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의 시선] 딸배헌터와 깨진 유리창

차기현 판사(광주지법) 2026. 5. 16.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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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유로(喻老)편에는 "천 길 둑도 땅강아지와 개미가 낸 작은 구멍 때문에 무너진다"라는 비유가 나온다.

큰 둑이 무너지는 장면만 보면 거대한 재난이지만, 시작은 대개 손가락 하나 들어갈까 말까 한 작은 구멍이라는 것이다.

천 길 둑의 작은 구멍도 "별일 있겠어"라고 방치하다 결국 흙탕물이 온 고장을 삼키게 된다.

둑이 무너진 뒤 수습하는 것보다, 지금 그 작은 틈을 막는 일이 훨씬 쉽고, 훨씬 정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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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유로(喻老)편에는 "천 길 둑도 땅강아지와 개미가 낸 작은 구멍 때문에 무너진다"라는 비유가 나온다. 큰 둑이 무너지는 장면만 보면 거대한 재난이지만, 시작은 대개 손가락 하나 들어갈까 말까 한 작은 구멍이라는 것이다. 그 구멍이 제때 메워지지 않으면 물은 그 틈을 찾아내고, 끝내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 작은 위험을 가볍게 보지 말라는 오래된 경고다.

나는 과거 '법대에서' 지면에 배달 오토바이의 무질서를 '깨진 유리창 이론'에 빗댄 글을 쓴 적이 있다. 자녀와 함께 길을 가다 오토바이들의 신호위반, 역주행, 인도 주행을 목격하고, 그것이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 '사회란 원래 이렇게 아무렇게나 굴러가는 곳'이라는 인상을 줄까 두렵다는 내용이었다. 다들 '공감한다'라는 반응들이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로만 알았다. 기고 보러가기

그러나 요즘 거리에서 느끼는 체감은 오히려 반대다. 기초질서의 회복을 말하는 정치적 구호는 여러 차례 있었고, 하천·계곡 불법시설물 정비처럼 무질서를 단호하게 바로잡은 행정가가 지금은 대통령이 됐다. 그럼에도 '비열한 거리'의 무질서는 여전하다. 배달 오토바이에게 빨간불은 '콜'이 아직 없을 때만 지키는 참고사항에 불과하다. 횡단보도는 유턴이나 좌회전을 쉽게 할 수 있게 해주는 징검다리로 쓰이고, 인도는 '픽업 전용차로'가 된 지 오래다.

모든 배달노동자를 싸잡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생계를 위해 밤늦게까지 달리고, 누군가는 정직하게 신호를 지키며 일한다. 문제는 그 정직한 사람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점이다. 교통법규를 무시해가면서라도 더 빨리, 더 많이 배달할수록 돈이 되고, 늦으면 항의를 받는다. 그 압박 속에서 일부는 '남들도 다 하는데'라는 마음으로 신호위반, 인도주행, 중앙선 침범을 감행하고야 만다.

한국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 공익제보단에는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이륜차 법규위반 제보가 113만 건 넘게 접수됐다. 최근 경찰청이 보도 통행 단속장비를 시범 운영했더니 울산 병영사거리 한 곳에서 한 달 동안 457건, 서울 영등포시장에서도 415건의 이륜차 인도 주행이 적발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배달 오토바이의 법규위반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내가 유독 예민한 건가 싶다가도, 저런 숫자들은 거리의 불안이 개인적인 신경질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경찰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오토바이는 골목길로 빠지기 쉽고, 무리하게 추격하면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번호판은 뒤에만 붙어 있어 일반 단속 장비로는 한계가 있기도 하다. 시민이 직접 신고하려 해도, 순식간에 지나가는 위반 장면을 촬영하고, 번호판을 확인해서, 안전신문고 앱에 올리기까지는 결코 간단치 않다.

그 공백을 파고든 것이 '딸배헌터' 등의 유튜버들이 만드는 사적 감시·신고 콘텐츠다. 법규 위반 오토바이를 추적해 신고하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올린다. 시청자들은 "속이 시원하다"라고 환호한다. 나 역시 '응징물'에 마음을 주는 이들의 심정을 완전히 모르지 않는다. 법이 제때 작동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법 바깥의 응징을 구경하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이 건강한 사회의 모습일 리 없다.

천 길 둑의 작은 구멍도 "별일 있겠어"라고 방치하다 결국 흙탕물이 온 고장을 삼키게 된다. 인도를 달리는 배달 오토바이 한 대,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위협하는 경적 한 번, 빨간불을 무시하고 지나가버리는 장면 하나하나가 어쩌면 사소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매일 반복된다면 시민들은 어느 순간 법을 지키는 쪽이 오히려 어리석다고 느끼게 된다. 둑이 무너진 뒤 수습하는 것보다, 지금 그 작은 틈을 막는 일이 훨씬 쉽고, 훨씬 정의롭다.

차기현 판사(광주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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