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국가 이스라엘, 구약의 '그 이스라엘' 아니다
Happy Mother's Day! 이 땅의 모든 어머니께 주님의 은총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어머니를 그리는 모든 마음에 하늘의 위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날은 보통 어머니에 관한 말씀을 해야 하는데, 오늘은 그렇게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사귐의소리' 진도를 따르다 보니, 어머니 주일에 맞추어 설교할 만한 적당한 본문을 민수기에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민수기 묵상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과 맞닿아 있어, 꼭 다뤄야 할 주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민수기의 후반부를 읽고 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이스라엘은 한 민족을 정복하면,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없애 버립니다. 그것을 히브리어로 '헤렘'이라고 부릅니다. 그와 같은 철저한 학살을 하나님이 명령하셨다는 대목에 이르면 혼란스럽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주변 나라들에 대해 행하고 있는 군사 행동에 대한 뉴스를 듣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있었던 가자 지구에 대한 공격에서도 그렇고, 이번 전쟁에서도 그렇고, 이스라엘은 자주 비인도적인 공격을 자행해 왔습니다. 이 전쟁이 시작된 것도, 정전이나 휴전이 될라치면 어그러지는 것도 이스라엘의 방해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민수기에 나오는 전쟁 이야기들과 뉴스로 듣는 중동 전쟁 이야기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민수기를 읽고 묵상하면서 어떤 분들은, "아, 이 사람들, 3000년 전에도 그렇더니 또 그러고 있네!" 하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되찾는 일이니, 어쩔 수가 없지!" 하고 이스라엘을 두둔하고 응원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나라의 신자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주말에 광화문에서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흔듭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은 과거의 선민이고, 미국은 현대의 선민이라고 믿습니다. 두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고, 두 나라가 잘되어야 우리나라도 복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6월, 텍사스의 상원 의원인 테드 크루즈(Ted Cruz)가 터커 칼슨 쇼(Tucker Carlson Show)에 나와서 이란과 이스라엘에 대해 나눈 대화는 유명합니다. 칼슨이 크루즈 의원에게, "당신은 왜 이스라엘 군대가 행하고 있는 비인도적이고 불의한 전쟁 행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정부를 지지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크루즈는 "내가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는 축복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받는다는 말씀을 듣고 자랐습니다. 저는 축복받는 자의 편에 서고 싶습니다" 하고 답합니다.
칼슨은 자신도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그 성경 구절이 어디에 나오느냐고 묻습니다. 크루즈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하자, 칼슨이, "그렇게 중요한 구절이라면서 어디에 나오는지 기억도 하지 못합니까? 그것은 창세기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지금의 이스라엘 정부가 동일하다고 믿는 겁니까?" 하고 따져 묻습니다.
"지금의 국가 이스라엘은 과연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민 이스라엘과 같은가?"의 질문에 바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역사와 그 역사에 대한 성경의 해석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통합하여 이해해야만, 지금의 국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정부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이유는 그 자손들을 "제사장 나라"(출 19:6)로 세우셔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로부터 이스라엘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은 길고도 어려웠습니다. 그 이야기의 일부를 우리는 출애굽기와 민수기 그리고 여호수아기와 사사기에서 읽습니다.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세워지는 듯했지만, 세 명의 왕을 거친 후, 이스라엘은 둘로 갈라졌고,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는 차례로 주변 강대국에 멸망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형성했던 열 지파는 앗시리아의 혼혈 정책으로 인해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반면,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바빌로니아의 포로 정책과 페르시아의 유화 정책으로 인해 민족 정체성을 지키며 종교와 전통을 이어 갔습니다. 하지만 국가로서의 유다는 바빌로니아에 패망한 587년 이후로 주권을 상실한 식민이 되었습니다. 잠시 주권을 회복한 적도 있었지만, 페르시아에서 그리스로, 그리스에서 로마로 이어지며, 주권 없는 민족으로 생존하다가, 주후 1세기와 2세기에 일어난 두 번의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소멸되어 버립니다.
첫 번째 전쟁은 주후 66년에 시작하여 70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때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파괴되고, 유다 백성은 자치권조차 잃고 완전한 식민이 되었습니다. 숨죽여 살던 유대인들은 132년에 바 코흐바(Bar Kokhba)의 주도하에 또다시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켰고, 3년 동안의 긴 전쟁 끝에 로마 제국에 의해 남은 숨통까지 끊어지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로마 역사가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이때 수십만 명의 유대인들이 살해당했고, 살아남은 유대인들도 군대로 끌려 가거나 노예가 되었습니다. 일부 사람들만이 주변 나라들로 피신하여 목숨을 건졌습니다. 로마 제국은 '유다'라는 지명을 '시리아 팔라이스티나(Syria Palaestina)'로 바꾸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철천지원수인 불레셋을 그 땅의 주인으로 바꿔 버린 것입니다.
그 이후로 유대인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그들의 종교와 전통을 지켜 가며 살아왔습니다. '디아스포라'라고 부르는 유대인들의 이주 현상은 오랜 과거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주후 135년 이후에 그것은 모든 유대인들의 생존 방식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강력한 민족 정체성과 독특한 문화 때문에 정착한 지역민들과 동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자주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2000년 가까이 그렇게 살다 보니, 러시아에도, 중국에도, 아프리카에도, 남미에도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나치 정권 때 일어난 '홀로코스트'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자주 '반유대주의적 감정(Anti-Semitism)'에 희생당해야 했습니다. 기독교 국가에서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살해한 민족'이라는 이유로 잔인한 테러를 당하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았고, 19세기 말부터 유럽에 살던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국가를 재건하자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시온주의 운동(Zionist Movement)'입니다. 거대한 자금력과 홀로코스트로 인해 유럽인들이 가지게 된 심정적인 부채가 자산이 되어 그 운동은 점차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한 학기 동안 가르쳐도 모자랄 내용을 단숨에 요약했습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난 일의 의미를 묻고 답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의 탄생과 부침에 대해 신학적으로 해석하여 그 의미를 알려 줍니다.
