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OTT 구독권' 제공해도 무상 헌혈 원칙 지켜지나?

안병수 2026. 5. 15. 16:3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젊은 헌혈자 줄고, 혈액 수급 불안 여전
적십자 "감사와 예우 차원 기념품"
일러스트 | 챗GPT

정부가 헌혈 기념품을 OTT 구독권과 포토 카드 등으로 다변화하는 방안을 추진합니다. 혈액 수급이 빠듯한 현실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대책이지만, '무상 헌혈 원칙을 흔드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듭니다. 헌혈은 본디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젊은 층이 선호하는 물품을 내걸어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에 '대가성'을 배제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OTT 구독권이나 포토 카드 제공이 곧바로 무상 헌혈 원칙 위반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이를 "헌혈 참여에 대한 감사와 예우 차원의 소정 기념품"이라고 설명했는데,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권고하는 윤리 기준도 소액의 기념품과 음료 제공 자체는 자발적 무상 헌혈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의 기념품이 지나치게 유인성이 큰 것은 아닌지는 별도로 따져볼만 합니다.

적십자 "무상 헌혈 본질을 해치지 않는 범위"

대한적십자사는 무상 헌혈을 대가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타인을 위해 자신의 혈액을 자발적으로 기증하는 생명나눔의 실천이라고 설명합니다. OTT 구독권과 포토 카드 역시 예산 범위 안에서 헌혈 참여에 대한 감사와 관심 제고 차원에서 지급하는 기념품의 일환이라고 밝혔습니다.

법적·행정적 근거도 있습니다. 헌혈 기념품 제공은 보건복지부 고시인 '혈액 및 혈액성분제제 수가와 헌혈환급예치금'에 따라 운영되며, 혈액성분제제 수가를 구성하는 항목 중 '헌혈자관리비' 범위 안에 포함됩니다. 일반헌혈은 2025년과 2026년 기준 1회당 5700원, 다종성분헌혈은 8700원 수준입니다. 2023년과 2024년에는 각각 5000원, 8000원이었습니다.

WHO 등이 권고하는 '헌혈과 수혈에 관한 윤리강령'은 헌혈이 자발적이고 무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자발적 무상 헌혈은 헌혈자 자신의 의지에 따라 참여하고, 현금이나 현금에 상당하는 이익을 보상받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핵심은 기념품 제공 여부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현금성 보상인지, 아니면 감사와 예우 차원의 소액 기념품인지에 있습니다.

"기념품, 반복 헌혈에 효과적"

서울 종로구 대한적십자사 헌혈의집 광화문센터를 찾았습니다. 평일 낮 센터 안은 비교적 차분했습니다. 대기석과 채혈실이 붐비기보다는 한산한 모습이었고, 혈액 수급 문제가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현장에서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센터 측에 따르면 이 일대에서 규모가 큰 헌혈 센터임에도 평일 방문자 수는 적을 때 20명 남짓이라고 합니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적십자사 헌혈의집 광화문센터 채혈실이 헌혈 참여자가 없어 텅 비어 있는 모습. 김진성 영상취재부 기자

이날 만난 한 20대 의무병은 휴가 복귀 전 시간을 내 헌혈센터를 찾았다고 말했습니다. 기념품이 처음 헌혈을 결심한 직접적 계기는 아니었다면서도, 반복 참여에 미치는 영향은 솔직하게 밝혔습니다.

"오늘 휴가 복귀 마지막 날이라서 시간 돼서 왔습니다. 시작하게 된 계기에는 영향이 없었는데, 하다 보니까 약간 ‘쏠쏠한데’라는 느낌은 있었던 거 같아요." (홍석원 / 의무병)

이 발언은 기념품이 헌혈의 본질을 대체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참여를 유지하거나 다시 오게 만드는 요인으로는 충분히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현장에서도 “처음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못 옵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광화문센터 현장 책임자도 신규 헌혈자 유입의 어려움을 강조했습니다. 헌혈의 문턱 자체가 높다는 겁니다.

“헌혈은 한 번 해보신 분들이 하시지 안 해보신 분들은 못하세요. (헌혈 캠페인이) 자막 방송으로 나가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혈액 부족 사태에 대해서 호소가 필요한 거죠." (신금옥 / 대한적십자사 광화문 헌혈센터장)

센터장의 말처럼 현장에서는 헌혈 경험이 있는 사람의 재참여보다, 처음 오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일이 더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기념품과 캠페인이 단순한 부가 혜택이 아니라, 첫 참여 문턱을 낮추는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청년층 헌혈 줄고, 혈액 수급 불안 여전
대한적십자사 자료.

이 같은 대책이 나오는 배경도 분명합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전체 헌혈자 가운데 10대·20대 비중은 2023년 55.0%에서 2025년 52.3%로 줄었습니다. 건수로는 152만8245건에서 148만4822건으로 감소했습니다.

헌혈 가능 인구도 줄고 있습니다. 만 16세부터 69세까지의 헌혈 가능 인구는 2023년 3887만3293명에서 2025년 3835만5939명으로 2년 새 51만7354명 감소했습니다. 반면 수혈자 수와 수혈 건수는 장기적으로 증가 추세입니다.

대한적십자사 자료.

혈액 보유일수 역시 늘 안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전국 기준으로 적정 수준인 5일분 이상을 밑도는 '관심' 단계는 2023년 123일, 2024년 62일, 2025년 117일이었습니다. 지난해에는 1년의 약 3분의 1이 적정 보유량 미만 상태였다는 뜻입니다.

반면 기념품 효과는 뚜렷했습니다. 적십자에 따르면 최근 시행된 일부 프로모션은 단기간 헌혈 참여 확대 효과를 냈습니다. 서울중앙혈액원의 ‘두쫀쿠’ 이벤트를 진행한 헌혈의집에서는 전주 동일 요일 대비 헌혈 건수가 340건, 153.8% 증가했습니다. 또 올해 1월 16일부터 25일까지 약 열흘간 엔하이픈 협업 프로모션을 진행한 성수센터, 강남역센터, 신촌센터에서는 센터 개소 이후 기준 역대 최대 헌혈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생애 첫 헌혈자 수는 전주 동기간 54명에서 1031명으로 약 19배 늘었습니다.

즉 기념품은 상징적 조치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신규 헌혈자 유입을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해외 기념품은 대체로 '상징적 예우'

해외 주요국도 헌혈자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사례를 보면, 영국과 캐나다 등은 배지, 도너카드, 인증서, 메달 같은 상징적 기념품이나 자체 제작 굿즈 중심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에서 논란이 되는 OTT 구독권이나 팬덤형 포토 카드는 외부 소비나 즉각적 선호를 직접 자극하는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해외도 감사품 자체는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두고 무상 헌혈 원칙 위반이라고 보는 건 무리입니다.

'위반'은 아니지만 자발적 헌혈 문화는 숙제

다시 정리하면, OTT 구독권과 포토 카드 제공이 '무상 헌혈 원칙에 어긋난다'는 건 '거짓'입니다. 적십자의 설명과 WHO 윤리 기준, 보건복지부 고시를 종합하면, 소정의 기념품 제공은 허용 범위 안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실제 현장에서도 신규 헌혈자 유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긍정 효과를 외면하기도 어렵습니다. 고령화에 접어든 한국 상황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기념품 없이도 헌혈에 동참하는 건전한 나눔 문화 정착이 숙제로 남았습니다.

팩트체크, 안병수입니다.

[ 안병수 기자 / ahn.byungsoo@mbn.co.kr]
영상취재 : 김진성 기자
취재지원 : 김은혜 정은선

< Copyright ⓒ MBN(www.mbn.co.kr)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MB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