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란은 왜 유조선은 피하고 벌크선을 노리는가?…김태준의 美·이란戰 중계 <34>

정충신 선임기자 2026. 5. 16.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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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국방대 명예교수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 공격은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내용의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프롤로그 : 이란, 이상할 정도로 공격 피하는 유조선

지난 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진행하며,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행 방해와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할 수 없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겉으로는 미중 갈등이 완화되고 중동 긴장 역시 일정 부분 관리되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해상에서는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반복적인 화재와 폭발, 외부 공격 의혹 사건이 이어지며 보험료와 운임이 상승하고 일부 선사들은 항로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외항 묘박지(OPL) 주변의 긴장도 높아지는 가운데, 미국과 이란의 종전협상은 핵심 쟁점에서 서로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며 군사적 대결 가능성까지 암시하고 있다. 결국 베이징의 외교 무대와 달리 중동 해역에서는 갈등이 심화되는 이중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사건들에는 하나의 매우 흥미로운 공통점이 존재한다. 생각보다 유조선은 공격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긴장이 계속 고조되고 있음에도 불구, 피격과 화재 의혹 사건들은 벌크선과 일반 상선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외부 공격 의혹 사건들 역시 상당수가 벌크선이나 일반 화물선 중심으로 나타났으며, 초대형 유조선(VLCC)에 대한 직접 공격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만약 누군가가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 전체를 무차별적으로 마비시키려 했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유조선을 공격하는 것이다. 초대형 유조선 한 척만 심각한 피해를 입어도 국제 유가는 급등할 수 있으며, 세계 에너지 시장은 즉각 충격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긴장은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대규모 환경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공격은 조심스럽게 피해 가고 있다.

최근 하르그(Kharg)섬 인근 유류 유출 사건 역시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하르그섬은 이란 최대 원유 수출 거점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란은 이번 사건을 외부 공격이나 군사 충돌과 연결하지 않고, “원유 적재 과정에서 발생한 기술적 문제 또는 선박 오염수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유출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통제 불가능한 군사적 위기로 확대되는 것은 강하게 차단하려 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재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는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선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무차별 파괴가 아니라, 선택적으로 관리되는 불안정성에 가깝다. 실제로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선박과 시장, 보험과 해운 시스템 전체가 “언제든 위험해질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이란의 ‘현존 위협(TIB·Threat in Being)’ 전략에 가깝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최근 호르무즈 해협에서 반복되는 벌크선 중심 사건들은 단순 우발적 충돌이 아니라, 훨씬 더 계산된 압박 전략의 일부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지금 호르무즈에서 퍼지고 있는 것은 기름이 아니라, 불확실성이다.

이란의 유조선에 대한 공격은 위험하다는 것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 유조선은 왜 위험한 표적인가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흐름의 핵심 통로다.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이 좁은 해협을 통과하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와 이라크의 원유와 LNG 상당수가 이 항로를 통해 이동한다. 중국과 인도, 한국과 일본 역시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정은 곧바로 세계 경제 전체의 불안으로 연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의문을 품는다. 만약 이란이 실제로 세계 경제를 압박하려 한다면, 왜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전략 효과를 낼 수 있는 유조선 공격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으로 나타나는가?

겉으로 보면 유조선 공격은 매우 효과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한 척만 심각한 피해를 입어도 국제 유가는 즉각 급등할 수 있으며, 세계 에너지 시장은 순식간에 충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과거에도 호르무즈 긴장 고조는 국제 유가 상승과 글로벌 시장 불안으로 즉시 연결됐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오히려 유조선은 지나치게 위험한 표적이 된다. 가장 큰 문제는 환경 재앙 가능성이다. 초대형 유조선은 수백만 배럴 규모의 원유를 운반한다. 만약 이 선박이 피격되거나 대규모 화재로 이어질 경우, 단순한 해상 사고 수준을 넘어 페르시아만 전체를 위협하는 환경 재난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페르시아만은 폐쇄성이 강한 해역이다. 수심이 상대적으로 얕고 해수 교환 속도 역시 제한적이기 때문에, 한번 대규모 유류 유출이 발생하면 오염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 피해가 이란 자신에게도 직접 돌아온다는 점이다. 이란 남부 연안과 주요 항만, 원유 수출 시설 상당수는 모두 페르시아만과 연결돼 있다. 다시 말해 대규모 유류 오염은 단순히 국제사회만의 피해가 아니라, 이란 자신의 경제 기반과 연안 환경까지 동시에 위협할 수 있다.

