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탓에 주가 하락? 블룸버그 보도보다 문제적인 '따옴표 저널리즘'
정치적 공방으로 번진 김용범 정책실장의 페이스북 글
블룸버그 '코스피 술렁' 기사에 단순 받아쓰기 수십 건
AI 시대 발생할 수 있는 초과이윤, 사회적 고민 사라져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국민배당금' 게시글의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김 실장의 글을 주가 하락의 원인으로 분석한 블룸버그 기사부터 이를 그대로 받아쓰기한 국내 언론 기사들까지. 무분별한 '따옴표 기사'들이 쏟아지는 사이 인공지능 시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초과이윤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에 대한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렸다.
5648자 달하는 김 실장 글, '기술독점경제' 구조가 핵심
김용범 실장은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차원이 다른 나라: AI 시대 한국의 장기 전략>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한국이 경기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경기순환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속적 초과이윤이 발생하는 '기술독점경제'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의 글이었다.
김 실장의 글은 총 5648자(공백제외)로 원고자 200자 기준 43.5매에 달한다. 문제가 된 '국민배당금'은 전체 글의 약 4분의 3 지점에서 나온다. 한국이 실제 '기술독점경제' 구조로 재편이 이뤄져 막대한 초과이윤이 쌓인다면,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K자 격차'(계층 간, 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상)를 완화하는 데 쓸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지금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단순한 국가 재무건전성만이 아니다. AI 시대의 초과이윤이 사회 내부의 K자 격차를 구조적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초과이익의 일부를 현세대의 사회 안정성과 전환 비용 완화에 사용하는 것 역시 단순한 분배가 아니라 체제 유지 비용의 성격을 갖는다.
여러 참고모델이 있다. 노르웨이는 1990년대 석유 수익을 국부펀드에 적립하고, 그 운용 수익을 재정 원칙에 따라 사회 전체에 환원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자원 호황을 일시적 횡재로 소비하지 않고 장기적 사회 자산으로 전환한 것이다. 한국이 처한 상황은 성격이 다르지만 질문은 같다. 구조적 초과이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제도화할 것인가. 이 글에서는 그 원칙에 가칭 '국민배당금'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 (김용범 실장 페이스북)

김 실장의 '국민배당금'은 구조적 초과이윤을 사회적으로 제도화하는 방법 중 하나로 규정된다. 이 부분이 특정 기업의 이익을 정부가 강제로 환수할 수 있다는 것처럼 비춰져 논란이 커졌다. 다만 김 실장은 글에서 '초과세수'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언급해 놓았다.
“AI 인프라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위치가 구조적 호황을 만들고, 그것이 역대급 초과세수로 이어진다면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당 고민해야 할 설계의 문제다. (중략)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프로그램의 형태를 둘러싼 논쟁은 앞의 논지를 수긍한 다음에야 의미가 있다. 논지를 건너뛴 채 개별 프로그램만을 두고 논쟁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 초과세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국민배당금은 허황된 이야기다. 그러나 논지가 맞다면, 아무 원칙 없이 그 초과이익의 과실을 흘려보내는 것이야말로 더 무책임한 선택일 수 있다.” (김용범 실장 페이스북)
'국민배당' 주장 때문에 코스피 하락? 블룸버그 맞나
김 실장이 페이스북 글을 올린 건 지난 11일 오후 10시8분. 관련 보도는 다음날(12일) 오전 7시 무렵부터 쏟아졌다. <김용범 “AI 시대 과실, 전국민에 구조적으로 돌아가야”>(5월12일 한국경제 오전 7시39분), <김용범 “AI 초과이익, 국민배당금 원칙 논의해야”…“韓, 기술독점경제로”>(5월12일 아시아경제 오전 7시39분), <'국민배당금' 띄운 김용범 靑 정책실장 “반도체 호황, 구조적 초과이윤 부를 수도”>(2026년 5월12일 한국일보 오전 8시17분) 등이다.

