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충’ ‘꼰대’ ‘연금충’…생애주기별 나이 차별을 묻다 [.txt]

엄지원 기자 2026. 5. 16.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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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모든 시민이 ‘나이 멸칭’을 가진 사회
생산성·죽음·자기 관리…차별의 심연
정치적 갈등과 결합한 나이 내전
멸칭이 부른 자원 배분에서의 차별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벼슬인 동시에 차별의 덫이다. ‘급식충’부터 ‘연금충’까지 모든 연령대에 나이 멸칭이 있는 사회는 흔치 않다. 연령차별주의가 왜 사회를 좀먹는지 돌아봤다. 그래픽 김은정 기자 ejkim@hani.co.kr

“새파랗게 어린 ×의 ××가 무슨 시장 출마냐!”

지난달 27일,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에서 선거운동을 벌이던 30대 출마자에게 이런 고함과 함께 음료수가 담긴 컵이 날아들었다. 황당한 혐오 폭력의 결말은 더욱 황당하다. 경찰이 후보자에게 음료수 컵을 집어 던진 남성을 붙잡고 보니, 그도 30대였다고 한다. 나이 문제에 집착하고, 나이에 따라 차별하는 우리 사회 연령주의(에이지즘)의 단면이 드러난 사례다.

“김대중, 김영삼의 40대 기수론에 정치가 ‘구상유취’(입에서 젖내가 난다는 뜻)로 답한 게 50년 전의 일이에요. 그런데 아직도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게 놀랍죠. 심지어 세대 간 차별만이 아니라, 세대 내에서도 그런 차별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게 과거와 오늘날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6일 서울 명지대 연구실에서 만난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차별 문제에 천착해온 정 교수는 이달 우리 사회의 고질적 연령차별 문제를 다룬 ‘나이 묻는 사회’(한겨레출판)를 펴냈다. 부제인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에서 드러나듯,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애 주기별 멸칭을 얻고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연령차별 구조를 해부한 책이다.

‘이주 정치’를 주로 연구해온 정 교수가 ‘연령차별’에 꽂힌 데엔 직접적인 계기가 있다. 연금개혁을 다루는 수업에서, 학생들이 아무렇지 않게 ‘연금충’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 목격했을 때 그가 받은 충격은 컸다. 연금충은 사회에 기여가 없는 고령층을 비하하는 멸칭이다. 유사한 표현으로 ‘틀딱충’, ‘할매미’가 있다. 책에서 정 교수는 ‘충’이라는 어미를 붙인 멸칭에 대해 “노인을 벌레로 비인간화하는 극단적인 혐오 표현이자 매우 위험한 연령차별적 신호”라고 짚었다. 그는 “강의실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특정 집단을 향한 극단적인 멸칭을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돌이켰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6일 서울 서대문구 명지대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며 한국의 연령차별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노인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선 모든 연령대의 시민이 각자의 멸칭을 갖고 있다. “생애 주기별 맞춤형 연령차별”, “다중적 연령차별”이다. 이 나라에서 미래의 희망인 어린이는 ‘급식충’, ‘잼민이’로 불리고, 사회의 주류 집단이라 할 만한 중장년은 ‘영포티’, ‘김여사’, ‘개저씨’, ‘꼰대’로 폄하된다. 청년 세대는 ‘엠지(MZ) 세대’로 뭉뚱그려 호출되는데, 미디어에선 ‘워라밸’만 따지거나 개념 없는 신입사원으로 주로 묘사한다.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출생자까지 묶어 과도하게 일반화하는 오류는 덤이다.

다른 나라에도 노인을 향한 멸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전 연령대에 걸쳐 멸칭이 형성된 사회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모두가 각 나이 때마다 나이에 따른 차별을 받는다는 점에서, 연령차별은 오히려 다른 종류의 차별보다 덜 심각한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고 그는 책에서 설명했다. “흔히 젠더·인종·연령 차별을 3대 차별로 이야기합니다. 젠더와 인종 문제는 어느 정도 가시화됐지만, 연령차별은 너무 일상적이어서 가시화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는 “서구에서는 나이 멸칭을 사용하면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거나 사과와 법적 책임으로 이어지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연령차별이 ‘차별’이라는 인식 자체가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고도 짚었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어린이·청소년마저 멸칭으로 부르는 사회는 흔치 않다.

언어는 존재를 규정한다. 이 같은 멸칭은 단순한 유희나 풍자를 넘어 “연령차별주의를 영속화”하고 세대 범주를 고착하며, 더 나아가 폭력이나 차별의 행위로 이어지게 한다. 이런 사회에서 나이는 정체성의 최우선 범주가 된다. 모든 대화는 “너 몇 살이야”에서 출발한다. 어린이를 거부하는 노키즈존, 고령층을 거부하는 노시니어존은 연령차별주의의 상징적 표지다.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와 부모, 시니어가 있는 건데, 개인의 행동을 전체 세대 집단에 일반화하는 거거든요. 나이라는 기준을 그 사람의 정체성에서 가장 우선적인 범주로 보는 거죠.”