최근 하르그섬 인근 유류 유출 사고 이후 이란이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인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이란은 사고 원인을 “원유 적재 과정 또는 선박 오염수 문제”로 설명하며, 외부 공격이나 군사 충돌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오히려 이란 스스로도 통제 불가능한 환경 재앙과 국제 여론 폭발을 피하려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제정치적 비용 역시 매우 크다. 만약 대형 유조선이 실제로 침몰하거나 심각한 유류 유출이 발생할 경우,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과 인도조차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은 현재 이란 원유의 핵심 구매국 가운데 하나이며, 호르무즈 해협 안정 자체를 국가 경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유조선 공격은 단순한 미국 압박을 넘어 중국과 인도 같은 우호적 또는 중립적 국가들까지 동시에 자극할 위험이 존재한다.

결국 유조선은 전략적 효과는 강력하지만, 동시에 통제 불가능한 비용 역시 지나치게 큰 표적이다. 환경 재앙과 국제 여론 악화, 그리고 전면전 확전 가능성까지 고려할 경우, 오히려 이란 입장에서도 부담이 매우 커질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최근 호르무즈 해협의 위험은 초대형 유조선보다 벌크선과 일반 상선 주변에서 더욱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란이 벌크선만 집중공격하는 이유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 왜 공격받는 것은 벌크선인가

최근 호르무즈 해협과 UAE 인근 외항 묘박지(OPL) 주변에서 발생한 화재와 폭발, 외부 공격 의혹 사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나타난다. 상당수 사건이 초대형 유조선이 아니라 벌크선 또는 일반 화물선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패턴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최근 피해를 입은 선박들의 상당수는 군사 호위를 받지 않는 민간 상선이었으며, 대부분 비교적 느린 속도로 항해하거나 외항 묘박지에 장시간 대기 중이었다. 일부는 AIS(자동식별장치) 운용 문제가 보고됐고, 일부는 UAE 인근 OPL 해역에서 장시간 정박 상태에 있었다. 다시 말해 완전한 군사 목표가 아니라, ‘심리적 압박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민간 상업 선박들이 선택되고 있다는 특징이 나타난다.

벌크선이라는 선종 자체의 특성 역시 중요하다. 벌크선은 원유가 아니라 철광석과 석탄, 곡물과 비료, 광물 원자재 등을 대량으로 운반한다. 벌크선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초대형 유조선보다 정치적 민감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벌크선이 피해를 입더라도 즉각적인 대규모 환경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며, 국제사회가 즉시 군사 개입에 나설 가능성 역시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전략적 효과는 충분하다. 실제 선박이 완전히 침몰하지 않더라도, 단 한 차례의 폭발과 화재, 외부 공격 의혹만으로도 보험 시장은 즉각 반응한다. 전쟁 위험 보험료가 상승하고, 선사들은 항로를 재검토하기 시작한다. 일부 선박은 AIS를 끄거나 우회 항로를 선택하며, 외항 묘박지 체류 시간 역시 증가하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몇 척의 선박이 침몰했는가가 아니라, 해협 전체가 ‘언제든 위험해질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사건들을 비교해보면, 하나의 매우 흥미로운 특징이 드러난다. 최근 사건들을 비교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드러난다. 실제 위험은 초대형 유조선보다 벌크선과 일반 상선 주변에서 반복되고 있으며, 상당수 사건은 환경 피해를 제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발생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타나는 긴장은 무차별 파괴보다 ‘통제 가능한 불안정성’에 훨씬 가까운 특징을 보이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벌크선은 매우 효율적인 표적이 된다. 유조선 공격은 지나치게 위험하다. 반면 벌크선은 상대적으로 제한된 환경 피해만으로도 충분한 심리적 충격과 보험 시장 불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즉 벌크선 공격은 환경재앙 없이도 해상 흐름 전체를 흔들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외항 묘박지에 장시간 정박 중인 벌크선은 속도가 느리고 방어 능력도 제한적이며, 민간 상선이라는 특성상 군사적 대응 명분 역시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것은 단순한 군사 공격이라기보다, 오히려 해상 심리전과 보험 전쟁에 가깝다. 최근 국제 해운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실제 침몰 선박 숫자가 아니라 ‘불확실성 비용’이다. 보험료와 우회 비용, 운항 지연과 위험 할증이 모두 증가하고 있으며, 일부 선사들은 이미 호르무즈 해협 통과 자체를 고위험 운항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지금 호르무즈에서 확대되고 있는 것은 직접적인 파괴보다 ‘위험 인식’ 그 자체다.

