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용기 있는 그대, 빛으로 돌아오소서…”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 49재

‘역사 앞에 당당하고 용기 있는 사람, 빛으로 돌아오소서.’
열여섯 살 소녀가 위안소에서 살아 돌아온 뒤 붓을 들었다. 불길 속에 스러지는 여성들의 몸을 화폭에 새긴 작품 ‘태워지는 처녀들’.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억을 남긴 이 그림이 훗날 영화 ‘귀향’(2016)의 모티브가 됐다. 그림을 그린 인권활동가 강일출(1928~2026) 할머니는 15일 49재로 떠나보내졌다. 묵직하게 울려 퍼진 추모 타종과 목탁소리가 이승에서 끝내 풀지 못한 한을 달랬다.
■조계사 대웅전, 100여 명 발길… 부처님오신날 앞두고 시민들도
이날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서 지난 3월29일 별세한 강일출 할머니의 49재가 엄수됐다. 유족과 광주 나눔의집·정의기억연대 관계자, 정구창 성평등가족부 차관, 경기도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초파일을 앞두고 조계사를 찾은 시민들도 법당 밖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추모의 마음을 보탰다.
49재는 범종루 추모 타종으로 시작을 알렸다. 상단불공에 이어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의 추모 법어가 대독됐다.
“꽃 같던 열여섯, 조국의 산천이 어둠에 잠겼을 때 할머니의 삶도 강제로 멈춰 섰습니다. 모진 비바람 앞에 멈출지언정 꺾이지 않았고 견디며 결코 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열여섯 소녀의 눈물은 이 땅의 인권과 평화의 꽃씨로 날리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이라는 숙제는 이제 저희들의 몫입니다. 다시 이 땅에 오시거든 그저 평범한 나라의 평범한 소녀가 되어 열여섯 봄날을 마음껏 누리소서.”

■위안소에서 살아 돌아와 붓을 들다… 수십 년 국제 증언
강일출 할머니는 1928년 경상북도 상주군에서 태어났다. 그러다 1943년 중국 지린성 지역으로 강제동원돼 일본군 성노예 피해를 입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장티푸스로 쓰러져 불구덩이에 던져지려 할 때 조선 출신 군인의 도움으로 극적 구출됐다. 하지만 해방 뒤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중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1999년 영구 귀국, 이듬해 국적을 회복하고 나눔의집에 입소했다. 2001년에는 자신이 직접 겪은 참혹한 기억을 담아 ‘태워지는 처녀들’을 그렸다.
나눔의집 입소 후 강일출 할머니는 증언 활동을 하며 일제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고발했다. 2000년 도쿄 여성국제전범법정을 시작으로 2008년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2010년 일본 니이가타·오키나와, 2013년 홋카이도·도쿄, 2014년 뉴욕·LA·워싱턴, 2015년 뉴욕·달라스·애틀랜타, 2016년 일본 도쿄·오사카까지 국내외를 누비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다.

■“사죄 없이는 끝나지 않는다”… 유족·시민사회 촉구
강일출 할머니가 평생 요구한 것은 단 하나,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였다. 그 목소리를 이어받은 것은 이날 추모 자리에 함께한 유족과 시민사회였다. 손자 A씨는 “오랜 시간 할머니를 마음에 두시고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가족을 대신해 감사드린다”며 “할머니께서 겪으셨던 아픈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힘줘 말했다. 49재에 참석한 정구창 성평등가족부 차관은 추모사에서 “할머니의 삶이, 할머니의 증언이, 할머니의 용기가 이 땅의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강일출 할머니는 나눔의집의 마지막 거주자였다. 나눔의집 대표이사 세영 스님은 오랜 시간 여성 인권 활동을 이어온 이들의 헌신을 되짚으며 “정부 관계자와 시민사회 여러 단체가 함께했다”며 추모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시민사회 곳곳에서도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강경란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강일출 할머니는 2021년 일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원고였는데, 법적 배상 판결을 받았음에도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 채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프다”며 “현재 정부에 등록된 생존 피해자가 다섯 분 남은 만큼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국경을 넘나든 수십 년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98년의 삶이 세상에 남긴 목소리는 답을 듣지 못한 채 여전히 역사 앞에 서 있다.
/유혜연 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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