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처럼 음악처럼…옛 감성, 귀를 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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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의 뮤직 SCENE] 부활한 서정 가요
‘내가 삶을 마감하려고 마음 먹은 날 이 노래가 알고리즘에 뜬 건, 나에게 아직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인 걸까?’ ‘오늘 아이를 자퇴시키고 왔어요. 학교 안 가도 아이가 살아있는 게 더 중요해서…’ ‘가자, 사랑의 시대로 가자. 혐오는 쉽고 편한 길이지만 구태여 귀찮고 번거로운 사랑의 길로 가자.’ ‘봐 다들 사랑하고 싶잖아.’ 가히 백일장, 아니, 댓글로 이어가는 ‘댓일장’이다. 아니면 어느 오래된 20세기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의 청취자 사연 엽서 더미를 뒤지는 듯하다. 이게 다 유튜브 댓글창에 쌓이고 있는 글귀다.

‘텍스트 힙’의 시대라고 했다. 좋은 시나 에세이 속 글귀를 필사하는 젊은이가 늘어난다고 했다. 기사로 봤다. 긴가민가했다. 요즘 같은 도파민 천국, 숏폼의 낙원에서…? 이런 의심을 악뮤가 지워주고 있다. 3초 만에 시선을 강탈하는 댄스 챌린지나 엄지로 호출하는 무한의 숏폼 재생만이 우리 21세기 인류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서정(敍情)과 서사(敍事)는 교과서 속 김소월의 시, 현진건의 소설 속 빛바랜 박제가 아닌 것이다.

부활한 서정 가요의 맹위에 웬만한 케이팝 그룹도 나가 떨어지는 모양새다. 악뮤, 한로로 음악의 중심엔 다정한 한글 가사가 있다. ‘잠깐 앉아요/따뜻한 스프와 고기가 있어요’로 시작해 ‘지치고 병든 나그네여/우 외톨이 나그네여’까지 이어지는 소탈한 가사는 가히 1984년 이재성의 포크송 ‘기타하나 동전한닢’을 방불케 할 정도.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은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아름다운 마음이야’라는 펀치 라인으로 문을 연 뒤 ‘흐린 날도 화창한 날도 시린 날도/끼우고 나면 다 퍼즐이 될 거야’ 등의 잠언록을 펼쳐낸다.
건국대 국문과 출신의 2000년생 싱어송라이터 한로로는 지난해 ‘자몽살구클럽’이란 앨범과 함께 같은 제목의 자작 소설까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데뷔 3년 만에 초신성으로 떠올랐다. ‘자몽살구클럽’의 이야기는 자몽이나 살구, 학교라는 배경이 주는 청량한 이미지와 다르다. 자몽과 살구를 합쳐서 줄여보면 알 수 있듯 극단적 선택이 주요 소재다. 학원물이되 마치 이와이 슌지의 암울한 영화처럼 이 시대 청소년들의 질퍽한 현실을 드러낸다.
수록곡 ‘0+0’은 ‘영생과 영면의 차이를 너는 알고 있니/멍든 발목을 꺾으려 해도/망설임 없이 태어나는 꿈’ ‘난 우리를 영영 잃지 않아’ 같은 노랫말이 감성적 선율과 맞물려 짧지 않은 여운을 만들어낸다.
화려한 퍼포먼스 없지만 긴 여운 남아
악뮤, 한로로 노래의 가운데엔 낡은 사진첩 같은 음악적 복고도 자리한다. 악뮤의 음악엔 미국의 트로트라 할 수 있는 컨트리, 아메리카나 장르의 향취가 가득하다. ‘소문의 낙원’에선 1930년대생 가수 멀 해가드, 조니 캐시의 곡에서나 듣던 몽롱한 페달 스틸 기타 소리가 찰랑이는 리듬에 얹혀 미국 시골길 위처럼 덜컹거린다. 이 미국적(또는 이국적) 편안함에 우리말 가사의 다정함이 섞여들며 내는 오묘한 맛이 일품이다. 앨범의 뒤로 갈수록 예상을 벗어나는 화성 진행이나 독특한 편곡이 끼어들면서 아웃로 컨트리(outlaw country), 얼트 컨트리(alternative country), 카우펑크(cowpunk) 같은 변형 장르의 색다른 미감까지 거침 없이 피워 올린다.
한로로의 음악에서 적잖은 이들은 20세기 모던 록을 떠올린다. 그룹 델리 스파이스의 예쁘장하고 달콤하지만 후렴구에선 격정으로 치닫는 청춘물 서정, 자우림과 김윤아가 보여준 여성 보컬의 얼터너티브 록 미감 같은 것들….
이들의 열풍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현재 같은 차트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케이팝 음악과 이루는 보색 대비에 있다. 악뮤, 한로로는 방탄소년단, 아이브, 아일릿, 코르티스, 하츠투하츠 같은 아이돌 그룹과 차트 최상위권에 섞여 포진해 있다. 이들의 음악과 노랫말 중 다수는 서정이나 서사가 해체된 찰나의 감각에 최적화돼 있다.

