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경제·군비 경쟁… 째깍대는 ‘전쟁의 시계’

박태해 2026. 5. 1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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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구도, 경제 블록화…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과 유사
대만 해협·우크라전쟁 ‘화약고’
북핵 위기 한반도 ‘초고위험지’
우발적인 충돌 땐 대전쟁 우려
강대국 핫라인 구축·군비 통제
역사 반추… 위기 관리 지혜 필요

폭풍이 온다/오드 아르네 베스타/최준영 옮김/3만2000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단순한 국경 분쟁이 아니라 냉전 이후 국제질서 자체를 흔들어 놓았다. 이는 19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이 인근 지역을 지배하려던 기회주의적 팽창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은 러시아·우크라이나전의 한 장면. 세계일보 자료사진
노르웨이 출신 국제정치사학자 오드 아르네 베스타가 쓴 이 책은 국제정치의 불안한 흐름을 역사적 통찰로 해부한 책이다. 저자는 “우리는 다시 1914년의 문턱에 서 있다”고 진단한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처럼, 오늘의 세계 역시 강대국 간 패권 경쟁과 군비 경쟁, 경제 블록화, 민족주의와 동맹 대립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가 과거 영국과 독일의 충돌 구조와 놀라울 만큼 닮았다며 돌발적인 대전쟁 가능성을 경고한다. 책 제목의 ‘폭풍’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폭풍의 전조로 이미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가장 주목하는 역사적 비교 대상은 20세기 초 영국과 독일의 경쟁이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과 해군력을 바탕으로 세계 질서를 주도하던 패권국이었다. 그러나 통일 이후 급속히 성장한 독일은 제조업과 과학기술, 군사력에서 영국을 빠르게 따라잡았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대양해군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고, 영국은 이를 단순한 성장의 문제가 아니라 자국 패권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저자는 한반도를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 미·중 갈등, 러시아 변수까지 얽힌 ‘초고위험 지역’이라고 규정한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북한이 공개한 8700t급 핵잠수함. 세계일보 자료사진
베스타는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이 구조와 매우 유사하다고 말한다. 미국은 여전히 군사·금융·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강국이지만, 중국은 제조업과 전기차, 배터리, 인공지능(AI), 희토류 공급망 등 전략 산업에서 급속히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전기차 기업들의 부상은 세계 산업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BYD는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샤오미 역시 스마트폰 기업에서 전기차 기업으로 변신해 세계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반면 미국은 반도체와 첨단 인공지능(AI) 기술 분야에서 중국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미국 정부는 AI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했고, 화웨이에 대한 제재도 강화했다. 베스타는 이를 단순한 무역 갈등이 아니라 ‘21세기형 경제전쟁’으로 규정한다.

특히 경제의 블록화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1914년 이전 유럽 역시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전쟁은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경제적 상호의존은 오히려 경쟁과 불안을 증폭시켰고, 작은 사건 하나가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오드 아르네 베스타/최준영 옮김/3만2000원
대표적인 사례가 1914년의 사라예보 사건이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세르비아 민족주의 청년에게 암살당한 사건은 처음에는 국지적 분쟁처럼 보였다. 그러나 동맹 체제가 연쇄적으로 작동하면서 유럽 전체가 전쟁에 휘말렸다.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공격하자 러시아가 개입했고,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지원했다. 이어 프랑스와 영국까지 참전하면서 결국 세계대전으로 번졌다.

저자는 오늘날 위험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대만해협을 지목한다. 중국은 대만을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고, 미국은 대만 방어를 위한 군사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군용기의 대만 방공식별구역 진입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미국 군함의 대만해협 통과도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발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그것이 단순한 지역 분쟁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역시 저자의 경고를 뒷받침하는 사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단순한 국경 분쟁이 아니라 냉전 이후 국제질서 자체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러시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대를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결국 무력 침공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 세계는 에너지 위기와 식량 위기, 공급망 혼란이라는 복합 충격을 동시에 겪게 됐다.

저자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끌어낸다. 강대국은 자신들의 행동을 ‘방어’라고 주장하지만, 상대국은 이를 ‘공격’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나토 확대를 포위 전략으로 봤고, 미국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패권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문제는 서로 두려워할수록 군비 경쟁이 더욱 가속화된다는 데 있다.

실제로 세계는 다시 군비 경쟁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일본은 방위비를 대폭 늘리고 있고, 독일 역시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의 재무장 정책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항공모함과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군사 배치를 강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독자의 눈길을 끄는 부분은 한반도에 대한 분석이다. 저자는 한반도를 미·중 경쟁과 북핵 위기, 러시아 변수까지 동시에 얽혀 있는 ‘초고위험 지역’으로 여긴다.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지속해서 고도화하고 있고, 한국·미국·일본의 안보 협력 역시 강화되고 있다. 만약 한반도에서 우발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으며, 여기에 러시아까지 얽히면 상황은 훨씬 복잡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21세기판 발칸반도 위험’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저자는 비관론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지도자들은 상대국의 공포와 불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모두가 ‘짧은 전쟁’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수천만명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그는 오늘날 국제사회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강대국 간 대화 채널 유지, 경제전쟁 완화, 군비 통제, 위기관리 체계 구축이 절실하다는 것. 특히 미국과 중국이 완전한 적대 관계로 들어설 경우 세계 경제와 안보가 동시에 붕괴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무엇보다 위기 상황에서 오판을 막기 위해 지도자들 사이의 신뢰할 수 있는 소통 채널, ‘핫라인’을 평상시부터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왜 세계가 다시 위험해지고 있는가”를 역사적 사례와 현재의 지정학을 연결해 설명하는 일종의 경고장이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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