5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OSEN=고성환 기자] "대한민국과 북한의 특수 관계는 이해하지만 모든 우선순위는 축구에 있으며, 대회가 외부 정치적 상황으로부터 분리되어 순수한 스포츠 행사로 진행될 수 있도록 당부한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우려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수원FC위민의 창단 첫 4강 진출이라는 새 역사도 정치적 이슈에 가려져 뒷전이 된 모양새다.

수원FC위민과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은 오는 20일 오후 7시 수원종합운동장에서 AFC 여자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WCL) 준결승 단판 승부를 치른다. 승리한 팀은 멜버른 시티와 도쿄 베르디 벨레자 경기의 승자와 결승에서 맞붙는다.

하지만 경기를 앞두고 가장 주목받고 있는 건 수원FC위민이 결승 진출에 성공하며 또 하나의 역사를 쓸 수 있을지가 아니다. 북한 선수단이 한국 땅을 밟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되면서 정치적 이슈로 더 화제를 모으는 중이다. 

북한 여자 축구팀의 국내 방문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이다. 클럽팀으로만 따지면 역사상 처음 있는 일. 2018년 10월 강원도에서 열린 아리스포츠컵 국제축구대회에 4.25체육단과 여명체육단 유소년팀이 참가한 걸 제외하고는 모두 북한이나 제3 지역에서 치러졌다.

그런 만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실 개최지 발표 당시에만 해도 내고향이 경기를 포기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였다. 지난 2023년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뒤로 냉랭한 남북관계가 지속돼 오고 있기 때문.

북한은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도 참가하지 않았고, 남자 축구대표팀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예선도 포기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AFC의 징계와 벌금을 우려해 출전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내고향의 이번 방남에 승패를 가르는 단순한 축구 경기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북한팀 내고향과 수원FC위민을 둘 다 응원하겠다고 나선 단체만 200여 개에 달한다. 시민평화포럼, 자주평화통일연대, 한겨레통일문화재단 등은 약 3000명 규모의 '수원FC위민-내고향여자축구단 공동응원단'을 결성했다. 이들은 수원종합운동장 E석에 앉아 양 팀 응원 구호를 외치고, 파도타기 응원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심지어 정부까지 끼어들면서 상황이 더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부는 이들 단체에 무려 3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지원금은 민간 단체들의 응원 물품 등에 사용된다. 특정 팀 응원이 아니라 경기 자체를 응원하는 취지"라며 남북 소통의 계기로 보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지만, 혈세 지원 논란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누가 봐도 축구 경기 그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 상황. 심지어 공동응원단은 수원FC 서포터즈 '포트리스'에 내고향을 함께 응원하자는 황당한 제안을 보내기도 했다. 이들은 먼저 일방적으로 공동응원 결정 보도자료를 배포한 뒤 포트리스 측에 연락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대답은 거절이었다. 포트리스 측은 "수원FC위민 선수들이 타지에서 흘린 땀방울과 스포츠 본연의 가치보다 '남북 관계'라는 정치적 프레임이 우선시된 보도 내용에 깊은 유감"이라며 "우리 선수들이 특정 목적을 위한 들러리가 되는 걸 단호히 거부하고, 오직 선수들이 경기의 주인공으로 존중받아야 함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수원FC 서포터즈는 내고향과 경기에서도 평소처럼 수원FC위민만을 응원할 예정이다. 수원종합운동장 가변석이 AFC 기준 미달로 운영되지 못하면서 응원 장소는 평소 원정팬들이 앉던 남쪽 골대 뒤가 되겠지만, 이들은 공동응원에 신경 쓰지 않고 수원FC위민 선수들에게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경기 외적인 잡음이 계속되면 역사적인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수원FC 측으로선 다소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특히 수원FC 구단은 역대급 취재 인파와 북한 클럽 맞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모든 직원이 경기장을 떠나지 못하고, 경기 준비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야근은 일상이 됐다.

수원FC 관계자에 따르면 20일 경기에는 취재와 방송, 촬영, 사진 기자를 합쳐 총 120명에 달하는 취재진이 몰려들 전망이다. 스포츠 기자뿐만 아니라 통일부 출입 기자들도 취재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종합운동장엔 이만한 인파를 위한 취재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수원FC 측은 취재석을 평소의 3배 이상으로 확대하고, 별도의 기자회견장을 준비 중이다. 여기에 내고향 측에서 수원FC위민과 분리된 숙소를 쓰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숙소 변경까지 신경 써야 할 처지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요청이 온다면 수원FC 측이 숙소를 변경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내고향이 수원FC위민을 꺾고 결승에 오른다면 북한 선수단은 23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치러지는 결승전까지 소화하고 돌아가게 된다. 4강에서 탈락한다면 조기 출국할 예정이다. 수원FC 관계자는 관련 논란에 당황스럽다면서도 "구단 구성원 모두가 결승 진출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각오를 전했다.

/finekosh@osen.co.kr

[사진] AFC, 수원FC위민 제공.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