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도 양극화…서울 아파트 감정가 147%에 낙찰, 빌라는 13%에 팔려

배현정 2026. 5. 1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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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 부동산 경매 시장
고금리와 경기 침체의 늪, 경매 시장에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올해 1분기 신규 경매 신청 건수는 1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며 시장의 위기를 여실히 드러냈다. 하지만 시장의 소화력은 역부족이다. 전국 경매 낙찰률이 지난 1분기 23.2%까지 추락한 가운데, 시장은 극심한 ‘양극화’ 양상을 띠고 있다. 빌라와 상가 등 비아파트 매물은 유찰을 거듭하며 감정가를 밑도는 ‘헐값 낙찰’이 속출하고 있으나, 서울 아파트는 고가 낙찰 행진을 이어가는 대조적 행보를 보인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남부지방법원 본관 경매 법정. 입찰 시작 전부터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지만 법정 안 분위기는 의외로 한산했다. 좌석 곳곳에 앉은 60여 명이 서류를 넘기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볼 뿐, 긴장감 어린 경쟁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법정 입구에서 만난 대출상담사 A씨는 “오늘만 110건, 모레는 368건이나 물건이 나오는데도 분위기가 썰렁하다”며 “대출이 막히다 보니 실제 낙찰까지 이어지는 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매에 나온 물건은 총 110건이었다. 이 가운데 새 주인을 찾은 건 19건에 그쳤고, 나머지는 모두 유찰됐다. 상당수 물건은 단독 응찰에 그쳤고, 최저매각가격 수준에서 낙찰됐다. 경매 물건은 넘치는데, 시장은 더는 싸다는 이유만으로 움직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경매 시장 전체가 얼어붙은 것은 아니다. 서울 아파트만큼은 다른 흐름을 보인다.

경매 법원 가보니 110건 중 91건 유찰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이 발표한 ‘2026년 4월 경매동향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100.5%를 기록하며 전월(99.3%)보다 1.2%포인트 상승했다. 3개월 만에 하락세를 멈추고 다시 100% 선을 회복한 것이다. 지역별로는 강동구가 105.5%로 전월 대비 9.9%포인트, 구로구는 99.6%로 7.2%포인트 각각 상승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서울 핵심지와 중저가 아파트에는 실수요와 투자 수요가 동시에 몰리고 있다. 지난달 낙찰가율 1위인 송파구 거여동 거여5단지 전용 60㎡는 감정가(8억3100만원)의 147%인 12억2150만원에 낙찰됐고, 응찰자만 33명이 몰렸다. 송파구 오금동 송파두산위브 전용 85㎡는 27명이 입찰해 감정가보다 약 2억5000만원 높은 13억9012만원에 낙찰됐다.

실제 법정에서도 서울 아파트를 중심으로 실수요가 유입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12일 서울남부지법 경매 법정에서는 신건인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1가 ‘여의도씨티아이(12.89㎡)’는 감정가와 같은 1억3500만원에 낙찰됐다. 2회 유찰됐던 서울 구로구 궁동 ‘대명하이빌(85㎡)’은 감정가(4억6700만원)의 80% 수준인 3억7399만원에 낙찰됐으며, 이날 최고 경쟁률인 3대 1을 기록했다. 3회 유찰된 서울 강서구 방화동 ‘에어팰리스(14.1㎡)’은 대항력 임차인이 있는 조건에도 감정가(9800만원)의 105%인 1억275만원에 낙찰됐다.

업계에서는 경매 시장이 규제의 우회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15억원 이하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이 최대 6억원까지 가능해 자금 조달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또 일반 매매와 달리 경매는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서도 실거주 의무나 자금출처 소명 규제 등 제약이 제한적이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15억원 이하 아파트를 중심으로 낙찰가율이 반등했고, 강남 등 핵심 입지도 과열 수준은 아니지만 현금 여력이 있는 수요층의 관심이 여전히 높다”고 말했다.

반면 경매 시장 전반의 분위기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법원 경매정보 통계와 법무법인 명도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법원에 신규로 경매를 신청한 물건 수는 총 3만541건으로 집계됐다. 2013년 1분기(3만939건) 이후 같은 분기 기준 13년 만의 최대치다. 코로나19 이후 이어진 경기 침체와 2021년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고금리 충격이 누적되면서 잠재 부실이 경매시장으로 표면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낙찰 통계상으로도 경매 시장의 열기는 한풀 꺾였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 경매 물건의 낙찰률은 23.2%로 집계됐다. 2021년 1분기(42.9%)와 비교하면 사실상 반토막 난 수준이다. 낙찰률은 전체 입찰 물건 가운데 실제 낙찰자가 결정된 비율을 뜻한다. 낙찰률이 23.2%라는 것은 경매에 나온 물건 10건 중 약 2~3건만 새 주인을 찾았다는 의미다.

특히 직격탄을 맞은 곳은 빌라 등 비아파트 시장이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4월 주거시설 경매 진행 건수는 1만2426건으로 19년 4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빌라 등 비아파트 물건이 8973건으로 전체의 72.2%를 차지했다.

전문가는 최근 빌라 경매 급증 배경으로 전세 사기 후폭풍을 꼽는다. 이현정 즐거운경매 대표는 “서울 빌라 경매 물량은 20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며 “전세 사기 관련 물건이 3년째 쏟아지고 있는데 올해가 특히 많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고 퇴거한 뒤 경매를 통해 정리되는 과정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빌라 시장에서는 여러 차례 유찰 끝에 가격이 크게 낮아진 물건에만 수요가 몰리는 모습이다. 12일 남부지방법원 경매법정에서는 서울 금천구 시흥동 ‘M빌라(전용 29.88㎡)’ 물건이 9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2억2500만원)의 13% 수준인 3089만원에 단독 낙찰됐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 ‘H빌라(전용 60.24㎡)’ 물건은 2차례 유찰 후 2억888만원에 낙찰됐으며, 이날 가장 많은 3명이 입찰에 참여했다.

“1층 상가 경매 이렇게 많은 건 처음”
이날 남부지법에서 만난 70대 여성 B씨는 “재개발 이주를 앞두고 10여 년 만에 다시 경매 법정을 찾았다”며 “요즘은 여러 번 유찰돼 가격이 많이 내려간 빌라를 중심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상업·업무용 부동산 경매 시장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 장기화에 코로나19 이후 소비 패턴이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상가 공실이 늘고 임대 수익성은 악화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국 상업·업무시설 경매 진행 건수는 7만92건으로 전년(4만9060건)보다 43% 급증했다. 올해 4월에도 8189건을 기록하며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월 기준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낙찰률 역시 10~20%대에 머물며 유찰이 누적되는 상황이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실제 임차인이 직접 경매에 뛰어드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 화곡동에서 음악실을 운영하는 20대 후반 A씨는 최근 자신이 임차한 상가가 경매에 넘어간다는 법원 통보를 받았다. 상가 소유주가 금융권 대출을 상환하지 못한 탓이다. A씨는 “방음 공사와 인테리어 비용이 많이 들어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며 “결국 가게를 지키기 위해 직접 경매 입찰에 참여하러 왔다”고 말했다.

김종율 보보스부동산연구소 대표는 “20년 투자하면서 1층 상가 경매 물건이 이렇게 많이 나온 적이 처음”이라며 “월세를 받아도 은행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물건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고금리가 길어지면서 상가·꼬마빌딩 시장은 사실상 퇴로 없는 상황이 많아졌다”며 “예전 가격만 보고 단순히 ‘싸다’고 접근하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배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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