지난 12일 코스피는 오전 9시 개장과 함께 7900선을 돌파한 뒤 오전 10시 무렵 등락을 거듭하다 하락세로 전환됐다. 10시30분 무렵 7500선, 10시40분 무렵엔 7400선까지 떨어졌다. 10시 50분, 블룸버그 통신이 <인공지능 이익을 활용한 국민 배당 구상으로 술렁인 한국 증시>(Korea Roils Market by Floating 'Citizen Dividend' From AI gains) 기사를 보도한 건 코스피가 저점을 찍은 뒤 7600선까지 회복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블룸버그 기사가 나온 뒤 코스피는 다시 7500선으로 후퇴했고 이날 종가는 7643에서 마무리됐다.
블룸버그는 해당 기사에서 “한국의 한 고위 정책권자가 AI 산업에서 발생한 세수를 활용해 국민에게 배당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 기사 본문에는 김 실장이 '세수'를 활용한다는 문구가 있으나 기사의 제목이 '이윤'(AI gains)으로 잡히면서 독자들이 오해할 수 있게 프레임이 잡혔다. 블룸버그는 이후 제목을 '인공지능 세금'(AI Tax)로 바꿨다가 현재는 '세금'(Tax)을 뺀 상태다.
블룸버그의 분석에 대해선 여러 이견이 나온다. 김 실장의 페이스북 글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초과이윤'의 대상이 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도가 쏟아진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무렵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국의 증시도 동시다발적으로 급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이 내놓은 종전안에 대해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전쟁이 다시 강경 기조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가 급락에 더 크게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원장 경제학전 대표는 지난 14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블룸버그 분석이 맞으려면 김용범 실장의 제안 때문에 일본 닛케이, 대만 가권, 싱가포르 STI 지수도 떨어진다는 말이 된다”며 “그때 당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합의안에 대해 쓰레기고, 재고해볼 여지가 없다는 식으로 말해서 강경 기조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그 시점에 우리 증시가 열렸고 개인들이 밀어 올린 걸 외국인들이 팔고 나간 거다. 전쟁 이슈가 분명한데 이렇게 논쟁이 됐다”고 말했다.
블룸버그가 기사를 낼 시점엔 이미 저점을 통과한 뒤 반등 추세에 있었다. 청와대가 김용범 실장의 페이스북 글은 개인 의견이라며 진화에 나선 게 오후 5시 무렵인데,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민배당금' 제도를 우려해서 매도를 쏟아낸 거라면 우려가 해소되기 전에 반등을 한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조금 더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판단이 합리적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방송에서 “블룸버그 기사를 보니 내용에는 '세수'라고 돼 있는데 제목이 그렇게 (이윤으로) 뽑히다 보니 일종의 오보 같은 분석이 된 측면이 있다”며 “보통 펀드매니저들이 동아시아나 한국 등 특정 지역에 포션을 가진다. 예를 들어 (한국) 5% 정해놓고 포트폴리오를 짜는데 코스피가 올라가면 그 포션을 넘어서기 때문에 청산을 한다. 리밸런싱(재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청산을 하는데 (코스피 하락엔) 그런 효과도 겹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따옴표 저널리즘'으로 사라진 미래 세대 어젠다
김 실장의 글과 블룸버그의 기사를 정치적 공방으로 키운 건 언론의 '따옴표 저널리즘'이다. <블룸버그 “코스피 급락, 김용범 '국민배당금' 발언 때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블룸버그 보도 직후 일제히 쏟아졌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김용범'과 '블룸버그'를 교집합 키워드로 한 기사는 121건 나왔다. 대부분 블룸버그 보도에 대한 평가 없이 외신의 분석을 단순 인용하는 기사였다.

국민의힘은 '사회주의식 주장', '공산주의적 발상' 등의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김 실장이 청와대 고위 관료라는 직함에 맞지 않게 오해를 살 수 있는 표현을 개인 SNS에 썼다는 지적은 가능하다. 그러나 '초과세수'를 기반으로 한다는 걸 명시했기 때문에 “기업의 수익을 국가가 나눠준다”는 식의 주장은 정치적 공격을 위한 프레임이라는 비판이 들어가야 맞다. 하지만 <김용범 “AI로 번 돈, 국민배당하자” 野 “사회주의냐”>, <안철수 “국민배당금? 공산주의 발상…배당 받으려면 주식 사야”> 등의 기사만이 수십 건 쏟아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3일 한국경제TV의 <“베네수엘라 떠올라”…김용범 'AI 과실 배당' 논란> 기사를 엑스에 공유하며 “김용범 실장이 한 말은 'AI 부문 초과이윤으로 발생하는 국가의 초과세수를 국민배당하는 방안 검토'”라며 “이에 일부 언론이 이 발언을 편집하여 '김 실장이 기업의 초과이윤을 국민배당하는 방안 검토를 주장했다'는 음해성 가짜뉴스를 유포하자, 김 실장이 이를 부인하고 초과세수 배당 검토 주장이었다며 해명 아닌 설명을 친절하게 하였고 관련 보도까지 났음에도 여전히 이런 음성 보도를 하는 이유가 뭘까요”라고 했다. 이 대통령 글의 제목은 <여론조작용 가짜뉴스 안됩니다>이다.


이 대통령이 엑스 글을 올린 뒤 한국경제TV는 기사를 삭제했다. “베네수엘라 떠올라”라는 주장을 강조한 한국경제TV의 기사가 악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가짜뉴스'의 정의에 들어맞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언론의 무분별한 '따옴표 저널리즘'이 사안의 본질을 가리고 정치적 공방으로 문제를 키우는 건 사실이다. 김 실장이 올린 글의 취지는 '사회적으로 고민해보자'는 것인데, 무엇에 대한 고민인지도 잊은 채 김 실장이 주가를 떨어뜨렸는지 아닌지를 두고 사람들을 싸우게 만들었다.
구조적 초과이윤이 발생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건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비약적인 생산성 향상이 이뤄질 경우 노동과 소득의 개념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전부터 나오던 이야기였다. 일론 머스크가 지난 4월 인공지능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를 대처하기 위해 '보편적 고소득'(Universal High Income)을 지급해야 한다는 글을 자신의 엑스에 올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꺼냈던 '로봇세' 역시 자동화로 인한 실직자를 지원하자는 취지로 김 실장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언론이 이런 주제를 단편적으로 소비하면서 사회적으로 고민해야 할 어젠다가 수면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KBS 1분기 수신료 수입, 전년 대비 116억 증가 - 미디어오늘
- 박수현 “연내 행정통합특별법 추진” 대전충남 분위기는? - 미디어오늘
- 박수현 “특정언론 배제 유감” 충남판 언론개혁 나서나 - 미디어오늘
- 연합뉴스TV 내부 “노사 합의에도 1대 주주 눈치 살피다 시정명령 자초” - 미디어오늘
- 법원 “2인 체제 방통위 KBS 감사 임명은 적법” - 미디어오늘
- 윤석열-김건희 풍자영상 과잉 심의한 조항 뜯어고친다 - 미디어오늘
- 박장범 KBS 사장 “스포츠라는 인류 유산, 자본 논리에 매몰되지 않아야” - 미디어오늘
- 정원오, TBS 구성원 만나 “당선되면 TBS 출연기관 지위 회복 노력” - 미디어오늘
- 사추위 구성 않는 YTN 시정명령 “법 위반 시 승인 취소” - 미디어오늘
- 이재명 대통령 국정지지율 2%p 하락해 61% “조작기소 특검 영향” -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