특히 이란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완전한 봉쇄’가 아니다.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 전체를 장기간 완전히 봉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군사 개입 가능성을 고려할 때 오히려 역풍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 대신 이란이 추구하는 것은 훨씬 현실적이다. 해협 전체를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해협 전체를 지속적으로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선박은 계속 지나가지만 누구도 안전을 확신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최근 벌크선 중심 사건들은 단순 우발적 충돌이 아니라, 훨씬 더 계산된 압박 전략의 일부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환경 재앙은 피하면서도 긴장은 유지하고, 전면전은 피하면서도 시장과 해운 시스템 전체를 지속적으로 흔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하르그섬 기름 유출 사건이 왜 조용하게 지나갔는지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I. 하르그섬의 기름은 왜 조용히 흘렀는가

최근 하르그(Kharg)섬 인근에서 발생한 유류 유출 사건은 단순한 환경 사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그것은 비교적 제한된 규모의 유출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한 유출량이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이란이 이 사건을 어떻게 설명하고 대응했는가에 있다.

하르그섬은 이란 원유 수출의 핵심 거점 가운데 하나다. 이란산 원유 상당수가 이곳을 통해 선적되며,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을 연결하는 전략적 흐름 역시 이 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다시 말해 하르그섬 주변에서 발생하는 어떤 사고든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국제 에너지 시장 전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유류 유출 이후 이란의 반응은 매우 흥미롭다. 이란은 이번 사건에 대해 “원유 적재 과정에서 발생한 기술적 문제” 또는 “선박 오염수 문제”라고 설명하며, 외부 공격 가능성이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다시 말해 유출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군사적 긴장이나 공격 때문이라는 인식이 확대되는 것은 강하게 차단하려 한 것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하르그섬 인근에서 대형 유조선 폭발이나 대규모 유류 유출이 발생할 경우, 그 결과는 단순한 해상 사고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페르시아만 전체는 심각한 환경 재앙 위험에 직면할 수 있으며, 국제 여론 역시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 특히 중국과 인도 같은 이란 원유 수입국들까지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란 역시 페르시아만 오염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페르시아만은 폐쇄성이 강한 해역이다. 수심이 얕고 해수 교환 속도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대규모 원유 유출이 발생할 경우 오염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 피해는 이란 남부 연안과 주요 항만, 원유 수출 시설까지 직접 연결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통제 불가능한 유류 재앙은 단순히 상대를 압박하는 수단이 아니라, 이란 자신에게도 직접적인 경제·환경 피해로 되돌아올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최근 하르그섬 사건은 매우 상징적이다. 유출은 발생했지만, 누구도 전쟁을 인정하지 않았다.

긴장은 존재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일정 수준의 선을 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란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이란이 원하는 것은 완전한 해협 폐쇄나 대규모 환경 재앙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란이 추구하는 것은 훨씬 더 제한적이고 계산된 형태의 압박이다. 바다 전체를 지속적으로 불안하게 만들되, 동시에 상황이 완전히 통제를 벗어나지는 않도록 관리하려는 것이다.

즉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통제 가능한 불안정성’이 유지되고 있다. 선박은 계속 항해한다. 원유 역시 계속 이동한다. 그러나 동시에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다. 보험료는 상승하고, 선사들은 항로를 재검토하며, 해운 시장 전체는 점점 더 긴장된 상태로 이동하고 있다.

결국 하르그섬 유류 유출 사건은 단순한 환경 사고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오늘날의 해상 압박 전략이 어디까지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에 가깝다. 현대의 해상 압박은 반드시 대규모 폭발이나 침몰로 나타나지 않는다. 제한된 위험과 불확실성만으로도 시장과 흐름, 보험과 심리를 동시에 흔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전략 효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닫지 않고도 질서를 흔드는 현존위협(TIB) 전략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V. TIB …바다를 닫지 않고 흔드는 전략

전통적인 해양전략에서 강한 해군은 반드시 싸워야만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과거의 함대는 항구에 정박해 있는 상태만으로도 상대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었다. 이것이 고전적인 ‘현존함대(Fleet in Being)’ 개념이다. 실제 출격 여부와 상관없이, 존재 자체가 상대에게 지속적인 부담과 불확실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이 개념이 훨씬 더 확장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이란이 보여주는 전략의 핵심은 실제로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언제든 봉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함으로써 국제시장과 해운 시스템 전체에 장기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TIB(Threat in Being), 즉 ‘존재하는 위협’의 핵심 논리다.

