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 바다가 벌써 그리워요” 외국인 관광객 ‘부산병’ 앓아

부산/이옥진 기자 2026. 5. 16. 00: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주말]
한 번 오면 또 찾는다
MZ 외국인들 ‘부산앓이’

“부산병(釜山病)을 앓고 있어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인데, 이달 말 또 부산에 갑니다.” “부산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났습니다. 벌써 ‘부산앓이(釜山ロス)’입니다. 또 가고 싶어요!”

최근 대만·일본 등 아시아권 여행자들의 소셜미디어에 낯선 이름의 ‘병’이 등장했다. 부산을 다녀온 뒤 부산을 다시 찾고 싶어 하는 상태를 뜻하는 ‘부산병’이다. 한때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은 곧 서울이었다. 외국 관광객 사이에서 서울 여행의 여운을 뜻하는 ‘서울병’이라는 표현이 유행했는데 이제 부산이 새로운 그리움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지난 11일 부산역 광장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모여 있다. 올해 1분기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02만3946명으로, 관련 집계가 시작된 이래 최단 기간 100만명을 돌파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골목마다 외국어가 들렸다

12일 낮 부산역 광장에서는 한국어와 중국어·영어·일본어가 뒤섞여 들렸다. 역사 안 편의점과 카페도, 택시 승강장도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이날 오후 찾은 감천문화마을. 역시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좁은 골목 곳곳에서는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기념품 가게에는 영어·중국어·일본어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중국 상하이에서 5박6일 일정으로 함께 부산을 찾은 요이(23)씨와 란(23)씨는 전날 광안리를 다녀왔다고 했다. 요이씨는 “바다가 정말 아름다웠다”며 “길에서 화장실을 찾고 있었는데 부산 사람들이 직접 알려주고 도와줬다. 사람들의 친절함도 부산의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란씨는 “샤오훙슈(중국 SNS)에 ‘부산병’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왜 그런지 알게 됐다”고 했다.

이곳에서 관광 안내 봉사를 하는 정모(60)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부산에 크루즈가 하루 한 척 정도 들어왔는데, 올해는 네 척씩 들어오는 날도 있다”며 “최근엔 서양 관광객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은 바다와 산, 온천을 함께 갖춘 도시라는 점이 외국인에게 매력적인 것 같다”며 “관광객이 많이 늘면서 가이드와 관광버스, 택시까지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택시 기사 임모씨는 “어떤 날은 승객의 80% 이상이 외국인”이라며 “부산에 이렇게 외국인이 많았던 적이 있었나 싶다”고 했다.

국제시장·BIFF광장·서면역 일대도 상황은 비슷했다. 골목 곳곳에서 호떡이나 어묵을 손에 든 외국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었고, 화장품 매장 직원은 영어와 중국어를 번갈아 쓰며 손님을 맞았다. BIFF광장에서 양손에 쇼핑백을 든 홍콩 출신 케이시(22)씨는 “부산은 물가가 비교적 저렴하고, K뷰티 제품을 다양하게 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씨앗호떡을 파는 한 상인은 “탕빙 하오츠(糖餠好吃·호떡 맛있다)”를 외치며 손님을 불러모았다. 열댓 명이 줄을 섰는데, 모두 외국인이었다. 그는 “손님의 95%가 외국인으로, 중국·대만·일본 관광객이 특히 많다”며 “최근 6~7개월 사이 외국인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서면역 인근에서 만난 부산 토박이 김모(40)씨는 “작년만 해도 서면지하상가에서 외국인이 잘 안 보였는데 지금은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라고 했다. 10년 만에 부산을 다시 찾았다는 프랑스인 바네사(38)씨는 “예전보다 관광객이 훨씬 많아진 것 같다”며 “부산은 서울보다 현지 사람들의 삶이 더 잘 보이는 도시 같아 좋다”고 했다.

12일 부산 감천문화마을에서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골목을 걷고 있는 모습. /이옥진 기자

◇“여유로운 분위기가 좋아요”

부산의 인기는 실제 통계로도 확인된다. 부산시·부산관광공사 등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364만3439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적별로는 대만이 68만7832명(18.9%)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중국(56만915명·15.4%), 일본(54만2398명·14.9%), 미국(24만8529명·6.8%), 필리핀(17만6668명·4.8%), 베트남(15만6656명·4.3%) 순이었다. 이들이 부산에서 쓴 돈은 1조531억원에 달했다. 쇼핑(51.9%) 비율이 가장 높았고, 식음료·여가·숙박 등이 뒤를 이었다.

