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부터 트럼프까지... 미국과 거래로 국력 키워온 중국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6. 5. 16. 01: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래픽=이철원

“양국 정상이 미중 관계의 새로운 기조로서 ‘건설적이고 전략적이며 안정적인 미중 관계’ 구축에 동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 마지막 날인 15일 중국 외교부는 성명에서 이렇게 발표했다. 트럼프의 관심사인 이란 전쟁 등은 언급하지 않은 채 미중 충돌 방지가 핵심인 새로운 관계 기조에 양국이 합의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번 트럼프 방중을 통해 중국은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자국의 모습을 부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미국의 비위를 맞추던 반세기를 청산하고 미국과 규칙을 놓고 흥정하는 상대로 올라서고자 한다”고 했다.

이런 모습은 지난 54년간 중국이 미중 정상외교를 통해 국력을 키우고 전략적 목표를 이뤄 온 과정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 최초였던 1972년 리처드 닉슨의 방중 당시 중국은 냉전 구도를 이용해 국제 고립을 돌파했다.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에 손을 내밀자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국제 질서에 밀어 넣었다. 그해 발표한 상하이 코뮈니케(공동성명)에 ‘미국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입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이다.

이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방중은 1979년 미·중 수교로 이어졌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중국과 실용적 협력 노선을 택했다. 중국은 이 틈을 이용해 개혁개방에 속도를 냈다. 1989년에는 조지 HW 부시 대통령 방중에 이어 천안문 사태가 일어났다. 이는 미국과의 관계는 유지하지만 체제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메시지로 해석됐다.

1990~2000년대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과 세계 경제 편입이 정치 변화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중국은 체제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시장·자본·기술을 흡수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의 부상을 상징했고, 같은 해 글로벌 금융 위기로 미국식 시장경제 모델이 휘청이는 사이 중국은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방중한 2014년 중국은 기후변화와 이란 핵 문제 등과 관련해 미국이 협조를 구할 상대로 올라섰다. 동시에 중국은 남중국해·대만 등 ‘핵심 이익’을 외교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2017년 트럼프의 첫 방중 이후 미·중 무역 전쟁이 시작됐지만, 중국은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자생력을 키우며 미국과 패권을 다투게 됐다. 중국에선 자국의 부상을 앞당겼다는 의미에서 트럼프를 ‘촨젠궈(나라를 일으키는 트씨) 동지’라고 부른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