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수련…숲을 이루다

1960년 8월 17일, 비틀스는 독일 함부르크의 '인드라 클럽' 무대에 오른다.
붉은 조명 아래 습기 찬 공기가 감도는 그곳에서 그들은 하루 8시간, 주 7일이라는 가혹한 연주를 시작한다. 무대 뒤 숙소는 '밤비 키노(Bambi Kino)'라는 삼류 극장의 스크린 뒤편, 악취 나는 화장실 옆 창고였다. 화려한 스타의 길과는 거리가 먼, 생존을 위한 처절한 노동이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무너진 거친 환경 속에서 비틀스는 약 2년 동안 800시간이 넘는 실전 공연을 치러낸다. 함부르크의 악명 높은 소음 속에서 그들이 배운 것은 완벽한 기교가 아니라 서로의 호흡을 골수까지 각인시키는 임계(臨界)의 단련이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안데르스 에릭손이 주창한 의도적 수련(Deliberate Practice) 이론의 실체를 목격한다. 에릭손은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반복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고밀도의 피드백 과정이 천재성을 만든다고 설파했다. 비틀스에게 함부르크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자신의 약점을 직시하고 동료와의 합(合)을 정교하게 수정해 나가는 거대한 피드백 실험실이었다. 관객의 야유와 거친 요구를 실시간으로 마주하며 그들은 음악적 근육을 키웠고 이 압축된 숙련도는 훗날 전 세계를 지배할 혁신의 엔진이 됐다.
이러한 '임계의 시간'은 2026년 제6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대상을 거머쥐며 다시 한번 정점에 선 배우 류승룡의 서사에서 더욱 선명한 기시감으로 다가온다. 2013년 영화 부문 대상 이후 13년 만에 다시 대상을 석권한 그의 성취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전국의 모든 낙수야, 행복해라"라고 드라마 속 캐릭터를 언급하며 자신의 인생 여정에 인사를 전했다. 그는 무려 15년이 넘는 무명 시절 동안 공사 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로, 우유 배달원으로, 심지어 가스레인지 교체 기사로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육체 노동의 고단함 속에서도 연극 무대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특히 5년 넘게 몸담았던 퍼포먼스 '난타'는 그에게 함부르크와 같은 의도적 수련의 장이었다. 대사 한마디 없이 오직 신체 언어와 리듬만으로 관객을 압도해야 했던 그 시간은 배우로서 그가 가질 수 있는 정서적·체력적 수율(Yield)을 극대화하는 과정이었다.
비틀스가 밤비 키노의 냉골 바닥에서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잠들며 다음 날의 8시간 연주를 준비했듯, 류승룡 역시 낮에는 망치를 들고 밤에는 대본을 쥐며 자신만의 구조적 완결성을 구축해 나갔다. 의도적 수련은 단순히 고통을 견디는 인내의 영역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설계된 성장의 논리다. 함부르크의 지하 클럽에서 보낸 시간이 비틀스라는 거대한 숲의 뿌리가 됐듯, 현장의 흙먼지 속에서 보낸 시간은 류승룡을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보적인 배우로 세웠다. 위대한 경영은 단기적인 개화(開花)의 화려함에 매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꽃들이 지고 난 뒤에도 영원히 지속될 거대한 숲의 구조, 즉 지속 가능한 수련의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에서 완성된다.
[이두헌 음악가·중앙대 예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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