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 영국이 남긴 갈등의 뿌리…고유가에 '유전 로또' 맞은 에세키보 분쟁 재점화

이선화 기자 2026. 5.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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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 에세키보를 포함한 지도 모양의 배지를 착용하고 나왔습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바베이도스 총리, 그레나다 총리와의 만남 등 여러 외교 무대에서 같은 배지를 달고 나왔습니다.

가이아나 정부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카리브해 공동체인 카리콤(CARICOM)에 서한을 보내 베네수엘라가 배지를 비롯한 각종 지도에 에세키보를 포함해 의도적으로 도발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논란이 일자 로드리게스는 "이것이 내가 평생 알고 지낸 유일한 베네수엘라"라고 맞섰습니다.

그러면서 관련 문제가 계류 중인 국제사법재판소가 베네수엘라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에세키보(Essequibo)'

에세키보는 베네수엘라와 수리남, 브라질 사이에 끼어있는 가이아나의 영토입니다.

가이아나 전체 국토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합니다.

이 땅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베네수엘라는 1830년부터 에세키보의 영유권을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1899년 국제중재재판소는 에세키보를 점유한 영국령 가이아나의 손을 들어줬고, 가이아나는 독립 이후 이 땅을 실효적으로 지배해왔습니다.

베네수엘라는 당시 판결이 강대국에 의한 불공정 조약이었다면서 무효를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경분쟁을 원만히 해결하기로 한 1966년 제네바 협정이 재협상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논리입니다.

가이아나는 100년이 넘은 판결을 뒤집는 건 세계 국경 안보에 위험한 선례가 될 것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검은 황금'

한동안 잠잠했던 분쟁에 다시 불이 붙은 건 '검은 황금', 석유 때문입니다.

2015년 미국의 정유회사 엑손모빌이 에세키보 인근에서 대규모 해상 유전을 발견한 겁니다.

인구 82만 명의 가이아나는 삽시간에 1인당 원유 매장량 세계 1위로 우뚝 섰습니다.

가이아나엔 그야말로 로또나 다름없는 자원의 축복이었지만, 동시에 지정학적인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영유권 주장이 더욱 노골화된 겁니다.

지난해에는 국민투표를 통해 에세키보를 자국의 새로운 주로 승인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2024년 3월〉
"찬성하시는 분들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으므로..."

그에 앞서선 에세키보를 포함한 베네수엘라의 새 지도를 공식화하기도 했습니다.

[니콜라스 마두로/베네수엘라 당시 대통령(2023년 12월]
“오늘 밤 우리가 축하할 일이 무엇인지, 여기 지도를 봐주세요. 베네수엘라의 완전한 지도 만세. 조국 만세. 베네수엘라 만세!”

노다지 땅이 되어버린 에세키보, 갈등은 결국 국제 법정으로 넘어갔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이번 주 양측의 입장을 듣는 심리를 진행했습니다.

[델시 로드리게스/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
"이 영토 분쟁에서 베네수엘라는 해당 영토의 유일한 소유주입니다. 우리는 공화국 건국 이래, 그리고 그 이전 식민 지배 시절부터 이 영토의 중요성을 역사적으로 입증해 왔습니다."

[폴 라이힐러/가이아나 측 수석 법률 대리인]
"베네수엘라는 1897년 조약을 무효라고 우기거나, 그 조약이 잘못되었다는 핑계로 1899년의 중재 판정까지 무효로 하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정당한 법적 근거는 단 하나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판소는 최종 판결까지 수개월이 더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남미의 거대한 화약고가 되어버린 에세키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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