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닉스며 한국이며 장밋빛 전망일 줄 알았는데…쓴 소리 내놓은 ‘이 대표’의 이유

전종헌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cap@mk.co.kr) 2026. 5. 1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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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임 케이프리덤자산운용 대표 인터뷰
메모리, 초기 설계단계 참여가 중요
韓기업, 핵심 공급자서 머물러 지적
美마이크론, 엔비디아와 초기 협력
병목현상 결국 해결…큰그림 그리길
씨티그룹, UBS, BNP파리바 등 주로 외국계 증권사에서 경험을 쌓은 박정임 대표는 2023년 케이프리덤자산운용을 창업했다. [전종헌 기자]
그래픽처리장치(GPU) 성능이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발전 속도를 앞지르면서 이른바 ‘메모리 월(memory wall)’ 문제가 반도체 산업 전반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더 빠른 계산 능력을 가진 두뇌가 있는데, 그 뇌가 생각할 때 필요한 정보는 느린 속도로 도착하는 식이다. 인공지능(AI) 시대 메모리 반도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산업의 주역들이 글로벌 D램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한국 기업의 주도권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나오는 까닭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한 번쯤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와 눈길을 끈다. 메모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과 메모리 기업의 주도권이 유지된다는 주장은 동일한 명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AI 생태계에서는 과거처럼 ‘누가 더 잘 만드느냐’보다 ‘누가 초기 설계 단계에 참여하느냐’가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송파동 사무실에서 매경AX와 가진 인터뷰에서 박정임 케이프리덤자산운용 대표가 반도체 산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종헌 기자]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송파동 사무실에서 매경AX와 가진 인터뷰에서 박정임 케이프리덤자산운용 대표는 “AI 아키텍처에서 메모리의 중요성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더라도, 그 주도권까지 자동적으로 보장된다고 보는 시각에는 다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며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박 대표는 “메모리는 더 이상 과거처럼 독립된 개별 칩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첨단 패키징과 긴밀하게 결합된 하나의 엔지니어링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모리 기술력만으로는 더 이상 승부할 수 없고, AI 생태계의 설계 단계부터 얼마나 깊숙이 들어가 있느냐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란 얘기다.

박정임 케이프리덤자산운용 대표는 “AI 아키텍처에서 메모리의 중요성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더라도, 그 주도권까지 자동적으로 보장된다고 보는 시각에는 다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전종헌 기자]
박 대표는 “HBM은 GPU와 동일 패키지 안에서 통합되며, 메모리는 더 이상 사후적으로 선택되는 부품이 아니라 시스템 설계 초기 단계에서 함께 정의되는 핵심 변수로 자리 잡았다”며 “이런 구조에서는 단순히 ‘얼마나 잘 만드는가’보다, ‘누가 설계 단계에서부터 포함돼 있는가’가 더욱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고 짚었다.

가령 엔비디아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가 AI 반도체 생태계의 ‘오케스트레이터’ 역할을 강화하는 반면, 한국의 메모리 기업들은 여전히 핵심 공급자 위치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박 대표의 진단과 궤를 같이 한다.

박 대표는 “미국의 마이크론은 엔비디아와 초기 AI 전략부터 협력 관계를 구축하며 HBM4, LPDDR(스마트폰에 주로 쓰는 저전력 D램) 분야에서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직접 AI 혁명 초기부터 함께 투자하고 협력한 파트너로 마이크론을 언급한 점도 이런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AI 시대 경쟁이 단순 메모리 성능 싸움을 넘어 패키징·공급망·소프트웨어까지 포함한 생태계 전쟁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 역시 메모리 제조 경쟁력만이 아니라 글로벌 설계·패키징·AI 플랫폼 생태계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가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는 취지다.

박정임 케이프리덤자산운용 대표. [전종헌 기자]
마이크론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HBM4 36GB 12단 제품이 엔비디아의 베라 루빈용으로 양산에 진입했음을 공식화했다. 동시에 HBM4E(7세대) 역시 2027년 양산을 목표로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업계 최초로 256GB 용량의 저전력 차세대 메모리 모듈인 LP SOCAMM2 제품을 1감마 공정(회로 선폭을 더 미세화한 첨단 공정) 기반으로 샘플을 출하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박 대표는 “범용 메모리 분야에서 오랫동안 리더십을 유지해온 한국 기업들이 아닌 마이크론이 SOCAMM 영역에서 ‘최초’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제품 경쟁을 넘어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며 “엔비디아가 차세대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메모리를 함께 정의하는 파트너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기자에게 던졌다.

