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대본도 6주만에… AI가 창작능력 증폭
6개월 걸리던 작업 단축하고
90점 줄 만큼 완성도 높아
주제·캐릭터·갈등·플롯 등
프롬프트 지시 정교할수록
좋은 작품 나올 확률 높아
정교하게 이야기 설계하는
'스토리 엔지니어'가 돼야

"카메라가 붓을 대체할 때, 디지털 음악이 아날로그를 대체할 때 우리는 비슷한 거부감을 경험했습니다. 그때마다 결국 살아남은 것은 도구가 아니라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인공지능(AI)이 개입한 문화 창작물이 전 세계적인 화두다. AI라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창작자의 영역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일찍이 AI를 동반자로 받아들인 이들이 공존하며 혼란스러운 전환기를 겪는 것이 오늘날 콘텐츠 업계 모습이다.
이달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인 프랑스 칸 영화제는 생성형 AI가 시나리오·영상 작업 등 핵심 창작 요소를 주도한 작품을 경쟁 부문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혀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칸 영화제 중 열리는 세계 최대 필름마켓 '마르셰 뒤 필름'에서는 생성형 AI 관련 프로그램을 마련하거나 위성 행사인 '월드AI필름페스티벌'을 열어 대안적인 해결법을 모색하는 모습도 보였다. 보수적인 칸 영화제조차 AI 대전환이라는 변화의 흐름을 거부하지 못한 것이다.
김우정 프롬 대표(51·사진)는 "콘텐츠 제작자와 수용자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AI 사용 여부에 따른 섣부른 판단이 아니라 콘텐츠가 새로운 시각과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안목"이라며 이같이 언급했다. 그는 콘텐츠 창작 영역은 AI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증폭되는 것'이라고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 콘텐츠 업계 파고든 AI 스토리텔링
김 대표는 공연과 마케팅, 웹툰 분야에서 20년간 기획자로 경력을 쌓았다. 기업 문화와 관련된 교육·행사를 기획하는 '팀버튼'을 설립해 14년간 직장인 30만명가량을 만났다. 2018년부터 5년간은 글로벌 PR 업체 벡터그룹 코리아에서 부대표로 근무했다. 기획자로 일하는 동안 '샤먼' '황태자의 하루' 등 웹툰 5편을 제작해 크리에이터로 전향했다. 현재는 스토리 개발, 콘텐츠 제작, 프롬프트(지시문) 설계, AI 에이전트 개발 등 AI와 협업하는 방법론을 연구하는 AI 스토리텔링 랩 프롬을 운영하고 있다. 신입 제작자뿐 아니라 기성 영화감독, PD, 배우 등 콘텐츠 종사자 1000여 명이 그의 수업을 거쳤다. 저서로는 '기획자의 생각식당' '스토리 엔지니어링' 등이 있다.
AI 스토리텔링은 숏폼 콘텐츠나 영화, 광고, 교육 분야 등에 활용되면서 일상 속에 스며들고 있다. 김 대표는 "숏폼 콘텐츠를 비롯해 웹소설 플롯 설계, 마케팅, 광고 카피 등 다양한 영역에서 AI 스토리텔링 활용이 기본값이 돼간다"며 "게임 업계에서는 NPC(플레이어 외 캐릭터) 대사 생성이나 게임 세계를 설계·구축하는 작업에 쓰이고 있다"고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
AI가 진화하면서 창작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장편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하기까지 3~6개월이 걸렸지만, 김 대표는 매일 2~3시간씩, 약 6주의 시간만 들이면 AI로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단계 업무를 스스로 수행하는 AI 에이전트가 출범하면서 제작 시간이 더 단축됐을 뿐 아니라 완성도도 높아졌다. 김 대표는 "클로드 코워크로 한 달 동안 시험 삼아 웹소설, 희곡 등 여러 장르의 글을 써봤더니 85~90점을 줄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초고가 나왔다"고 언급했다.
◆ 창작자, 스토리 엔지니어로 변해야
'시나리오를 써줘'라는 단순한 요구로는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김 대표가 체득한 교훈이다. 주제와 캐릭터, 갈등, 플롯, 대사 등 구체적인 조건과 분량, 참고 예시 등이 담긴 프롬프트를 제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장르와 포맷, 타깃 관객 연령층 등도 제시하면 더 정교한 시나리오가 나온다. 이렇게 나온 초안은 다시 인간 창작자의 피드백을 받아 몇 차례 수정을 거듭해야 한다.
창작자의 역할이 AI로부터 위협받는다는 업계의 불안감에 대해 인간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김 대표는 "앞으로 창작자의 역할은 인간만의 고유 영역을 지키고 강화하는 일이 될 것"이라며 "개인의 경험, 감정의 결, 삶에서 우러나오는 직관은 AI가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도 체험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장밋빛 미래만 펼쳐진 것은 아니다. 최근 주요 AI 기업들이 구독제 대신 쓴 만큼 내는 종량제로 전환하면서 생성형 AI나 에이전트를 사용하는 제작자들의 비용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확한 프롬프트를 구성해 결과물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길이 AI 영상 제작 시대에 핵심적인 비용 절감 기술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대표는 "AI 시대의 스토리텔링 역량은 답을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프롬프트와 이야기를 설계하는 능력"이라며 "이제 AI를 사용하는 창작자는 모두 스토리 엔지니어로 진화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조윤희 기자 / 사진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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