중요한 것은 실제 행동보다 가능성 그 자체다. 실제로 최근 호르무즈 해협은 완전히 닫힌 적이 없다. 원유와 LNG 운반선은 여전히 통과하고 있으며, 벌크선과 일반 화물선 역시 제한적이지만 계속 항해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 모두 전면전을 피하려 하고 있으며, 종전 협상 역시 완전히 중단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협이 안정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황은 반대다. 보험료는 계속 상승하고 있으며, 일부 선박은 AIS(자동식별장치)를 끄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선사들은 항로를 재검토하고 있고, 외항 묘박지(OPL) 대기 시간 역시 증가하고 있다. 즉 해협은 열려 있지만 누구도 그것이 안전하다고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TIB의 전략 효과가 나타난다. 현대의 해상 압박은 반드시 선박을 침몰시킬 필요가 없다. 실제 봉쇄 없이도 충분한 불안과 비용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TIB의 전략적 효과는 발생한다. 최근 벌크선 중심의 화재와 폭발 의혹 사건들, 하르그섬 유류 유출 논란, 반복되는 드론 및 기뢰 위협 경고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실제 공격 규모가 아니라, “언제든 위험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란의 경잠수함과 기뢰전 능력은 이러한 TIB 구조와 매우 잘 결합된다. 이란 해군과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오랫동안 비대칭 해상전 능력을 강화해왔다. 대형 함대와 정면 충돌하기보다, 경잠수함과 기뢰, 드론과 고속정을 활용해 좁은 해협 전체를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은 폭이 좁고 항로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제한된 기뢰 위협이나 잠수함 활동만으로도 충분한 심리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매우 ‘관리 가능한 압박’이라는 점이다. 만약 이란이 실제로 해협 전체를 완전히 봉쇄하려 한다면, 미국과 국제사회의 군사 개입 가능성은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방식은 다르다. 제한된 긴장과 반복되는 불확실성, 선택적 공격과 회색지대 위협은 상황을 지속적으로 흔들면서도 동시에 완전한 전면전 문턱 아래에 머무를 수 있다.

즉 지금 이란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군사 승리가 아니다. 오히려 해협 전체를 ‘언제든 위험해질 수 있는 공간’으로 유지함으로써, 세계 경제와 보험 시장, 해운 시스템 전체에 지속적인 긴장을 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오늘날의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중동 분쟁 공간을 넘어, 현대의 흐름 전쟁(flow warfare)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변하고 있다.

닫히지는 않았지만 불안한 바다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에필로그 : “닫히지 않았지만 이미 불안한 바다”

많은 사람들은 전쟁을 “무언가가 완전히 파괴되는 순간”으로 이해한다. 도시가 폭격되고, 군함이 침몰하며, 해협이 실제로 봉쇄되어야만 위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타나는 상황은 그 통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선박이 침몰했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바다 전체를 불안한 공간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에 있다.

실제로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완전히 닫혀 있지 않다. 원유와 LNG는 여전히 이동하고 있으며, 벌크선과 일반 화물선 역시 제한적이지만 계속 항해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 모두 전면전을 원하지 않고 있으며, 종전 협상 역시 완전히 중단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협이 안정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험료는 상승하고 있으며, 일부 선사들은 항로 자체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AIS 차단과 외항 묘박지 대기 증가, 반복되는 화재와 폭발 의혹 사건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해상 교통로가 아니라, 흐름과 심리, 보험과 시간 전체를 압박하는 전략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최근 나타나는 선택적 공격 패턴은 현대의 해상 압박 전략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매우 잘 보여준다. 유조선은 상대적으로 조심스럽게 피하면서도, 벌크선과 일반 상선을 중심으로 불확실성을 확대하는 방식은 단순한 우발적 충돌이 아니다. 그것은 환경 재앙과 전면전 문턱은 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국제 시장 전체를 지속적으로 긴장 상태에 묶어두려는 계산된 압박 구조에 가깝다.

그리고 바로 그 중심에는 TIB(Threat in Being), 즉 ‘존재하는 위협’의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언제든 위험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선박은 계속 항해하지만 누구도 완전히 안전하다고 확신하지 못하고, 원유는 계속 이동하지만 시장은 지속적으로 불안해한다. 바로 이 불확실성 자체가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전략 효과가 되고 있다.

과거의 전쟁은 상대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승패를 결정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흐름 전쟁(flow warfare)은 다르다. 반드시 침몰시키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흐름을 얼마나 오랫동안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 있다. 보험과 운임, 심리와 시간, 그리고 시장 전체의 불확실성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전략 효과를 만들 수 있다.

결국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단순한 중동 위기가 아니다. 그것은 현대의 해상 전략과 국제 질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축소판에 가깝다. 해협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누구도 그것이 완전히 안전하다고 믿지 않는다.

지금 호르무즈에서 퍼지고 있는 것은 기름이 아니라 불확실성이다.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국방대명예교수

정충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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