“앞으로 연산 설계자가 메모리 주도권 가져갈 것”
그는 “젠슨 황이 직접 ‘비전을 함께 이해하고 초기부터 여정을 공유한 파트너’로 마이크론을 지목했다는 점은, 마이크론이 엔비디아 생태계 내에서 단순한 부품 공급자를 넘어, 설계 단계부터 참여하는 협력자로 자리 잡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연장선에서 박 대표는 “엔비디아가 인텔의 미국 패키징 시설을 활용하고, 커스텀(맞춤형) HBM을 설계 단계부터 함께 정의해 나가는 구조라면, 미국 유일의 D램 기업인 마이크론이 TSMC와 인텔 모두와 연결 가능한 위치에서 이 생태계에서 유력한 메모리 파트너 후보 중 하나로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도 진단했다.

그는 “이는 더 나아가 엔비디아의 파인만 아키텍처(AI칩)는 연산 설계자가 직접 설계하는 메모리인 SRAM의 중요도를 더욱 높인 아키텍처로 판단된다”며 앞으로는 연산 설계자가 메모리 주도권을 가져가는 구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AI데이터센터 내에서 기존 구리기반 통신을 빛 기반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CPO 기술을 활용한 네트워킹 개선으로 메모리의 병목을 완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며 “추론 아키텍처에서는 대역폭보다는 저지연성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박정임 케이프리덤자산운용 대표가 반도체 생태계를 설명하고 있다. [전종헌 기자]
그는 “물론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여전히 엔비디아의 핵심 HBM 파트너지만 공급망의 축이 미국 중심으로 재편될수록, 미국 제조 생태계의 일부인 마이크론이 갖는 구조적 이점은 단순한 기술 경쟁력과는 다른 차원에서 작동할 것”이라고도 분석했다. 결국 기술로 이기는 것과, 생태계 안에 있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시각이다.

박 대표는 SK하이닉스가 미국 ADR 상장을 추진하고, 낸드플래시 전문 기업인 일본 키옥시아 지분을 보유하며, 샌디스크와 차세대 메모리 설루션(HBF) 협업을 추진하고, 최태원 회장이 일본과의 협업을 강조하는 것을 나열하며, AI 생태계 안에서 의미 있는 위치를 유지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케이프리덤자산운용의 인사이트 리포트. [전종헌 기자]
그는 메모리 월 문제를 언급하며, AI 연산 성능이 워낙 빠르게 올라가면서 데이터를 제때 공급하지 못해 발생하는 메모리 병목이 ‘결국 해결되는 대상’이라는 점도 피력했다. 다만, “그 방식이 반드시 ‘더 좋은 메모리를 더 많이 쓰는 것’일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산업은 항상 병목을 우회하거나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며 “AI 업계 역시 단순히 HBM을 더 많이 넣는 방향만 보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AI 생태계에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메모리 월 문제를 들어 피력한 것이다.

그는 “실제로 최근에는 KV 캐시(Key Value Cache)를 압축하거나 필요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동일한 메모리 자원에서 더 많은 연산을 처리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며 “메모리 의존도를 줄이는 기술들이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끝으로 박 대표는 “지금 한국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것은 개별 기업의 대응을 넘어서는 더 ‘큰 그림’”이라는 제언도 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글로벌 팹 확대, 소재, 부품, 장비 기업들의 전략적 전환, 국내외 OSAT(외주 반도체 조립·테스트) 업체들 간의 패키징 생태계 협력 강화, 그리고 하드웨어 경쟁력을 뒷받침할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까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방향으로 조율할 수 있는 지휘자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메모리를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한국이 AI생태계 설계 단계에 얼마나 일찍, 얼마나 깊이 참여하고 있는가. 그것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향후 10년을 결정할 질문”이라고 애정어린 당부를 남겼다.

■ 박정임 대표는… 1977년생으로 연세대 졸업 후 서울, 뉴욕, 홍콩에서 씨티그룹, UBS, BNP파리바 등 주로 외국계 증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후 메리츠자산운용을 거쳐 2023년 케이프리덤자산운용을 창업해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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