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보다 어렵다”는 중국 마라톤의 역설···수십만명 몰려도 엘리트는 기근

박은경 기자 2026. 5. 1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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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티안 사웨(31·케냐)가 지난달 런던 마라톤에서 1시간59분30초를 기록하며 공식 대회 사상 처음으로 ‘서브2’(마라톤 2시간 벽 돌파)를 달성했지만, 14억 인구 대국 중국은 마라톤 강국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 내 마라톤 열풍으로 대회 참가가 ‘복권 당첨’에 비유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졌지만, 정작 엘리트 선수층과 기록 수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시간10분 이내 완주 기록 보유 선수가 18명에 불과해 일본 등 아시아 경쟁국과 비교해도 현저히 뒤처진다는 지적이 나온다.ㄹ려도

15일(현지시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오는 12월 6일 열리는 상하이 마라톤은 접수 기간이 절반도 지나지 않아 신청자 수가 이미 지난해 전체를 넘어섰다. 30주년을 맞아 정원을 3만명으로 늘렸지만 수요는 여전히 ‘공급’을 웃돈다. 지난해에는 35만6589명이 신청해 풀코스 참가 당첨률이 7.2%에 그쳤다. 2024년 11.2%(25만7854명), 2023년 13.7%(17만2872명)에서 해마다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의 마라톤 열풍은 다른 나라보다 늦게 시작됐다. 첫 국제 마라톤 대회는 1981년 베이징에서 열렸는데 당시엔 프로 선수만 참가할 수 있었고, 아마추어에게 문호가 열리기까지 거의 20년이 걸렸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마라톤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약 15년 전부터다. 소호차이나의 판스이 회장, 완커의 왕스 창업자 등 부동산 재벌들이 마라톤 도전기를 SNS에 공유하면서 달리기 붐이 빠르게 퍼졌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12일 중국 베이징 거리에서 열린 하프마라톤 대회 도중 중국 공안들이 경계 근무를 서는 가운데 참가자들이 도로를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2014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스포츠 산업을 국가적 과제로 격상시키면서 열기는 가속화됐다. 2019년에는 전국에서 1828개의 마라톤·장거리 달리기 대회가 열려 700만명 이상이 참가했다. 5년 전 51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폭발적인 증가다.

그러나 올해는 당국이 안전·혼잡 관리를 이유로 대회 수를 줄이면서 출전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안전사고가 잇따르자 100개 이상의 대회가 연기되거나 취소됐기 때문이다.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마라톤 2시간10분 이내 완주자는 18명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의 달리기 열풍은 대중 참여를 넘어 엘리트 경기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0 도쿄·2024 파리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일본 선수들은 모두 10위 안에 들었다. 미국 매체 아웃사이드온라인에 따르면 올해 초 마라톤 시즌에만 일본 남자 선수 50명이 2시간10분 벽을 깼다. 세계육상연맹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 미국 남자 선수의 역대 2시간10분 이내 완주자는 47명이다.

허원이 베이징대 국가체육산업연구기지 사무총장은 SCMP에 “마라톤 붐과 엘리트 경기력을 혼동해선 안 된다”며 “경기 스포츠는 재능 발굴과 과학적 훈련에 달린 반면, 오늘날 많은 마라톤 대회는 젊은이들이 유행을 좇는 공간에 불과하다. 전혀 다른 두 개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적 관점에서 허 사무총장은 마라톤이 도시산업으로 진화한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많은 곳에서 마라톤은 본질적으로 ‘문화관광 프로젝트’나 다름없다. 유동인구를 유치하고 지역 소비를 촉진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마라톤 참가에는 교통·숙박·식비 등을 합쳐 1인당 약 3000위안(약 66만원)이 들며, 우시 같은 도시는 단 한 번의 대회로 약 3000만달러(약 451억원)를 벌어들인다. 소비 침체로 정부가 수백억 달러의 산업 보조금을 쏟아붓는 시점에 소비 의지가 있는 사람들의 수요를 외면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다만 허 사무총장은 이 같은 성공이 엘리트 선수 발굴과는 전혀 다른 논리라고 선을 그었다. “3만 명이 달리는 대회에서 선두의 200명 전문 선수와 그 뒤 아마추어는 같은 피라미드 안에서도 완전히 다른 층”이라는 것이다.

그는 국제 경쟁력 향상의 열쇠로 학교 기반 선발 시스템을 꼽았다. “대중화가 재능 발굴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선발은 초·중·고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가 관련 정책을 추진 중이고, 청소년 축구 프로그램을 모델로 한 ‘육상 특기학교’ 신설도 제안했다. 다만 체육 교사 부족, 선수 출신의 교원 자격증 취득 요건, 가오카오(대학입시) 중심의 교육 문화, 부모들의 스포츠 기피 인식 등 구조적 장벽이 여전하다고 짚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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