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연쇄살인 누명쓰고 ‘변태성욕자’로 낙인 찍혀 죽었는데···법원 “국가배상액은 7700만원”

임현경 기자 2026. 5. 1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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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홍성록씨 유족 국가배상 사건 1심 선고
유족 측 “사회적 낙인 피해 고려 안돼” 항소 의지
15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춘재 살인누명 국가배상소송 1심 선고가 끝난 후 허위 자백을 강요당했던 고 홍성록 씨의 자녀 측 대리인인 박준영 변호사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수사기관의 가혹행위와 허위자백 강요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누명을 쓴 고 홍성록씨 유족들이 낸 국가배상 사건에서 법원이 유족에게 7700여만원의 국가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유족 측은 “국가폭력으로 찍힌 사회적 낙인을 고려하지 않은 배상액”이라며 항소 의지를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906민사단독 안동철 부장판사는 15일 홍씨 자녀들이 낸 국가배상 소송 1심 선고에서 “원고에게 각 3857만여원과 그 이자를 지급하라”하라고 판결했다.

홍씨 자녀들은 2023년 6월 아버지인 홍씨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수사기관에서 허위 자백을 강요당하고, 7일간 불법구금돼 가혹행위를 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987년 5월 경찰은 홍씨를 영장 없이 연행한 뒤 7일 동안 경찰서, 파출소, 여관 등을 옮겨가며 조사했다. 잠을 재우지 않고 폭행 등 가혹행위를 했다. 견디다못한 홍씨가 허위자백을 하자 경찰은 그의 실명, 얼굴, 가족관계와 사생활을 언론에 발표했다.

당시 경찰은 홍씨를 “변태성욕을 가진 정신병자”라고 기재한 정신과 전문의 소견서도 허위로 꾸며 수사기록에 첨부했다. 홍씨 자녀들도 강압수사 대상이 됐다. 경찰은 당시 미성년자였던 자녀들에게 “아빠 보고 싶으면 똑바로 하라”고 협박하며 반복적으로 진술을 강요했다.

홍씨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지만, 경찰의 동향감시는 5년 동안 계속됐다. 홍씨는 석방 뒤에도 직장을 잡지 못한 채 알코올중독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2002년 간암으로 사망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22년 홍씨에 대한 불법체포·감금, 허위자백 강요, 증거조작, 피의사실공표 및 동향 감시 등 국가폭력을 폭넓게 인정했다. 진실화해위에서 피해자로 인정된 이들은 2029년 2월까지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유족 측은 법원에 국가배상 소송을 내며 4억7000만원 가량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보다 훨씬 적은 7700여만원을 배상금으로 책정했다.

유족 측은 “사회적 낙인이라는 국가폭력이 배상 책임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항소의지를 밝혔다.

유족을 대리한 박준영 변호사는 “(홍씨의) 불법 구금 기간이 짧다보니 위자료를 적게 인정한 것 같은데, (홍씨는) 이춘재로 진범이 밝혀지기 전까지 화성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엄청난 사회적 낙인이 찍혔다”며 “사회적 구금 상태로 많은 피해를 입은 사건인데, 그런 쟁점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판결”이라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또 “영화 ‘살인의 추억’ 속 인물도 홍성록씨를 보고 만들어진 것 같다”며 “홍씨의 허위 자백을 가지고 상상력을 발휘해 만들어진 영화 속 배우 모습은 홍씨 가족들에겐 또 한 번의 고통”이라고 말했다. 이어 “홍씨는 2002년 사망할 때까지 누구에게도 사과를 받지 못했고, 사회적 낙인 속에서 살았다”며 “국가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기대했는데 그 기대와 상당히 거리가 먼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춘재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누명을 쓰고 20년 동안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도 국가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국가가 윤씨에게 18억6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장기미제 사건이었던 이춘재 살인사건은 2019년 경찰이 피해자 유류품에 남은 유전자(DNA) 대조한 끝에 진범인 이춘재를 특정했고, 이춘재가 자백하면서 진범이 밝혀졌다.

임현경 기자 hyl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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