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미어를 입은 늑대’는 왜 포트폴리오를 압축하나
어중간한 브랜드 대거 정리해
‘명품 회사’ 초심을 찾겠다는 결정
가죽·패션 사업과 주얼리·시계 사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재편…정체성 확립에 초점

명품 산업을 움직이는 거물이 또다시 한국을 찾았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이다. 3~4년에 한번씩 꾸준히 방한하는 그가 이번에는 딸이자 크리스찬 디올 최고경영자(CEO) 델핀 아르노와 함께 서울 주요 백화점 매장을 둘러봤다.
이유는 명확하다. 글로벌 명품 성장세는 둔화하는 반면 한국 시장은 해마다 매출이 커지고 있어서다. 루이비통, 셀린느, 로에베 등 LVMH가 보유한 주요 브랜드 모두 한국에서 수익성 개선에 성공했다. 명품 업황의 불황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아르노의 행보는 잘되는 시장에 더욱더 공을 들이겠다는 전략으로도 읽힌다.
수익성이 악화하자 달라진 아르노의 선택은 경영전략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포트폴리오를 축소하고 일부 브랜드 매각을 준비하고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을 키워 ‘캐시미어를 입은 늑대’로 불리는 그가 이제 셀러를 자처하고 있다.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외형 확장만을 위해 사들인 브랜드가 큰 효과를 내지 못한 결과다. 이번 매각은 어중간한 브랜드를 대거 정리해 ‘명품 회사’로서 초심을 찾겠다는 결정으로도 읽힌다.
◆ 매수자에서 매도자로 바뀐 위치
루이비통, 디올, 불가리, 쇼메 등 75개의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 최대 명품 기업 LVMH가 최근 일부 브랜드 매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익성이 낮거나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성이 떨어지는 브랜드를 우선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중 하나가 미국 하이엔드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다. LVMH는 뉴욕에 본사를 둔 브랜드 라이선싱 회사 WHP 글로벌에 마크 제이콥스를 넘긴다. 구체적인 매각가는 공개되지 않았다. WHP는 베라 왕, 랙앤본 등을 보유한 회사다. 마크 제이콥스는 WHP글로벌의 핵심 브랜드로 올라설 예정이다.
LVMH는 지난해부터 마크 제이콥스를 팔기 위해 잠재적 구매자를 물색했다. 회사는 매각가로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원하고 있지만 시장은 이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하며 매각에 속도를 내지 못해왔다. 그간 미국 라이선싱 전문 기업 어센틱브랜즈에 매각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전해졌으나 WHP 글로벌이 마크 제이콥스를 품게 됐다.
이번 결정에 따라 LVMH는 29년간 운영해온 마크 제이콥스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됐다. LVMH는 1997년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를 포섭하기 위해 그의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 인터내셔널 지분 과반 이상을 인수했다. 그 결과 LVMH는 마크 제이콥스를 루이비통 최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할 수 있었다. 마크 제이콥스는 루이비통의 기성복 라인을 처음으로 신설하며 2014년까지 17년간 브랜드를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루이비통이 커지는 사이에 이름을 내건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의 영향력은 줄었다. 2000년대 들어 수익성 강화를 위해 하위 라인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2001년)를 론칭하고 2006년 향수 라인을 만들었다. 동시에 매장은 250개 이상으로 확대했다. 과도한 사업 확대로 브랜드 가치가 희석되며 고객 이탈이 증가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2013년 마크 제이콥스는 자신의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 루이비통을 떠나기로 결심했지만 브랜드를 살리기엔 늦었다. 결국 2015년 하위 브랜드인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 사업을 철수해야 했다. 뉴욕타임스는 2018년 ‘마크 제이콥스는 어떻게 몰락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 브랜드 하락을 조명했다.
