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권력 바꾼 태평양전쟁, 항공모함의 시대 열었다

2026. 5. 16.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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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의 해양시대
영화 ‘진주만’에서 일본의 공격으로 불타는 미군 군함. [중앙포토]
태평양에서 벌어진 미국과 일본의 전쟁은 바다 권력이 바뀌는 전쟁 혁명이었다. 수백 년 동안 바다의 왕으로 군림하던 거대한 전함의 시대가 가고, 항공모함이 새로운 바다의 지배자로 나타난 것이다. 그 전환점이 진주만 공격과 미드웨이 해전이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국력의 상징은 강력한 함포를 가진 거대한 전함이었다. 1906년 취역한 영국 해군의 거대 전함 ‘HMS 드레드노트(dreadnought)’는 이전의 전함들을 모두 구식으로 만들었다. ‘두려울 것이 없다(dread nought)’는 의미의 이 전함은 강대국들을 크고 강한 전함 건조 경쟁에 뛰어들게 했고 일본 역시 초거대 전함 건조에 국가 역량을 집중했다.

전함 경쟁의 정점이 1941년에 취역한 일본 야마토함이다. 승조원 2800명, 배수량 7만2809t, 길이 263m, 최대폭 38.9m, 주포 460㎜ 3연장포 9문을 장착한 당대 최대, 최강의 전함이다. 일본은 이 전함이 미국과의 결정적 전투에서 미국 함대를 격파하고 태평양을 지배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시대는 이미 변하고 있었다. 태평양은 전함이 지배하는 바다에서 항공모함이 지배하는 바다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변화를 알린 게 하와이 진주만 공격이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역대 최장거리 기습작전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41년 12월 7일 새벽, 일본 항공모함 함재기들이 진주만에 있는 미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격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미국 전함들이 불타고 침몰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스스로 전함 시대의 종말을 증명한 것이다.

승조원 1708명 ‘가가’ 당시 최대 항공모함
당시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었다. 미국이 일본의 중국 침략과 동남아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석유 금수와 경제제재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일본은 석유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했기 때문에 국가적 위기에 처했다. 일본의 선택은 미국 태평양 함대를 먼저 무너뜨리고, 동남아 자원을 확보한 뒤 협상으로 전쟁을 끝내는 구상이었다. 일본은 말레이시아·필리핀·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자원을 점령하는데 미국 함대가 방해하지 못하도록 진주만 선제 타격을 결정한 것이다.

공습의 주력은 최대 항모 가가(加賀)와 5척의 항모로 구성된 함대였다. 가가는 일본 해군의 전략 변화를 상징하는 군함이었다. 원래는 거대한 전함으로 건조되고 있었지만, 1922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운명이 바뀌었다. 전함 건조 경쟁을 제한한 이 조약으로 강대국들은 대규모 전함 건조를 중단해야 했고, 일본 역시 건조 중이던 전함과 군함 일부를 포기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하던 군함에 주목하고 당시 최대 수준의 전함 선체로 만들어지던 가가를 항공모함으로 개조한 것이다. 새롭게 부상하던 항공전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가가는 승조원 1708명, 3만8813t, 길이 247.65m, 폭 32.5m, 항공기 최대 탑재 103대, 속력은 28.3노트 등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최대 항공모함으로 탄생했다. 1930년대 일본은 가가 등 항모를 활용한 대규모 공습 작전을 수행하는 전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인 원정 작전이었다. 일본의 가가 등 총 6척의 항모 기동부대는 하와이까지 은밀히 접근하여 함재기들을 출격시켰다. 거대한 전함들이 항구 안에서 폭발하는 순간 세계는 충격을 받았다. 바다의 지배자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항모 운용 능력을 증명해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원래 전함으로 태어나려 했던 가가 항모가 이제 전함 시대를 끝내는 선봉장이 된 셈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전략에는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 첫 번째는 미국 항공모함을 놓친 것이다. 공격 당시 미국 항공모함들은 항구에 없었다. USS 엔터프라이즈와 USS 렉싱턴 등 핵심 항공모함은 바다에 나가 있었다. 전함은 파괴됐지만, 미래 해전의 핵심인 항공모함은 살아있었다. 불과 반년 뒤 미드웨이 해전에서 바로 그 미국 항공모함들이 일본 항모기동부대를 격파하게 된다.

