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中 ‘건설·전략적 안정관계’…“美 겨냥 함정” [정다은의 차이나코어]

베이징=정다은 특파원 2026. 5. 1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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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건설적 전략적 안정관계’ 제시하며 미중관계 재설정 시도
트럼프는 농산물·항공기 거래 집중…시진핑은 강대국 지위 부각
“3년과 그 이후” 명시하며 차기 美정부까지 겨냥한 포석
대만 문제엔 충돌 가능성 언급하며 핵심이익 양보 불가 재확인
러·파키스탄 잇단 방중으로 우크라·중동 변수 속 대미 지렛대 강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 중국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2박 3일 일정을 끝으로 마무리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대국 리더로서의 지위를 재확인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이 제시한 ‘건설적 전략적 안정관계’라는 표현에 이목이 쏠린다. 단순한 외교 수사가 아니라 미중 관계를 중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재설정하려는 틀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최고경영자(CEO)단을 대동하고 농산물·항공기·에너지 거래에 초점을 맞췄다면, 중국은 양국 관계의 이름표를 먼저 제시하며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부각했다. 미국이 단기 성과와 ‘스몰딜’에 집중하는 사이 중국은 향후 3년 이상 이어질 미중 관계의 기본 구도를 짜려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로운 관계설정 먼저 내세운 中…멋모르고 덥석 받아든 美

14일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은 “중국은 ‘티파(提法)’, 즉 권위 있는 공식 표현을 가볍게 내놓지 않는다”면서 관계에 먼저 이름을 붙이는 데서 중국의 높아진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정상회담 직후 양국이 ‘건설적 전략적 안정관계’를 향후 3년 이상 이어가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이 용어를 그대로 공식화하지는 않았지만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전략적 안정은 중국이 강조하는 것 중 하나이며 우리도 동의한다”는 취지로 언급하면서 대체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이 먼저 관계를 규정하고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게 디플로맷의 분석이다. 앞서 1997년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건설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제시했고 양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이를 구축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다만 당시 중국의 경제 규모는 미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았다. 미국이 중국을 동급 강대국으로 인정했다기보다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유도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를 수용한 측면이 컸다.

이후에는 로버트 졸릭 전 미 국무장관의 ‘책임 있는 이해관계자’, ‘G2’ 등 표현이 등장했지만 중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쓰지 않았다. 2013년 시 주석이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제시한 표현은 ‘신형 대국관계’였다. 시 주석은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 두 대국을 수용할 수 있다”며 미국과 대등한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자 했지만 미국은 이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중국은 ‘건설적 전략적 안정관계’를 미중 관계의 ‘새로운 위치 설정’으로 제시했고, 시 주석은 이것이 “향후 3년과 그 이후” 양국 관계의 전략적 지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관영매체도 이 표현을 ‘협력을 주축으로 한 적극적 안정’, ‘절제된 경쟁에 기반한 양성 안정’, ‘이견을 통제할 수 있는 상시 안정’, ‘평화를 기대할 수 있는 장기 안정’으로 설명했다. 향후 미국이 대중 기술통제나 공급망 압박을 강화할 경우 중국은 이를 정상 간 합의한 ‘전략적 안정’ 위반으로 문제 삼을 수 있는 셈이다.

‘3년과 그 이후’를 명시한 대목에서도 중국의 속내가 읽힌다. 트럼프 2기 임기뿐 아니라 차기 미국 행정부까지 염두에 둔 표현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 문제나 인권 문제 등 이념적 의제에 상대적으로 덜 얽매여 있어 오히려 협상이 가능한 인물로 보고 있다. 이번에 설정한 기조를 다음 정권에서도 이어가야 한다는 압박 장치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같은 발표문에서 대만 문제를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선으로 제시한 것 역시 핵심 이익을 관철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더디플로맷은 “미국은 거래를 처리할 준비는 돼 있었지만 중국 정치 구호와 경쟁할 준비는 돼 있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 표현을 중국이 읽는 방식으로 읽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라며 “미국은 자신이 방금 무엇에 동의했는지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받아들인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몰딜’이었지만 習이 얻은 건 충분

연합뉴스
이 용어 외에도 시 주석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부각했다. 시 주석은 회담 모두발언부터 미중 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기존 강대국과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 간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국제정치 이론이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층 노골적인 경고를 내놨다. 시 주석은 “이를 잘 처리하면 양국관계는 전반적인 안정을 유지할 수 있지만 잘못 처리하면 양국은 충돌하거나 심지어 분쟁으로 이어져 전체 중미관계를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경고했다. 대만 문제가 미중 관계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이 사안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중국이 이란 전쟁과 무역 갈등에 가려질 수 있는 회담 의제에서 대만 문제를 최우선 순위로 끌어올리려 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을 향해 우호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그는 “당신은 훌륭한 지도자이고, 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서로 전화하며 문제를 아주 빨리 해결했고, 앞으로도 함께 멋진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며 시 주석을 치켜세웠다. 뉴욕타임스(NYT)는 “시 주석은 철저하게 계산된 모습으로 등장해 이제 중국이 초강대국으로서 면모를 보일 때가 왔음을 분명히 했다”고 평가했다.

회담 성과가 ‘스몰딜’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지만 시 주석 입장에서는 9월 예정된 추가 정상회담까지 협상 시간을 확보했다는 점만으로도 적지 않은 성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만찬에서 9월 24일 시 주석과 펑리위안 여사를 백악관으로 국빈 초청하겠다고 공식화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중국 전문가 존 친은 르몽드에 “베이징이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원하는 것은 미국의 압박에서 벗어날 시간과 공간, 완충지대”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 측은 회담 이후 중국의 대규모 농산물 구매 가능성을 강조했다. 로이터통신은 미 무역대표부가 중국의 향후 3년간 연간 수백억 달러 규모 농산물 구매를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새 품목이 포함될지, 기존 대두 구매 약속을 재확인하는 수준인지 등은 아직 불분명하다. 중국 입장에서는 구체적 양보를 최소화하면서도 미중 관계의 안정 관리라는 큰 틀을 확보한 셈이다.

다음주 러시아·파키스탄 줄줄이 방중…중재자 면모 부각시키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떠난 직후 러시아와 파키스탄 정상급 인사들의 방중 일정도 이어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조만간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방중 준비가 마무리됐다”며 방문 임박 사실을 확인했다. 정확한 날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양국 간 통상적 고위급 교류 차원으로 알려졌다.

이번 푸틴 방중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긴장이 동시에 이어지는 가운데 미중 정상회담 직후 추진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 안정화를 모색하는 동시에 러시아와의 전략적 밀착을 과시하며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윌리엄 클라인 미 국무부 전 중국담당 국장 대행은 미국 ABC 인터뷰에서 “미중 간 불신과 경쟁은 과거보다 깊어졌고, 중국은 이전보다 더 많은 지렛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오는 23일부터는 미국과 이란 사이 종전 협상 중재국인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도 중국을 찾는다. 파키스탄 측 발표에 따르면 샤리프 총리는 23~26일 중국을 공식 방문하며 디지털 경제와 기업 간 협력 포럼 등에 참석할 예정이다. 표면적 의제는 디지털과 에너지 분야 경제 협력이지만, 파키스탄이 최근 미국과 이란 간 접촉을 중재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중동 정세와도 맞물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베이징=정다은 특파원 down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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