한국 사회가 유독 연령차별에 관대하면서도 첨예한 ‘나이 내전’을 겪고 있는 데에 대해 정 교수는 “생산성과 죽음, 자기 관리에 대한 평가가 모든 연령대에 겹겹이 가해지면서 나이를 중심으로 한 교차적 차별이 직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장유유서’라는 유교적 나이 규범이 강력하게 작동하던 세계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세계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전환기적 질서가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이 묻는 사회 l 정회옥 지음, 한겨레출판, 2만원

노인과 어린이는 생산성 측면에서 가치가 떨어지는 존재로 평가받는다. 함께 죽음을 애도하던 공동체 문화 대신 병원에서 빠르게 죽음이 처리되는 체계가 자리 잡으면서 죽음은 경의와 애도보단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 됐다. 죽음의 가장 가까운 곳에 노인들이 자리 잡고 있으니, 그들을 향해 경멸의 시선이 돌아간다. 정 교수는 자기 관리도 핵심적 요소로 꼽는다. ‘케이팝 공화국’인 한국 사회에서 완전한 신체의 표준은 아이돌이다. 잡티 하나, 군살 한 점 없는 외모를 얻으려 평범한 이들도 경주하듯 달려간다. “주름살과 검버섯은 외모에서 자기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신호”이고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하는 데 긴 시간을 쓰는 것도 자기 계발을 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이제 “동안 미모라는 말이 최상급 칭찬으로 받아들여지고” ‘저속노화’는 시대정신이 됐다. 유튜브를 열면 “20대부터 관리하라”거나 “30대에는 반드시 받아야 할 시술”을 소개해 준다. 빠르면 10대부터 누구나 이런 연령주의를 내면화한다. “노화되면 자기 관리 안 되고 실패하는 거고, 젊음은 생산성 그 자체라는 연령주의 사회의 메시지가 계속 재생산됩니다. ‘갓생’, ‘엔(N)잡러’를 추구하는 청년 세대는 누구보다도 연령주의적인 가치 기준을 적극적으로 내면화하고 있는 거라고 봐요.”

이런 사회에서 각 세대 집단은 연령주의의 차별적 시선을 내재화하고, 집단 내부에서조차 서로를 혐오하게 된다. ‘노노 혐오’가 대표적이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승인받기 위해 노인들은 같은 노인들을 더 신랄하게 비판”하고 서로를 타자화하는 것이다. 30대 지방선거 출마자에게 “젊은 ×이 무슨 시장 출마냐”며 폭력을 행사한 30대 유권자도 연령차별주의를 착실히 내면화했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격화되는 정치적 세대 갈등은 이런 연령차별과 착종돼 “상호 강화”를 낳는다. 보수화한 70대 이상 고령층과 20대 남성,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4050 세대는 ‘12·3 내란 사태’를 거치며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정 교수는 말했다. “원래 책 제목으로 나이 내전, 나이 전쟁도 고려했어요. 정치 성향과 연령주의는 분리돼 있지 않아요. 사실 상호 강화되고 있는 측면이 있죠.” ‘성장이냐 분배냐’ 식의 가치를 놓고 정치 성향을 나누는 게 아니라, “정치 성향이 성격 평가로 곧바로 번역되는” 상황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고리타분하고, 변화를 싫어하고, 뒤처져 있는” 보수의 ‘성격 평가’가 곧바로 고령층의 ‘틀딱충’ 이미지에 투사된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세대 갈등은, 다시 특정 세대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며 연령차별을 강화한다.

연령차별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고령층은 쉽게 ‘연금충’, ‘틀딱충’이라는 멸칭으로 차별당하고, 빈곤 노인은 이중차별의 혹독한 피해에 노출된다. 사진은 서울 탑골공원 옆 원각사 무료급식소에 점심식사를 위해 줄 선 노인들의 모습.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누구도 자유롭지 않은 연령차별 사회지만, 그런데도 ‘누가 겪는 차별이 가장 심각하냐’고 묻는다면 “노령층의 문제”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고, 정 교수는 답했다. “이미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는데도 우리는 노인 연령 기준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고, 빈곤 노인들을 어떻게 돌볼지도 고민하지 못하고 있죠.” 대한민국은 지난해 65살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겨,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나라 중 하나다.

비유교권에서 나이가 별 의미 없는 “텅 빈 변수”인 데 견줘, 한국 사회에선 나이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진짜 문제를 들여다보지도 해법을 만들어내지도 못한다는 게 정 교수의 고민이다. “나이가 65살이냐 66살이냐보다는 소득 수준이 얼마인지,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젠데 연령 기준이라는 첨예한 문제에 부딪혀 그 뒤에 숨은 계급 문제는 보지 못하고 있어요.” 연금의 나이 기준을 놓고 온 나라가 떠들썩해도, 빈곤과 고령이라는 이중 형틀에 묶인 빈곤 노인을 위해 고민하는 국가는 없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왜 삼천년을 견뎌온 나이 문제를 들먹이냐고, 누군가는 투덜거릴 수도 있다. 멸칭이나 차별이 아니라, 풍자가 아니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정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멸칭의 진짜 문제는, 그 혐오가 자원 배분에서의 차별로도 이어진다는 데 있어요. ‘틀딱충’, ‘연금충’을 위해 자원 배분을 더 할 리가 없잖아요. 연령에 대한 편견은 머릿속에서만 그냥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진지하게 마주 봐야 할 문제가 되는 거죠.”

나아가 우리 모두가 오늘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내기 위해서도, 연령주의는 극복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연령대마다 따라붙는 편견과 차별은 언제나 부정적인 모습만을 부각”하고,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맞이하게 될 인생의 여러 단계를 설렘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행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나이를 아주 따지지 않을 순 없겠지요. 하지만 나이가 조금 후순위에 있다면, 나이가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많은 의외의 만남을 가질 수 있고,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편안함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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