최근 무섭게 떠오른 신예 그룹이자 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뮤직의 막내인 코르티스의 ‘YOUNGCREATOR CREW’에서 텍스트 중심의 고전적 맥락을 찾기는 쉽지 않다.
‘너무 웃거버려서 난 영ㅋㅋ/영ㅎㅎ/영ㅎㅎ/요를레이히 말고 영크크’
여기서 ‘영크크’는 자신들을 의미하는 ‘영 크리에이티브 크루’의 준말인데 ‘크크’를 웃음소리 ‘ㅋㅋ’로 풀고 ‘ㅎㅎ’까지 더한 뒤 ‘요를레이히’와 대비시켜 감각의 탑을 쌓는다. 서사의 조탁 보다는 즉흥적 토로의 산물. 그런데 이게 SNS상에서 ‘바이럴’되면서 코르티스를 ‘감다살(감이 좋다는 뜻의 속어)’ 최고봉으로 회자되게 했다. 이 미학을 이해 못하면 ‘올크크’(올드 크리에이티브 크루, 즉 올드한 사람)로 치부될 수 있다.
미분된 감각의 축제, 해체된 맥락의 전시는 최근 다른 케이팝의 가사와 키워드에도 넘실댄다. 여성 그룹 아일릿이 4월 30일 낸 앨범 제목은 ‘MAMIHLAPINATAPAI’다. 칠레 남부 선주민 야간족(Yaghan-族)의 말로 ‘서로에게 필요한 것임에도 누구도 먼저 나서지 않는 미묘한 찰나’ 또는 ‘서로 원하지만 누구도 먼저 나서지 않는 눈치싸움’을 뜻한다는 게 소속사 쪽 설명. ‘벌거벗은 세계사’에 나오는 중남미 전문가 교수님이나 알까 말까 한 얘기. 낯설디 낯선 키워드로 대중의 즉시적 공감을 차단한 뒤 새로운 세계관을 덧입힌다. 타이틀곡이자 인기 곡 ‘It’s Me’는 ‘Who’s your bias?/I’m your bias!’를 제사장의 주문처럼 미친 듯이 반복하며 신묘한 중독성을 자아낸다.
숏폼 바이럴의 선두 주자인 최예나(YENA)의 ‘캐치 캐치’는 어떤가. ‘Ca-ca-catch my heart/Baby’ ‘DA DA RA DA DA/DA DA RA DA DA/DA DA RA DA DA/Umm umm umm baby’의 반복과 중첩이 전체 가사의 90%에 육박한다.

가사, 악곡, 키워드, 소비자 수용성의 측면에서 최근의 가요 종합 차트는 이토록 양극화돼 있다. 이것은 음악 예술로 충족시키고자 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두 가지 욕망을 보여준다. 우리가 원하는 첫 번째 음악은 원초적 리듬에 기반한 감각의 청각 예술이다. 수렵 채취 시절부터 동물의 뼈와 암석을 두드려 만들던 흥의 무더기. ‘아으 다롱디리’라 눙치던, 발화되는 언어와 발성의 중간쯤 위치하는 포효와 토로. 그리고 댄스의 카타르시스. 여기서 논리나 서사는 부차적이다. 다른 하나는 ‘이야기하는 음악’이다. 중세 유럽의 음유시인(troubadour)이나 우리 판소리 창자가 노래와 함께 풍자와 뉴스와 논평을 제공하던 것과도 닿아 있다. 앞에 말했듯 라디오의 청취자 사연 공유와도 맥이 통한다.
그리하여 한국에는 케이팝만 있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내는 음악 산업 백서를 보면 매년 한국인이 사랑하는 장르 부동의 1위는 발라드다. 반면, 10대가 즐기는 숏폼 플랫폼이나 해외 케이팝 팬들에 회자되는 장르는 단연 아이돌 댄스형 케이팝이다. 어찌 보면 기암절벽과 잔잔한 바다를 억지로 콜라주한 사진처럼 기괴한 현재 가요 차트의 모양새는 되레 이 차트가 이제야 균형을 찾고 있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더 중요하고 재미난 지점이 있다. 국적 불명의 언어와 아름답고 창의적인 파괴가 넘쳐나는 케이팝 노래가 수백, 수천 곡이듯 악뮤, 한로로 같은 서정 가요를 구사하는 이들 역시 현재 수백, 수천으로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악뮤, 한로로를 반복해 들을 시간에 그 신세계를 찾아 더듬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탐험 길이 되겠다. 각종 인디 차트, 또는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작 리스트를 출발점으로 삼아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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