부산을 향한 외국인들의 발길은 올해 들어 한층 빨라졌다. 1~3월 부산을 찾은 외국인은 102만3946명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최단 기간에 100만명을 돌파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45% 늘어난 수치다. 대만 여행 플랫폼 Kkday의 ‘2025년 대만 여행객 여행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부산은 대만인 선호 해외 여행지 종합 순위에서 오사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특히 3일 이하 단기 여행지 부문에서는 1위였다. 익스피디아 재팬은 작년 연말과 지난 일본 골든위크(4월 29일~5월 6일) 때 ‘가성비 해외 여행지’ 1위로 부산을 꼽았고, 싱가포르 기반 여행 미디어 트립질라는 부산을 2025년 ‘최고의 도시 관광 목적지’로 선정했다.

왜 외국인 관광객들은 부산에 끌리는 걸까. 2024년 첫 방문 이후 네 차례 부산을 찾았다는 대만인 애플 리우(26)씨는 “(부산) 바닷가에 앉아 멍하니 있기만 해도 행복해지고, 분위기가 여유로워서 좋다”며 “서울도 가봤지만 서울보다 부산이 훨씬 좋다”고 했다. 그는 조만간 또 부산을 찾을 예정이다. 클로이 첸(29)씨는 “부산은 바다와 도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곳이라 좋다”며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에 계속 다시 가고 싶어진다”고 했다.

최근 젊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부산은 서울과는 결이 다른 도시로 인식되고 있다. 밀도 높은 대도시인 서울과 달리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라는 것이다. ‘한국적이지만 덜 피곤한 도시’라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도심 바로 옆에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는 점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해운대와 광안리, 감천문화마을, 청사포 스카이캡슐처럼 이른바 ‘인스타그래머블한(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장소가 많다는 점도 젊은 층의 취향과 맞아떨어진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여행 비용도 장점으로 꼽힌다. 대만 여행 커뮤니티에는 “부산에서 일주일을 머물러도 항공권과 숙박, 식비를 합쳐 1만5000대만달러(약 71만원) 정도면 충분하다”는 후기가 올라온다. 돼지국밥과 밀면, 시장 음식 등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로컬 먹거리도 풍부하다.

접근성도 한몫한다. 대만과 일본 일부 지역에서는 2시간 안팎의 직항편으로 김해공항에 도착할 수 있고, 2박 3일 일정으로도 여러 관광지를 효율적으로 둘러볼 수 있다. KTX 등 국내 교통망이 편리한 것도 장점이다. 1분기 부산 방문 외국인 중 43.5%가 인천공항 등 다른 지역으로 입국한 뒤 부산을 찾은 관광객이었다.

부산시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부산시는 ‘외국인 관광객 연간 500만명 시대’를 연다는 목표다. 특히 다음 달 열리는 BTS의 부산 공연이 글로벌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부산은 바다와 산, 역사와 이야기를 함께 가진 도시”라며 “피란 시절 형성된 음식 문화까지 더해지면서 부산만의 독특한 콘텐츠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또 이 교수는 “(2020년) 국제관광도시 지정 이후 관광 콘텐츠가 정비되고, 교통 접근성도 좋아지면서 부산의 매력이 더 잘 드러나기 시작했다”며 “K컬처 열풍과 맞물려 세계 젊은 층에게 ‘힙한 도시’로 인식되고 있다”고 했다.

중국판 인스타그램인 샤오훙슈에 ‘부산병(釜山病)’을 검색하자 나온 게시물들. /샤오훙슈 캡처

◇‘좋았다’ 아닌 ‘앓고 있다’

이처럼 부산이 새로움과 가성비·효율성 등을 무기로 급부상하면서, 젊은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부산병 환자’라고 칭하며 도시 경험 자체를 하나의 밈(meme)으로 소비하는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는 여행을 다녀온 뒤의 강한 여운이나 재방문 욕구를 ‘○○병’ ‘○○앓이’ 같은 표현으로 풀어내는 경우가 잦다. 지난해 중국인 젊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유행한 ‘서울병’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밈의 확산을 젊은 세대의 감정 표현 방식과 변화된 여행 소비 문화의 산물로 해석한다. 과거 여행이 관광지를 둘러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최근에는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과 여운을 여행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좋았다’ ‘추천한다’는 평가 대신 ‘앓고 있다’ ‘병에 걸렸다’는 과장된 언어를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스로를 ‘환자’라고 부르는 행위는 해당 장소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낸다. 단순히 부산을 좋아한다는 수준을 넘어, 부산의 공기와 분위기에 심리적으로 오래 붙들려 있다는 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셈이다. 소셜미디어에서 ‘부산병’은 하나의 놀이이자 연대 방식으로 작동한다. 누군가 ‘부산앓이’ 중이라는 게시물을 올리면,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댓글과 공유로 반응하며 공감대가 형성되는 식이다.

이훈 교수는 “MTE(Memorable Tourism Experience·기억에 남는 관광 경험)를 선호하는 최근의 추세가 반영된 것”이라며 “여행자가 도시에 오래 머물면서 그 매력을 깊이 체감할 수 있도록 관광 콘텐츠의 질적 혁신이 뒷받침돼야 이 열기를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