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책 읽기마저 남에게 맡기고 '좋아요' 누르는 세상

최한종 2026. 5. 1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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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위기
크리스토프 엥게만 지음 / 김인건 옮김
헤이북스 / 216쪽│1만7000원
독일 학자, 독서의 미래 전망
읽을거리 급증하자 '독서 위임'
전문가의 요약과 설명에 의존
"문자 문화는 일부만 향유할 것"
영화 ‘그녀’에서 이어폰을 낀 채 도시를 이동하는 주인공 시어도어. /ⓒWarner Bros. Pictures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아는 시대다. 유튜브엔 독서 콘텐츠가 넘쳐난다. 유명 평론가와 ‘북튜버’가 책을 소개하는 영상은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한다.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책을 읽지 않고도 책의 내용을 소화했다는 감각일지 모른다.

독일 미디어 학자 크리스토프 엥게만의 신간 <읽기의 위기>는 이 지점을 파고든다. 저자는 오늘날 독서가 단순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위임’되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책을 직접 읽어야만 지식에 닿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이 책을 대신 읽고 설명해 준다. 독자는 책을 펼쳐 문장을 따라가는 대신, 책을 읽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용을 습득한다.

저자는 정보 접근성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점이 이같은 현상을 뒷받침했다고 본다. 읽을 게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무엇을 읽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독서는 피곤하고 시간이 많이 드는 활동, 온몸이 속박되고 눈과 머리를 써야 하는 행위기도 하다. 반면 듣기를 통해서는 설거지 등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신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 사람들은 어떤 책을 골라야 하는지,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지 짚어줄 수 있는 ‘읽는 사람’을 찾게 됐다. 독서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을 거쳐 요약과 해설의 형식으로 돌아오고 있다. 책을 고되게 읽은 사람은 방대한 텍스트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추려내고, 맥락을 붙이고, 청중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꿔 전달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AI 기술도 이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영상 속 발언은 AI를 통해 문자로 바뀌고 있다. 말이 글로 바뀌면 검색할 수 있는 정보가 된다. 논문이나 기사처럼 주소를 갖고, 나중에 다시 찾아볼 수 있는 텍스트가 되는 셈이다. 플랫폼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어울리는 광고를 달고, 그 영상을 좋아할 만한 시청자에게 안내해 준다. “사실상 세계 최대 검색 엔진은 구글이 아니라 유튜브와 틱톡”이다.

저자는 나아가 ‘가상 대학’까지 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독일 철학자의 학술 영상, 바이러스학자의 코로나19 팬데믹 팟캐스트 등에서 발화자는 누군가가 먼저 책과 논문, 각종 텍스트를 읽고, 그 내용을 청중에게 요약하고 풀이하고 있다. 원문을 직접 찾아 읽지 않더라도, 필요하면 언제든 검증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해설자의 권위를 뒷받침한다. 학술적 비판과 계승 역시 이런 가상 대학에서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읽기가 전문화된 행위로 밀려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읽고 쓰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이런 행위는 주로 전문화된 텍스트 노동자 계급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독서가 모두의 일상적인 행위라기보다 특정 직업군과 전문가 집단의 기능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를 ‘라틴어의 부활’에 빗댄다. 근대 이전의 학문은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소수에게 집중돼 있었다. 지식은 문자의 형태로 존재했지만, 라틴어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근대 교육은 이 장벽을 낮췄다. 읽고 쓰는 능력을 넓은 대중에게 나눠주면서 지식은 소수의 특권에서 다수의 권리로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은 역행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은 보편화됐지만, 지식에 닿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감각은 약해지고 있어서다. 책을 끝까지 따라가며 의미를 스스로 구성하는 일은 점점 일부의 몫으로 밀려나는 추세다. 저자는 “새로운 라틴어는 공개적이며, 사실상 모두가 읽을 수 있지만 이제는 아주 소수의 사람만 읽는다는 특징을 가진다”고 했다.

대학도 위기를 맞고 있다. 이들이 텍스트 기반 작업에 의존하지만, 지식이 전달되고 소비되는 방식은 빠르게 말하기와 듣기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식과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하는 대학의 사회적 기능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마도 문자 문화는 그 시작부터 초기 근대까지 그랬듯 전문가 문화의 매체로 회귀할 것이다.”

독일의 사례지만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평론가와 작가, 교수가 유튜브에서 책을 요약하고 해설한다. 책을 읽어주는 영상, 논문을 풀어주는 채널은 사실상 새로운 강의실과 검증의 장이 되고 있다. 이 시대 무엇을 진정한 읽기로 볼 것인가.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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