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쓴 오월 광주 "우리는 광주에 얼마나 빚지고 있는가" [인터뷰]

권영은 2026. 5. 1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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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정찬, 장편소설 '그들이 있었던 곳'
장편소설 '그들이 있었던 곳'을 들고 1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를 찾은 정찬 작가는 "5월 광주를 소재로 2002년 세상에 내놓았던 장편 '광야'를 바탕으로 새로이 쓴 소설"이라 소개했다. 박지연 인턴기자

2024년 12월 3일, 불법 계엄을 막으려 깊은 밤 국회로 달려가는 시민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소설가 정찬(73)은 '오월 광주'를 떠올렸다. "1980년 5월 17일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 쿠데타에 저항한 유일한 도시가 광주였지요. 그날 밤, 44년 전 광주가 현전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로부터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장편소설 '그들이 있었던 곳'이 나왔다. 2002년 펴낸 장편소설 '광야'를 바탕으로 새로 쓴 작품이다. 지난 13일 만난 정 작가는 "이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모르는 국민은 없겠지만, 어떻게 전개되고 또 어떻게 끝났는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지식이 아닌 감각으로 일깨우기 위해 당시 광주 시민들의 공포와 상처까지 간접체험할 수 있는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시점 자체를 달리했다. 독일 기자 '테리 머턴'이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현장에서 1980년 광주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광야'가 나아갔다면, '그들이 있었던 곳'은 공수특전단이 광주 시내에 모습을 드러내는 5월 18일 오후 4시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12·3 불법 계엄을 보며 광주를 과거의 사건으로만 둘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로 현재화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그들이 있었던 곳'은 1980년의 광주 금남로와 전남도청이면서 2024년 국회 앞이 된다.

그들이 있었던 곳·정찬 지음·말하는나무 발행·248쪽·1만8,000원

소설은 국가 폭력의 참상을 다루는 데 머물지 않는다. 죽음을 각오했던 평범한 사람들 내면의 두려움과 슬픔, 인간이라면 품을 수밖에 없는 죄의식까지 파고든다. 특히 눈길을 끄는 이는 계엄군 '강선우'다. 허구의 인물. 그는 시위대 옆구리에 서슴없이 대검을 쑤셔 넣는 학살의 현장에서, 베트남전 참전의 트라우마를 맞닥뜨린다. 결국 시위대 사살 명령을 내린 상관을 쏴 죽이고 도청으로 향한다. 시위대를 쫓다 대열에서 이탈해 막다른 골목에 몰린 강선우를 '위험하니 돌아가라'며 보내줬던 '박태민'을 찾아간 것이다. 정 작가는 "강선우는 악몽에서 나가야겠다고 결심하곤 자신이 죽을 장소로 도청을 택한다"며 "박태민이 죽는 곳에서 자기도 죽고 싶다는 충동이 가장 컸을 것"이라고 했다.

박태민은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1951~1980)을 모델로 했다. 소설 속 시민군 지도부로 나오는 김원갑과 박남선, 수습위원회 조직에 앞장선 송기숙, 무기 반납을 주장하며 학생수습위원회를 이끈 김창길 등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계엄군과 미국대사관, 미 중앙정보국(CIA) 관계자들 역시 실명으로 등장한다. 5월 광주의 전모를 제대로 짚기 위해서다.

정찬 작가는 "역사는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하지만 소설은 사실 너머 있는 진실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며 "소설에서 허구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이게 하는 굉장히 중요한 장치"라고 했다. 박지연 인턴기자

무엇보다 소설은 계엄군이 탱크를 앞세워 광주로 재진입한 5월 26일까지 이어진 짧지만 뜨거웠던 '해방광주'의 시간도 공들여 다룬다.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죽음을 껴안고 싸울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따라가면서다. 정 작가는 "초기 계엄군이 자행한 강도 높은 폭력을 목격하면서 품게 된 윤리적 분노가 점점 커지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며 "나아가 이는 신군부가 집권을 위해 민주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폭력이라는 인식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은 박태민은 이렇게 말한다. "난 두려웠다. 죽음을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보았던 죽음들이 두려움을 씻어내더구나."(95쪽)

항쟁파와 비항쟁파가 무기 반납을 두고 치열하게 맞섰던 해방광주 내부의 "권력 싸움"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계엄사가 간첩 개입과 좌익 선동 등 프레임을 덧씌우며 시민을 '폭도'로 몰던 상황에서 무기를 내려놓으면 그간 흘린 피가 헛되이 될 수 있다는 게 항쟁파의 우려였다. "무장 시민이 폭도가 아니면 계엄군이 폭도가 되어야 합니다. (…) 전두환이 폭도의 수괴가 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요?"(167쪽)

정 작가는 항쟁파의 무장론은 애초에 계엄군과의 전투, 그리고 승리가 목적이 아니었다고 본다. "광주시민을 살리고 해방광주의 등불을 지키는 방법은 결국 소수의 희생, 즉 도청에 끝까지 남아 죽음을 감수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봤을 겁니다. 죽음으로써 지켜낸 경험은 1980년대 줄기찬 저항으로 이어졌고요. 1987년 6월 항쟁의 출발점에는 광주의 희생이 있습니다." 그는 역사의 빚을 거듭 강조했다. "우리가 얼마나 그 사람들한테 빚을 졌는지 이제라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했다.

"죽음은 진실을 지키기 위한 불꽃이었습니다. 죽음을 껴안고 싸웠던 이들은 알 것입니다. 해방광주는 죽음의 혼이 켠 진실의 등불임을."(212쪽)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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