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싱크탱크 수장 신용석 “美·中 보조금 경쟁 치열…韓, 자국 기업 지원 필요”
“한국 R&D 늘었지만 생산성 둔화”
“中은 기술전쟁 중…정부·기업·대학 총동원”
“생산성 높은 기업에 자원 효율 배분해야”
“반도체 초과 세수, 노동시장 투입 제안”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현대자동차그룹 싱크탱크인 HMG경영연구원을 이끄는 신용석 원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 나서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도 선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유럽·중국이 모두 자국 핵심 산업 지원 경쟁에 나선 상황에서 한국 역시 기존 자유시장 논리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신 원장은 지난 15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경제·인문사회연구회·한국개발연구원(KDI) 주최 콘퍼런스에서 “현재 전 세계에서 자국의 중요한 기업을 지원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며 “국내 시장에서 독과점하는 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무대에서 다른 보조금을 받는 해외 기업들과 경쟁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선별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 지원 자원을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들에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국가 전체 생산성과 성장 잠재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제언으로 풀이된다. 실제 그는 학계에서도 자원 배분과 생산성, 산업 구조를 연구해 온 거시경제학자로 꼽힌다.
지난해 말 HMG경영연구원장으로 부임한 신 원장은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이다. 그는 그간 연구를 통해 성장의 성패가 단순한 투자 규모나 속도가 아니라,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이동시키느냐에 달려 있다고 분석해 왔다.
그는 이날 발표에서도 한국 경제 성장 둔화의 원인을 단순한 기술 부족이 아니라 비효율적 자원 배분과 생산성 저하에서 찾았다.
신 원장은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비중이 크게 늘었지만 생산성 증가율은 오히려 둔화됐다”며 “R&D 자금이 실제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과거보다 석·박사급 고급 연구 인력 비중이 줄어든 점과 생산성이 높은 기업으로 노동·자본 이동이 둔화된 점을 문제로 꼽았다.
그러면서 “1980년대 한국 경제는 새로운 기업 진입과 고용 이동이 활발했지만 최근에는 기업 성장과 퇴출, 신규 진입 모두 둔화되며 경제 전체의 다이내믹이 약해졌다”고 진단했다.
발표의 상당 부분은 중국 산업 생태계 분석에 할애됐다. 현대차그룹이 자동차뿐만 아니라 자율주행·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도 중국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는 만큼 이를 면밀히 연구해왔다는 설명이다.
신 원장은 “중국은 정부·대학·기업이 긴밀한 파트너십을 구축해 움직이고 있다”며 “정부가 기업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대학은 기초 연구를 지원하며 기업은 이를 응용해 다시 대학과 생태계에 투자하는 순환 구조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규제 환경 차이도 언급했다. 그는 “미국은 신약 하나 개발하려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에 수년이 걸리지만 중국은 훨씬 빠르게 움직인다”며 “자율주행 역시 한국·미국·유럽은 안전 기준이 매우 엄격한 반면 중국은 기술 확산 속도가 훨씬 빠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중국 기업들의 과열 경쟁도 짚었다. 신 원장은 “중국 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국 시장 내부 경쟁이 지나치게 치열하기 때문”이라며 “중국 안에서 돈 벌기가 너무 어려워 해외 시장으로 나오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 특유의 개방형 혁신 문화도 소개했다. 그는 “중국 기업들은 특허를 독점하기보다 기술을 공개하면서 자신들의 혁신 역량을 정부에 증명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결국 정부 지원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기업임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다만, 신 원장은 “한국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중국 모델을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면서도 “경쟁국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역시 글로벌 산업 경쟁 구조 변화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원장은 “중국은 반도체를 유일한 약점으로 보고 엄청난 속도로 투자하고 있고, 미국 빅테크들은 AI와 데이터센터에 천문학적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며 “유럽조차 산업 정책과 보호무역 강화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도 단순히 국내 상황만 볼 것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 판도 속에서 무엇을 규제 완화하고 어떤 산업을 육성할지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국가 차원의 장기 산업 전략 논의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노동시장 구조 개편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덴마크식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 모델을 거론하며 “유연화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재취업 교육과 일자리 연결 시스템까지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플렉시큐리티는 기업에는 비교적 유연한 고용·해고 자율성을 부여하는 대신, 정부가 실업급여와 직업 재교육 등 강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덴마크식 노동시장 모델이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된 반도체 초과 세수와 관련해서도 단순 현금성 지원보다 노동시장 재교육과 재취업 인프라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제언을 내놨다.
신 원장은 “이번에 반도체 덕분에 세수가 많이 늘었지만, 이를 직업 재교육이나 재취업 연계 서비스 확대에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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