"당신들이 마음이 착하고 바르기 때문에 당신들이 들어가서 그들의 땅을 차지하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이 민족들이 악하기 때문에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그들을 당신들 앞에서 내쫓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주님께서는 당신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그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신 9:5)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면서 두 가지 목적을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는 죄악의 도를 넘어선 가나안 민족을 심판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장의 나라로 세워질 터전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신이 아닙니다. 다만, 이스라엘을 구원의 도구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때로 이스라엘을 통해 다른 민족을 심판하기도 하시고, 다른 민족으로 이스라엘을 심판하기도 하십니다.
"너희가 그 땅을 더럽히면, 마치, 너희보다 앞서 그 땅에 살던 민족을 그 땅이 토해 냈듯이, 너희를 토해 낼 것이다." (레 18:28)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국가로 성장했지만, 제사장 나라가 되는 일에는 실패합니다. 그들이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에게, 자신들을 위해 다른 나라처럼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했을 때, 이미 실패는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작더라도 거룩한 나라로 자라 가기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나라처럼 국력을 키우고 군사력을 길러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보내시어, 그들이 선택받은 이유를 잊지 말라고, 계명과 율법에 담긴 그분의 뜻을 배우고 실천하라고, 크고 강한 나라를 꿈꾸지 말고 거룩한 나라가 되라고 깨우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예언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들의 욕망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은 북왕국 이스라엘을 앗시리아의 손에 넘기셨고, 남왕국 유다를 바빌로니아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이 제사장 나라로의 부름을 망각하고 온갖 죄악에 빠진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레위기의 말씀처럼,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그 땅이 그들을 토해 낸 것입니다. 이로써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통해 살아남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은 잠정적으로 중단되었습니다. 선민으로서의 이스라엘 역사가 멈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부여받았던 선민으로서의 자격은 잠시 중단되었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철회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때가 되면 새 언약을 맺으시어 구원 역사를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 갔던 유대인들이 귀환한 후, 유다 땅에는 더 이상 예언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약 500년 동안 유다는 영적 암흑기에 들어갑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조차 잃고 연명했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계명과 율법을 지키면서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너희는 속으로 주제넘게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 하고 말할 생각을 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마 3:7-9)
여기서 요한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지금은 아무런 효력이 없으니 회개하고 아브라함의 자손답게 살라고 요구합니다. 세례 요한이 체포되었을 때, 갈릴리에서 활동을 시작하신 예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이 당신에게서 다시 시작되었으며, 이제는 혈통이 아니라 믿음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이스라엘 시대가 열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마 21:43)
여기서의 "너희"는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제사장 나라로서의 책임에 실패한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통해 선민의 역사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십니다.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실 때, 그분은 자신의 죽음이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 언약을 맺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사실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 역사에 대한 성경의 해석에 의하면,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1948년 5월 14일에 재건한 국가 이스라엘은 선민 이스라엘과는 다른 나라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성경의 이스라엘은 야훼 하나님을 따라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부름받은 나라이고, 현대 국가 이스라엘은 살아남은 유대인들의 후손들이 세운 세속 국가입니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종교의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2025년 기준으로 이스라엘 국민의 74%가 유대인인데, 이 중 43%는 무종교인입니다. 21%는 무슬림이고, 2%만 기독교인입니다. 나라 이름은 동일하게 이스라엘이라고 되어 있지만, 나라의 성격은 전혀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현대 국가 이스라엘을 성경의 이스라엘과 동일시해서 무조건 지지하거나 편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레바논의 기독교 마을에서 이스라엘 병사가 예수님 상을 도끼로 깨부수는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합니다. 최근에는 또 다른 병사가 성모 마리아 상 입에 담배를 물리며 조롱했습니다. 이 두 사건은 국가 이스라엘이 얼마나 세속적인 나라인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 중에는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남은 자들"(롬 11:5)이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유대인들과 국가 이스라엘에 대한 '반유대주의적 감정(Anti-Semitism)'을 반대해야 하고, 동시에 그들을 신화화하고 무조건 지지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국가와 민족에 상관없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선민으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이스라엘이 정의롭게 행동할 때는 지지하고, 불의하게 행동하면 비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중동 다른 국가들에 대해 바른 정책을 펼치려면 이런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입니다." (갈 3:28-29)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벧전 2:9)
이 말씀으로써 베드로 사도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새로운 이스라엘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옛 이스라엘이 실패한 선민으로서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힘쓰라고 권고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믿는 이들을 불러 한 몸을 이루어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행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방법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천국을 보여 주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그들은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하다가도, 여러분의 바른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벧전 2:12)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이 새로운 이스라엘로서의 책임을 충분히 잘 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실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본다면, 우리도 새 언약 백성으로서의 책임에 실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래도 용기와 희망을 가지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신실하게 새로운 언약 백성으로서 거룩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들 그리고 교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 우리가 그들 중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들 중 하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높아지도록 전심을 다해, 올곧게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봉 / 와싱톤사귐의교회 담임목사
김영봉 newsnjoy@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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