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도 작품인데"…전통주·위스키 업계 '경고그림 쇼크' [권 기자의 장바구니]

“술병이 곧 브랜드”…프리미엄 주류 직격탄 우려
16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 및 고시 개정에 따라 오는 11월 9일부터 주류 용기와 광고에 음주운전 위험 경고 문구 또는 그림을 추가로 표기하도록 했다. 시행일 이전 반출·수입 제품은 내년 5월 8일까지 판매할 수 있도록 6개월 유예기간을 둔다.
정부 표준안은 경고 문구와 그림을 주류 라벨의 주상표, 즉 전면부에 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를 지키지 않거나 경고 표시를 하지 않으면 국민건강증진법 제31조의2에 따라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주류업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라벨 디자인 자체가 상품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다. 최근 위스키와 와인, 전통주 시장에서는 단순히 술맛보다 병 디자인과 브랜드 스토리, 지역성, 한정판 여부 등이 구매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병 자체를 전시하거나 수집하는 소비 문화도 확산하고 있다.

한정판 제품에도 앞으로는 '경고 그림'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해외 직구 수요 확대다. 국내 정식 유통 제품에는 음주운전 경고 그림이 전면 노출되지만 해외 직구 제품은 상대적으로 규제 체감이 덜할 수 있어서다. 위스키·와인 업계에서는 “같은 제품인데 국내 제품만 촌스러워질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수입주류업계 관계자는 “애주가들은 병 디자인과 라벨 보존 상태까지 중요하게 본다”며 “국내 정식 수입품 전면에 경고 그림이 붙으면 일부 소비자는 해외 직구나 면세 채널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명절 선물 시장 위축 가능성도 거론된다. 전통주와 위스키, 와인은 기업 선물과 명절 선물세트 비중이 높은 품목이다. 업계에서는 경고 그림이 전면에 들어갈 경우 프리미엄 이미지가 약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일부 소주·맥주 제품에 음주운전 금지 아이콘 등을 선제 적용했지만 업계 전반에서는 정부 표준안을 그대로 적용할지 자체 디자인 방식으로 대응할지를 두고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위스키와 전통주를 수집하는 김지수 작가는 “병 전면에 이런 경고문구가 붙는다면 수집은 물론 구매도 망설일 수밖에 없다”며 “전통주 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도 제품 디자인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경고문구를 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방 양조장엔 생존 문제” … 생산라인 혼선 우려도
전통주 업계의 고민은 더 깊다. 안동소주와 문배주, 이강주 같은 증류식 전통주와 수제 막걸리는 병과 라벨에 지역성과 역사성을 담아 차별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면에 경고 그림이 붙으면 제품의 첫인상과 선물용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어서다. 상당수 양조장이 지방에서 지역 쌀과 과일, 특산물을 활용하는 만큼 소비 위축이 개별 업체를 넘어 지역 농산물 소비와 관광 수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명욱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는 “전통주는 단순히 술을 파는 산업이 아니라 지역 농산물 소비와 문화, 관광을 연결하는 산업”이라며 “지방 양조장이 위축되면 농업과 지역경제에도 영향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소규모 양조장에는 라벨 교체 비용도 부담이다. 대기업은 법무·품질관리·패키지 조직을 통해 생산라인 변경에 대응할 수 있지만, 영세 양조장은 대표가 생산과 판매, 납품을 함께 맡는 경우가 많다. 제도 시행이 반년 남짓 남았지만 라벨 전면 표기 원칙이나 처벌 규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업체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지방 전통주 제조업체 관계자는 “새 기준에 맞춰 라벨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를 최근에야 들었다”며 “어디까지 수정해야 하는지부터 막막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양조장 관계자는 “명절 물량은 몇 달 전부터 준비하는데 라벨을 다시 찍어야 하면 생산 계획 전체를 다시 짜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국민 건강과 음주운전 예방이라는 공익 목적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새 규제라기보다 기존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안내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권 기자의 장바구니는 기자가 직접 담은 현장 체감 물가와 식품·유통 트렌드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온라인몰 등을 오가며 실제 장바구니에 담긴 가격 변화를 추적하고, 신제품 출시와 소비 흐름까지 함께 짚습니다. 단순 가격 나열이 아니라 '왜 올랐는지, 무엇이 팔리는지, 소비자는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풀어내는 데 초점을 둡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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