여기에 뷰티 사업부문과 와인·주류 사업도 대폭 축소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뷰티에서는 팝스타 리한나가 설립한 ‘펜티 뷰티’, 프랑스 색조 브랜드 ‘메이크업 포에버’, 미국 스킨케어 브랜드 ‘프레쉬’를 우선 매각할 가능성이 크다. 와인·주류에서는 쿠바 럼 브랜드 에미넨테, 미국 나파밸리 대표 와이너리 중 한 곳인 조셉 펠프스 등을 매물로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 정체성 못 지킨 LVMH,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되면 LVMH가 운영해온 브랜드 가운데 최소 6개가 시장에 나오게 된다. 매각 브랜드의 공통점은 ‘명품’으로서 경쟁력이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브랜드는 어중간한 가격대와 운영 기간이 짧다. 대부분 설립 50년이 안 된다. 루이비통(172년), 디올(80년) 등과 비교하면 짧은 역사를 지닌다.
또 핵심 명품 브랜드와의 사업 연결성도 낮고 LVMH그룹이 가진 ‘명품 기업’이라는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그간 LVMH의 M&A 행보는 에르메스, 샤넬 등이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사업을 키우지 않는 것과는 대비되는 결정이었다.
LVMH는 다수 브랜드의 매각을 통해 사업을 가죽·패션 사업과 주얼리·시계 사업을 중심으로 재편할 계획이다. 결국 다시 정체성을 지키는 데 집중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기준 LVMH 매출 가운데 가죽·패션 사업과 주얼리·시계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9.7%에 달한다. 반면 향수·뷰티 사업 매출은 10.1%, 주류·와인 사업 매출은 6.6%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주류 소비가 급감하고 있으며 뷰티 산업은 한국 인디 브랜드를 중심으로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 매출 비중이 적고 자체 브랜드의 경쟁력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기 어려운 게 매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LVMH의 포트폴리오 축소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25년 1월에는 스텔라 매카트니와의 5년 파트너십을 종료했다. 2019년 LVMH가 인수한 49% 지분은 다시 브랜드 창업자인 스텔라 매카트니가 사들였다. 2024년 10월에는 미국 스트리트 브랜드 버질 아블로와의 계약을 6년 만에 종료하고 지분을 매각했다.
올해 1월에는 면세 사업자 DFS그룹 지분을 중국 여유그룹(CTG) 산하 CTG면세점에 넘겼다. 매각가는 3억9500만달러였다.
명품 산업 성장이 둔화하면서 소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등 VIP 충성도가 높은 초고가 브랜드는 여전히 사업성이 좋은 반면 비교적 가격이 합리적인 컨템포러리 브랜드의 인기는 하락세다.
지난 1월 열린 LVMH 실적 발표에서도 그 분위기가 드러났다. 당시 아르노 회장은 루이비통과 디올에 대한 언급만 반복하며 브랜드 경쟁력을 강조했다. 그는 “루이비통은 매력적이고 편한 옷을 만들고 있으며 디올은 파리 패션위크에서 최고의 오트쿠튀르 쇼를 보여줬다. 조너선 앤더슨은 훌륭한 디자이너”라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전임 디자이너인 존 갈리아노조차 멀리서 이런 후임자를 얻게 된 것에 기뻐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LVMH의 투자도 핵심 브랜드에 집중돼 있다. 올해 디올은 미국,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 등에서 총 4개의 플래그십 매장을 연달아 오픈했다. 팝업스토어와 일반 매장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 루이비통 역시 베이징, 프랑스 파리, 캐나다 밴쿠버,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등에서 신규 매장과 팝업스토어 등을 새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LVMH 전체 브랜드 매장 가운데 10%에 달하는 1500개 매장을 폐쇄한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또 올해 초에는 로로피아나에 10억유로(약 1조7500억원)를 추가 투자해 지분을 94%로 늘렸다. 로로피아나는 1924년 설립된 이탈리아 초고가 명품 브랜드로 2013년 LVMH가 지분 80%를 인수하며 경영권을 확보했다. 로로피아나 역시 연내 오스트리아 빈과 도쿄에서 신규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LVMH의 투자전략은 하이엔드 패션과 시계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루이비통·디올과 티파니앤코가 그 중심에 있다. 회사는 이 3개 브랜드를 각 카테고리의 시장 1위로 만들 계획이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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