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대만 여성판 '재벌집 막내아들'…인터내셔널 부커상도 거머쥘까
양솽쯔 지음 / 문현선 옮김
마티스블루 / 528쪽│1만9200원
미국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수상작 <1938 타이완 여행기>로 세계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대만 작가 양솽쯔의 첫 장편소설 <꽃 피는 시절>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오는 19일 발표되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1938 타이완 여행기>의 세계관적 출발점이기도 한 이 소설은, 작가가 쌍둥이 언니를 잃은 지 1년 만에 세상에 나온 작품이다.

필명 ‘양솽쯔’는 일본 한자로 ‘쌍둥이’를 뜻하며, 작가는 2015년 세상을 떠난 언니의 이름을 지금도 함께 쓰고 있다. 창작을 맡은 동생과 역사 자료 조사를 전담한 언니가 함께 빚어낸 필명은, 그 자체로 이 소설을 받치는 애도의 토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호수에 빠진 현대 여성 양신이는 1926년 타이중 유력 지주 가문의 여섯 살 막내딸 쉐쯔로 눈을 뜬다.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는 단순한 흥미를 넘어 식민지·계급·젠더를 향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도구로 작동한다.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해서 역사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아무리 낯선 시공간에 내던져져도 사람은 결국 관계 속에서 뿌리를 내린다는 진실이 소설의 핵심이다. 고택 ‘지여당’에는 가문을 이끄는 할머니,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첩과 양녀가 있고, 그 한가운데 쉐쯔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일본인 소녀 샤오짜오가 있다. 국적과 민족, 계급을 가로지르는 두 소녀의 우정은 식민지 속에서 서로의 존엄을 지켜주는 유일한 힘이다. 역사소설과 여성 서사의 ‘백합 소설’을 결합한 ‘역사 백합 소설’이라는 장르는 출간 당시 타이완 문학계에 적지 않은 논쟁을 촉발했다.
작가는 대만의 정체성을 추상적 민족주의가 아닌 밥상과 언어에서 찾는다. 철마다 차려지는 보양식과 제사 음식, 그리고 대만어 단어들. 그 작은 디테일들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물음 ‘대만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답변이다. 각 장의 제목을 꽃 이름으로 삼아 역사 속에서 지워졌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스무 송이 꽃으로 피워낸 이 소설은, 100년 전 소녀들의 우정을 지금 이 시대의 언어로 복원해낸다.
양솽쯔는 미국도서상 수상 소감에서 “100년 전 타이완인들은 일본인들에게 ‘타이완은 타이완인의 것’이라고 말했고,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같은 말을 한다”고 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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