두 번째는 석유 저장시설과 군수 시설을 공격하지 않은 것이었다. 일본은 전함 공격에는 성공했지만, 핵심 군수 시설을 완전히 파괴하지 못했다. 특히 대규모 석유 저장시설과 잠수함 기지, 함정 수리 시설이 살아남아 있었다. 만약 일본이 이 시설들까지 완전히 파괴했다면 미국 태평양 함대의 회복은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일본은 추가 공격 대신 이른 철수를 선택했다. 덕분에 미국은 다시 태평양 작전의 핵심 기능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었다.

세 번째는 미국의 산업력에 대한 과소평가다. 미국은 압도적인 조선·철강·자동차 산업을 바탕으로 엄청난 속도로 군함과 항공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일본이 몇 년 동안 건조한 항공모함 숫자를 미국은 단기간에 뛰어넘기 시작했다.

일본은 근본적으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미국과의 국력 차이를 알면서도 전쟁을 시작했다. 당시 미국의 경제력과 산업력은 일본을 압도했다. 일본 내부에서도 장기전이 되면 승산이 없다는 경고가 있었다. 실제로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조차 장기전이 되면 일본이 위험해질 것을 걱정했다. 결국 현실이 되었다.

일본은 기습 충격으로 미국의 의지를 꺾고 곤란에 빠진 미국과 협상으로 얼버무리려는 안일한 판단을 했다. 그러나 진주만 공습은 미국 사회를 완전히 결집시켰다. 미국을 총력전 체제 국가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진주만 공습은 전술적으로는 성공한 작전이었지만 전략적으로는 일본 패망의 출발점이었다.

미드웨이 해전은 단순한 해전이 아니었다. 태평양전쟁의 흐름을 바꾸었고, 동시에 새로운 전쟁의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진주만 공격 이후 일본은 태평양 일대를 휩쓸며 동남아와 남태평양에 이르는 전역을 빠르게 점령했다. 세계는 일본 해군의 위력과 확장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미드웨이 해전은 그 흐름을 뒤집었다.

미드웨이 해전은 항공모함 시대를 여는 결정적 전투였다. 1942년 6월 일본은 미국 항공모함 전력을 격멸하기 위해 미드웨이를 공격했다. 일본은 여전히 자신들이 우세하다고 믿었다. 핵심 전력은 가가 등 4척의 항공모함이었다. 이들은 진주만 공습을 성공시킨 최정예 항모전단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통신을 해독한 미국 항공모함들은 매복 상태에서 일본 함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 압도적 산업능력, 태평양전쟁 승부 갈라
1942년 미드웨이서 미군의 폭격으로 불타는 일본의 항공모함 가가함. [중앙포토]
결정적 순간은 불과 몇 분이었다. 미국 급강하폭격기들이 일본 항모 상공에 도착했을 때, 일본 항모의 격납고에는 무장과 급유 중이던 항공기들이 가득했다. 폭탄 한 발이 만든 연쇄 폭발로 일본 최강 항모전단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불과 반년 전 진주만을 불태웠던 일본 최강 항모들은 미드웨이에서 불타 버렸다. 그날 일본은 항공모함 4척을 잃었다. 그리고 태평양의 주도권도 잃었다.

태평양전쟁 승패의 본질은 명확했다. 군함은 전쟁을 수행하는 무기였지만, 산업은 그 군함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힘이었다. 일본은 뛰어난 군함과 항공기, 우수한 조종사를 보유했지만 그것을 계속 생산하고 지속할 능력이 부족했다.

미국은 압도적인 산업국가였다. 당시 미국은 자동차 공장을 폭격기 생산라인으로 전환했고, 민간 조선소를 군함 생산기지로 바꾸었으며, 항공모함과 전함, 구축함을 대량 생산했다. 미국의 조선 능력은 일본의 상상을 초월했다.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일본은 군함 한 척을 잃으면 회복이 어려웠지만, 미국은 새로운 항공모함을 계속 바다로 내보냈다. 미국은 단순히 강한 군함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을 가진 나라였다.

태평양전쟁이 남긴 교훈은 바다를 지배하는 국가가 무역을 통제하고 자원을 이동시키며 군사력을 투사하고 세계 질서를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다 지배는 강력한 해군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산업역량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진형 전 해군 제독. 해사 36기로 미국 육군 화학전학교 초급장교과정과 해군전쟁대학 지휘관 과정을 마쳤다. 합참 전략기획부장, 제1함대 사령관, 청와대 국가위기관리 센터장(비서관), 구축함(문무대왕함)과 초계함(제천함) 함장을 지냈다. 전 피지 및 남태평양5개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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